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발걸음을 서래마을로 향하지 못하고 강원도로 향했습니다.
강의를 빼먹고 땡땡이를 감행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오랜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일찍 친구들과 모여 "그 좋다는 강원도의 자연속으로" 떠났습니다.


근데 발걸음이 천근만근입니다.
편하게 놀고자 땡땡이 친 발걸음이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동합니다.
"뒷덜미를 잡는 이 기운은 뭐지?"
"주기율표 안 외워도 되고 고생대, 중생대 지도 안 그려도 되는데 왜 편안하고 즐겁지가 않지?"
친구들과 마시는 와인이 달콤하지 않고 그 맛있다는 횡성한우도 입에서 녹지 않습니다.
술맛은 꺼끌거리고 고기는 질겨집니다.

바로 땡땡이의 원죄였습니다.


일요일 점심때 헤어져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옵니다.
차도 밀리고 강의를 들으러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합니다.
어차피 시도한 땡땡이니 철저하게 삐뚤어져 보기로 합니다.
그냥 집으로 향합니다.
근데 찝찝함은 가셔지지가 않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계속 박자세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합니다.
아직 강의가 끝날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시 칠판 스캔 사진이 올라오나 확인합니다.
올라올리 만무합니다.
저녁 9시가 넘어섭니다.
9시13분 방혜욱 선생님께서 올리신 "제40회 과학리딩 - 칠판"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습니다.
집중하고 들여다 봅니다.
머리 뒷편으로 불안감과 초조함이 사라지고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머리가 아팠는데 타이레놀 한 알 먹은 기분입니다.


박사님 글씨가 화면에 펼쳐집니다.
원핵생물, 진핵생물, 비광합성 원생생물, 미토콘드리아, 동물계, 광합성 원생생물, 엽록체, 식물계,
입금 동정 편모충(?), 진정조직(?), 좌우대칭, 극피, 척색동물, 척추동물문, Lophophore(?), 절추류(?)
Amiota(?), 에오마이아(?), Tuatara(?), 해우목(?), 장비목(?), 식육목(?), 유린목(?)
ㅠㅠ
이게 뭐지?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속 읽어봐도 물음표만 점점 늘어납니다.


그래도 7년 세월동안 풍월을 읊었다고 자부했는데 화면에 보이는 것은 까만 것은 글씨와 선이요
녹색과 빨간색은 강조한 글씨고 흰색은 화면이었습니다.
대충 이해는 가는데 와닿지가 않습니다.
용어의 정의가 머리속에 없으니 칠판의 글씨가 담고 있는 의미를 알아챌 수 가 없습니다.
지식에 대한 욕망은 많았지만 간절하지 않았고 풍월은 읊었지만 그저 스쳐가는 바람소리여서
가슴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창밖의 소음과 같았음을 알게됩니다.


강의현장에 있어야 했음을 절감합니다.
박사님의 침튀기는 열변을 귀로 전해들어야 용어가 와닿고 빨간색으로 노트에 시뻘겋게 강조를 하며
그려봐야 해마에 저장됩니다.
오프라인 강의가 왜 중요한지, 강사와의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처절히 깨달은 하루의 땡땡이였습니다.
한솥밥을 먹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같이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감정의 공유까지도 한다는 의미입니다.
감정이 공유되고 교류되어야 제대로 전달받게 됩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루의 땡땡이는 일주일의 고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루 열심히 하면 될 것을, 일주일을 동영상보고 익혀야 할 것입니다.
하루 땡땡이 친 것을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러다 또 땡땡이 칠 일이 생기면  어떻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