장사익, 찔레꽃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5. 천산과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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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산 산맥은 거친 화염산이기도 하지만, 만년설 덮인 고봉의 위엄도 누리며 푸르고 맑은 호수를 품고 있기도 하다.  2,500KM의 장구한 산맥은 다양한 옷을 입고 깊이깊이 속으로만 수천 년에 걸쳐 움직이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장사익의 노래 ‘찔레꽃’을 듣는다. 우습거나 괴이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들을 적마다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조건반사 때문에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결혼 초 첫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주말마다 시댁을 방문했다. 그때 1시간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자주 듣던 노래가 ‘찔레꽃’이다. 나이만큼 철들지 않았던 나는 심한 입덧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매주 주말 시댁 식구들과의 만남이 부담스러웠다.

 


 

  오호가 분명하고 항상 왁자한 친정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고 조용했던 시댁의 분위기는 매우 다른 문화였고 적응하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남편의 표현에 따르자면 시댁은 농경민이고 나의 친정은 장사꾼이나 유목민에 가까웠다. 아무리 점잖고 좋은 분들이라 하여도 다리 한 번 편하게 뻗을 수 없는 새댁의 입장에서는 시댁에서 보내는 하루가 그리 편치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하시니 거의 매주 가야 했고 만삭이 되어서는 자동차로 울퉁불퉁한 턱을 넘을적마다 배가 뭉치고 땅기기도 해서 어지간히 신경질도 내었다. 그때마다 장사익의 찔레꽃은 애절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부터였다.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 조건 반사의 강아지처럼 그 노래는 나에게 끈질긴 불쾌감을 주었다. 별다른 반응을 불러내지 않는 중립 자극인 ‘찔레꽃’ 노래가 주말 시댁 방문이라는 무조건 자극을 만나서 되풀이 되다 보니 심한 구토와 어지럼증이라는 조건 반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나도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생각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래 전주의 피아노 소리만 듣고도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지는데 억지로 참고 들으면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기어이 차를 세우고 내려 찬바람을 맞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장사익 음반은  밀쳐 놓고 집에서건 차에서건 못듣게 했다. 전주만 흘러 나와도 욕지기가 일어나는 통에 손사레로 거부하니 남편도 하는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전 인터넷에 올려진 장사익의 공연 녹화를 통해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전처럼 심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토할 것 같은 증세는 사라졌다. 대신 짐작못한 신체 반응으로 역시 당혹스러웠다. 울렁거림 대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노래를 듣는 내내 대책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거듭해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아름다웠다. 매정하게 내동댕이치기에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래였다.  노래에 젖으며 나는  어미로서 아이를 몸에 담고 있던 생명력 넘치던 18년 전 내 젊은 날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겨울 개울가의 자갈돌마냥 꽝꽝 얼어붙어 꼼짝도 못했던 옹졸한 내 마음 씀씀이가 안쓰러웠다. 찔레꽃처럼 사랑하고 싶었던 젊은 지아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만 앞섰던 새댁을 떠올리니 여간 짠한 게 아니다. 그리고 한동안을 그러한 기억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눈을 흘기다가,  이제는 후회의 눈물을 닦아내는 중년의 내가 또 보기에 안되었다. 나는 이제라도 나를 좀 편안하게 해 주고 싶다.

 


 

  천산 산맥 중에서도 투르판 부근의 화염산은 화산 활동으로 오랜 세월 침식을 거듭하며 만들어진 협곡과 녹아내린 용암이 만나서 이루어진 산이다. 불타는 형상인데다 여름철엔 온도가 50도 이상 올라가니 그야말로 생지옥을 연상하게 되는 화염산은 그러나 풍경만큼은 천산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불경을 찾아 인도로 향하던 삼장 법사가 화염산을 만나자 손오공의 부채로 화염산의 불을 다스렸듯이 내 마음의 불길을 천산 산맥이 서늘하게  쓸어 주었다.  이러구러한 사연을 모두 담고도 의연한 천산처럼 나도 용암같은 희로애락의 사연에 담담해지고 싶다. 그래서  해묵은 원망이 성찰로, 성찰이 새로운 생활로 이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