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7

 

박사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벌써 다섯 시가 넘었나! 빨리 나가려고 바쁜 마음으로 침낭을 꾸리니 잘 넣어지지 않고 말썽을 부린다. 꾸리지 말고 그냥 나갈 것을! 꾸물거리고 늦게나간 것이 후회스러웠다.

박사님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구는 처음에 캄캄했는데 지구에 대기가 생기면서 낮과 밤이 생겼다. 그래서 남반구와 북반구의 별자리가 틀린다.”고 했다. 이어서 “춘분점은 3천 년 전에는 염소자리에, 2천 년 전에는 물고기자리에 있었고, 앞으로 7백년 후에는 물병자리로 옮겨진다. 2천 년 전, 기독교인들은 물고기를 그려 그리스도를 표시했다.”고 했다. ‘쿼바디스’ 라는 영화에서 물고기를 그려 자기의 종교를 암시하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별자리 설명을 들으면서 어제 외워둔 별자리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늘 새벽에 별자리를 볼 때, 위로 길게 뻗어있는 전선줄이 눈에 아주 거슬렸다. 굵은 세 줄의 긴 전선줄이 왜 그리 밉상스러운지! 문명의 발달은 생활에 편리함은 가져다주지만, 자연을 가리고 해치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에 때로는 밉상덩어리로 보였다.

벌써 동쪽으로 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이 올라오지만, 아직도 금성과 목성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5시 45분이었다.

별강의가 끝난 후, 처음으로 식사당번을 도우러갔다. 항상 뭘 적는다는 핑계로 한 번도 도와주지 못했는데, 어제 당번을 해보니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식사준비가 된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도움을 못주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누룽지와 밑반찬, 간단한 아침식사였다.

훤하게 밝아졌다. 오늘 아침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음이다. 몽골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려워 언제 날씨가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만점짜리 날씨이다. 해가 떠올라 대원들이 잔 텐트 위를 비추고 있었다. 자갈이 많이 깔려있는 초원 위를 아낌없이 골고루 빛을 주고 있었다. 어제 저녁은 식사당번이라서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이제야 내가 자갈밭 위에 잤다는 것을 알았다. 자갈 틈새로 다육이가 빼곡하니 배겨서 사는걸 보고, 살아가려는 생명의 끈질김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새벽에 새벽별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 내 옆자리의 신양수님이 버스에 올라오니, 아까 사진 찍던 장면이 떠올랐다. 별을 무대로 하는 사진은 보기보다 까다로웠다. 먼저 빛을 잠깐 비추고 나서 촬영하는 작업인데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뒤에 무사히 찍었다. 찍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찍히는 사람도 고역이었다. 박사님 말씀에 서 호주 탐사 때는 30분이 걸린 적도 있었다고 하니 서로가 힘들었을 성 싶었다.

어제저녁도 모기 때문에 고생했다. 몽골 모기는 굉장한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기에는 날 파리처럼 소리 없이 떠도는 것 같은데, 물리는 줄도 모르게 한 방 물리면 적어도 일주일은 벅벅 긁어야 했다. 그것도 한참 잠에 취해 있는 한밤중에 가려우니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엔 안 일어나려고 발가락으로 긁지만, 결국은 일어나서 손으로 벅벅 긁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었다.

7시 출발인 줄 알고 버스에 오르니 기사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평소에 이시간이면 버스 안이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있는데 이상했다. 대원들이 흔들어 깨우려고 하니 손을 흔들며 더 자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기사들은 우리보다 더 피곤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는 모양을 보니 안쓰러웠다.

떠나기 전, 문순표님의 구령에 맞춘 아침체조는 항상 즐거웠다. 곁들어서 오늘은 솔다렐라님이 피로를 푸는 운동을 가르쳐 주어서 따라 했더니 몸이 가뿐했다. 9시 오픈하는 박물관을 8시에 열도록 유로선생님이 교섭을 해놔서, 가까운 곳이라 10분 전에 바양홍고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버스의 열기는 대단했다. 몇몇 대원은 별자리를 마스터하고 메시아 넘버로 들어가서 외우는 중이었다. 양쪽차가 경쟁의 불이 붙어 불꽃이 붙었다. 박자세가 바라는 학습모드로 가고 있었다. 나는 내 힘에 맞추어 천천히 하나씩 차근차근 익혀가고 있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친구의 편지를 소개한 글에“ 여보게 친구! 나는 빨리 피어서 빨리 져버리는 홑 벚꽃이 되기보다는 늦게 피지만, 오래가는 겹 벚꽃이 되려고 하려내!”라는 구절이 있었다. 선생님의 친구는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조감독으로 대기만성(大器晩成)하겠다는 표현을 이렇게 쓴 것이었다. 이 편지글은 무척 공감을 준 글이었기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도 대기만성을 꿈꾸며 부지런히 해 볼까나!

박사님이 오늘 일정은 B.C 3000년 전의 암각화를 보고, 모래언덕까지 갈 예정이란다. 또 인류가 75만년전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동굴도 간다고 했다.

버스에 오르니 신양수님이 고장 난 인버터를 고쳤으니 충전 할 분은 하라고 말했다. 신양수님은 기계를 잘 본다. 맥가이버 같은 존재이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분이라 존경스럽다. 인버터 세 개 중에 두 개가 고장이 나서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정말로 다행이었다. 박순천님은 인버터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충전기를 꽂아놓았는데, 충전기가 없어져 전화사용을 못해서 애를 먹었다. 여러 번 분실광고를 했건만 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바양홍가르는 큰 도시라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가운데 하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비포장도로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다리도 놓여있었다. 그런 편리함이 있는 대신, 길가에 쓰레기더미가 곳곳에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도시의 중앙도로에는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라는 것을 알리는 간판이 줄지어 서있었다.

버스에서 육식공룡인 타르보사우루스에 대한 박사님의 설명이 있었다. 이 공룡은 중생대의 백악기 후기인 1억 5천만 년 전부터 6천만 년 전까지 살았으며, 이곳 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8천만 년 전 것으로 길이가 10m나 된다고 했다. 이 공룡은 처음엔 머리 부분만 발굴되었는데 완전한 모습을 갖춘 것은, 한국 경기도 화성시와 국제공룡탐사단이 공동발굴조사 하여 8t 분량의 나머지 부분을 찾아내어 맞추었다고 했다. 지방의 행정기관이 이런 돈을 투자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타르보사우르스가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가 티라노사우르스가 된 것이라고도 했다.

박물관은 조금 낡고 후진 건물이었다. 먼저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박사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생대동물에는 바다 밑에 살았던 해양무척추동물이며 절지동물문인 삼엽충이 있었고, 이 동물은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를 거쳐 페름기말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다음 중생대에는 공룡이 출현했고, 신생대에 들어와서 포유류가 번성했다.

처음 들어선 곳은 여러 가지 암석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 흑요석에 대해 설명을 했다.

흑요석은 화산에 의해 생긴 것으로, 규산이 풍부한 유리질 화산암으로 화강암이나 유문암에 해당된다. 색깔은 흑색, 갈색, 적색, 회색 등이 있다. 석기시대에는 사냥감을 가르는 칼과 같은 역할을 했으므로, 흑요석의 발굴로 원시인들의 이동경로를 추측할 수 있다.  면도칼도 만들 수 있는을 정도인 흑요석은 귀한 것이라 옛날에는 화폐와 같은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다음 전시실은 몽골 식물들의 표본과 씨앗, 이상하게 생긴 나무뿌리, 약초로 만든 약 종류가 병속에 들어있었다. 표본 중에는 우리 탐사대가 다니면서 본 식물도 눈에 띠었다. 그 외에 몽골지역의 지리, 환경 분포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세 번째 전시실은 곤충류의 표본, 특히 나비의 표본이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거의 보지 못했던 곤충들이었다. 병속에 담긴 것은 도마뱀의 종류와 개구리 종류였다. 뱀과 물고기의 표본도 많이 있었다. 또 표범, 여우, 늑대 등의 털가죽이 전시되어 있었고, 몽골지역에 사는 조류와 동물들을 박제해 놓은 전시실에는 동물과 조류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일층 전시실에 전시물은 대략 이러했었다.

이층 전시실의 복도에는 조류의 사진과 함께 공룡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조류의 박제품은 35개인데, 바닥에 전시되거나 벽에 걸려있었다. 사슴과 순록의 뿔도 걸려 있었다. 동물의 박제 전시실에는 산돼지, 사슴, 순록, 낙타, 염소, 양, 말 등이 있었고, 뿔이 길어서 둥그렇게 말린 양과, 뿔이 길게 위로 솟은 양도 있어서 신기했다. 박제 전시실은 산과 들판을 배경으로 해서 전시되어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의 주인공은 공룡이었다. 벽 한 면을 다 차지하고도 옆 전시실까지 뻗어있어서 놀랐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타르보사우루스라는 육식공룡이었다. 육식공룡은 본래 위석이 있을 수 없으나 발견이 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공룡의 알도 보고 싶었으나 이 박물관에는 없어서 좀 섭섭했었다. 방명록에 한글로 ‘위대한 땅! 지금은 있는 그대로 담아갑니다.’ 라고 썼다. 여기까지 메모하고 나니 파란색 볼펜의 잉크가 다 떨어져서 다른 볼펜으로 바꿨다. 전번 박자세 바자회 때 경품으로 받은 것으로 볼펜 한 자루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메모지도 여섯 장 밖에 남지 않았다.

걸어서 역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 앞에 큰 말위에 작은 말이 올라서 있는 석조상이 높은 기단위에 있었다. 역사박물관은 올해가 휴식년이라 내부의 유물들을 정리하기 때문에 공개를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고는 바깥경치만 보고 있었다. 유로선생님이 박물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협상이 잘되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대신 전시실은 네 곳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박물관은 1949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현관에 사슴 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현재 몽골에 남아있는 사슴 돌은 700여개이고, 돌궐족에 의해 세워진 돌사람은 500여개라고 박사님이 말했다. 몽골에는 초기 구석기시대인 8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청나라 때 아홉 가지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매우 끔찍한 장면도 있었다. 기마민족인 선비족과 흉노족의 유물로 여러 종류의 버클이 있었는데 버클은 말을 탈 때 가장 필요한 도구로 물건을 고정시켜 말을 안전하게 타도록 하는 도구로 썼다. 선비족의 묘용씨는 신라로 와서 귀족의 한 일파가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것은 선비족은 생활도구로 청동기물을 사용했는데, 신라에서도 청동기유물이 같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몽골의 탈모양이 벽에 걸려 있는데, 머리에 해골을 이고 있는 귀신, 할아버지, 소, 어린이, 이마 가운데 눈이 있는 귀신 등의 탈이 있었다. 할아버지 탈은 우리나라 하회탈과 비슷했다.

둘러보니 곳곳에 석기시대 원시인들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었고, 게르가 있는 초원의 풍경도 그려져 있었다.

불교용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동으로 만든 긴 나팔과 징이 있는데, 이것은 불교행사 때 징도 울리고 나팔도 불어서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도록 하는 것이다. 벽에 그렸던 불화의 파편, 정교하게 돌에 새겨 놓은 부동명왕, 염불할 때 쓰는 불교용구인 요령, 금강저, 나팔처럼 불 수 있는 큰 소라껍질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 백팔염주, 나무열매나 뼈로 만든 단주 등도 있었다.

검은 탈과 흰 탈을 쓰고 춤추는 의상은 매우 화려했다. 임지용님은 그 탈의 표정에 매료되어 몇 번이나 카메라를 눌러댔다. “신들의 향연” 이라는 티베트의 기록영화에서 보름날 기도를 올릴 때 이와 비슷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탈의 얼굴은 귀신 모양이고 머리위에 다섯 개의 해골을 이고 있는데 해골마다 불꽃을 이고 있어 무서운 형상이었다. 화려한 옷에 흰 구슬을 주렁주렁 걸었고 가슴에는 동그란 금색 판을 달고 있었다.

청동으로 만든 작은 불상과 보살상, 탑, 불교 의식에 쓰는 불구 등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사찰에서 쓰는 밥그릇, 향로 등도 있고, 크지는 않지만, 채색이 되어 있는 불상과 보살상, 승려상도 보였다.

유리로 된 전시함에는 검은 색 바탕의 종이에 금색, 은색, 빨강, 파랑, 초록 등의 색깔로 필사를 한 경전의 두루마리가 일부분만 펼쳐져 있었다. 말려져 있는 부분은 상당한 두께였다. 가는 붓으로 쓴 작은 글씨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내하는 사람의 설명을 유로선생님이 통역을 했는데, 이 필사경전은 3.5kg의 금이 들었다고 하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림과 함께 글로 쓴 것을 필사한 것으로 그림은 채색을 하였다. 몽골의 국보라고 했다.

전시실 정면에는 청동으로 만든 보살상이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한쪽 발을 아래로 드리웠고, 또 한분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손모양은 둘 다 같으며, 왼쪽 손은 엄지손가락을 구부렸고 오른쪽 손은 엄지와 검지를 맞잡고 있었다. 청동주물인데, 매우 정교하게 조각이 되어 있었다. 특히 젖가슴이 선명하게 표현된 보살상이었다.

한편에는 B.C 4-3세기에 만들어 진 작은 종이 놓여 있는데 종에는 새, 구름, 물고기, 연꽃 등이 양각으로 조각이 되어 있었다. 금이 간 청동 불두와 코 부분만 남아있는 불두도 따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가슴이 찡하니 쓰라렸다.

붉은 주칠을 한 가구, 천에 자수를 놓아 만든 불화, 복숭아나무와 신선이 그려져 있는 신선도 등등도 볼 만 했다. 몽골의 유명인들의 사진, 역대 칸들의 초상화, 몽골문자의 변화와 글씨, 구루칸에서 나온 체스 판, 몽고의 설화를 바탕으로 그린 민화 등 너무 볼거리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악기의 꼭대기에 말머리가 조각되어 있어 마두금(馬頭琴)이라 불리는 악기는 몽골어로 모린 톨로가이홀(morin-toiogaihole)이라 부른단다. 현이 두 줄 있는 악기지만, 어떤 장르의 음악도 연주가 가능하다고 유로선생님이 말했다. 연주할 줄은 모르지만, 집에 장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기 집에도 장식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 악기는 사랑하는 말이 죽은 뒤, 그 말을 기념하기 위해 말머리를 장식하여 악기를 만들어 말이 보고 싶을 때마다 마두금을 타면서 죽은 말을 떠올렸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악기라고 말했다. 열 개의 현이 있는 거문고 비슷한 악기도 있었다.

양 뼈로 만든 작은 뼈들이 매트위에 쌓여 있어서 뭐하는 것인가 궁금해 했더니, 샤가라는 놀이라고 했다. 박물관 직원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아! 공깃돌 놀이!” 라며 저마다 매트위의 양 뼈를 집어 공깃돌을 받으니 곁에 서 있던 몽골사람들이 더 신이 난 듯 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공깃돌 놀이가 몽골에도 있었다니! 놀라움을 넘어 문화의 공통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잠마바자르가 청동주물로 만든 유물을 보고 싶었는데, 어느 것인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보느라고 지나쳤던 것 같았다. 유심히 살폈는데 굉장히 아쉬웠다. 나중에 박사님께 들으니 복사된 것이 있었다고 했다. 복사된 작품이라도 잘 보고 올 걸! 하며 후회스러워했다. 더 보고 싶었으나 시간의 제약을 받아서 다음으로 미루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메마른 들판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여태까지는 비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이젠 햇볕이 따갑게 느껴져서 선글라스를 꺼내 끼었다. 선글라스를 끼면 사물이 환히 보이지 않아 잘 끼지 않는데 눈이 시어서 어쩔 수 없었다.

별밤 169p, 흔들리는 버스에서 쓴 글씨라 페이지를 알아볼 수 없어 덮어 두었다가 자세히 보니 169p는 6이 0로 보였고, 페가수스는 페이지를 확인한 뒤에 알아보았다. ‘우주의 창문’이라고 불리는 페가수스는 사각형으로 이 별은 별밤의 중요한 안내자이다. 사각형의 동쪽 변에 해당하는 두 개의 별은 정확하게 춘분점의 북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적경은 춘분점에서 적도를 따라 동쪽으로 잰 천체의 각거리이며, 적위는 천구 적도에서 천체에 이르는 남쪽(-) 또는 북쪽(+) 방향의 각거리를 말한다. 천구 적도에 위치한 별의 적위는 0〬 이고 북극 근처에 위치한 북극성의 적위는 90〬 이다. 적도와 극의 중간에 있는 데네브의 적위는 45〬 이고, 포말하우트는 적도의 남쪽으로 30〬, 즉 -30〬 의 적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적경은 시간처럼 시, 분, 초로 측정된다. 하늘의 적도는 춘분점을 기준으로 동쪽 방향으로 24시로 나눠져 있다. 페가수스 사각형의 동쪽 변에 해당하는 별들과 카시오페이아자리 베타별의 적경은 0시에 가깝다. 알데바란은 4시 33분의 적경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별밤 161p, 춘분점은 시간의 기준점으로, 봄은 태양이 황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천구의 적도를 가로질러 북쪽하늘로 들어갈 때 시작된다. 하늘의 이 교차점과 태양이 그곳에 있는 순간을 춘분점이라고 부른다. 황도의 기울기는 23.5〫 로 지축의 26,000년에 걸친 비틀림 운동으로 적도는 천천히 기운다. 따라서 교차점의 위치도 별자리를 배경으로 황도를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한 달에 30도, 일 년에 360〫 움직인다. 이 느린 변화를 세차 운동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별밤 113p, 헤라클레스자리의 멋진 보석은 거대한 구상성단(球狀星團)으로 메시에 목록 M13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성단은 지금까지 100개 정도 알려져 있다. 구상성단은 우리 은하 주위에 거대한 공 모양의 무리(halo, 해와 달의 주위에 생기는 둥근 테와 같은 것 )처럼 퍼져 있다. 일반적인 성단은 대략 지름이 150광년이고, 수십만 개의 별을 포함한다. 가장 밝은 구상성단은 켄타우루스자리의 오메가별(오메가 켄타우리)이라 했다. 별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다음은 190-191p, 안드로메다의 보석은 대성운 M31이다. M31은 우리 은하와 같이 구상성단들의 후광과 몇 개의 위성 은하를 가지고 있다. 에드윈 허블이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를 재는데 사용했던 것은 카페이드 변광별들이었다. 200만 광년의 거리에 있어 단지 밝은 별만 보이나, 실제로는 눈부신 나선구조 속의 수천억 개의 별들에게서 나오는 빛이었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고 했다.

오늘 별자리학습은 계속되었다. 별밤40-41p의 하지점, 춘분점, 동지점, 추분점 자리가 세차운동에 의해 B.C150년의 자리와 현재의 자리변화가 도표로 상세히 나와 있다.

128p, 여름철 대삼각형 별자리는 백조자리의 데네브, 거문고자리의 베가(직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견우)이다. 이 별자리는 8월 하늘의 가장 좋은 이정표이다. 오늘 배운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경, 적위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고 박사님이 거듭 강조했다.

187p,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이 처음 기록 된 것은 1054년 게 성운을 만들었던 폭발 때이다. 그 다음은 1572년 르네상스 시대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에가 발견하였다. 117p, 1604년 발견된 초신성은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광범위하게 연구되었고 ‘케플러의 별’ 로 알려지게 되었다.

12시 반쯤 점심 먹을 자리에 내렸다. 점심은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하게 마쳤다. 풀이 듬성듬성 난 곳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부추를 닮은 풀이 많았다. 몽골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라 유로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구무트’라는 풀이라고 했다. 이곳은 거의 90%가 이 풀이다보니 그 위를 달려 온 차바퀴에서 마늘냄새가 진동을 했다. 잎을 씹어보니 꼭 풋마늘 맛이었다. 몽골사람들은 파나 양파가 떨어지고 없으면 그 대신 이 풀을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많이 먹으면 열이 많은 것이라 코피가 난다고 하니 수족이 냉한 사람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만약 약으로 만들어 팔면 잘 팔릴 듯했다. 또 겨울에 가축들이 병이 나거나 힘이 없으면 풀과 섞어 먹이면 기운을 차린다고 하니 좋은 약초임에는 틀림없으리라.

여태까지는 쭉 낮은 산들이 보였는데 여기서부터는 초원 끄트머리까지 산이 보이지 않고 풀이 성글게 난 사막의 초원이다. 오는 도중에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낙타와 말, 양과 염소 떼만 보였다.

사막은 모래로 되었다고 다들 생각하는데 진흙땅이 많았다. 비만 오면 진흙탕길이 되어버려 차가 다니기 힘든 것까지는 좋은데, 진창에 빠지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오늘은 그런 걱정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오후 3시5분, 모래언덕에 도착했다. 바양홍가르에서 150km 달려온 곳이다. 해발은 1900m라고 말했다. 모래가 너무 보드라우니까, 기사들은 내리자마자 피곤한 몸을 모래위에 던지고 벌러덩 누워서 모래찜질을 즐겼다. 그 동안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신을 벗고 맨발로 모래 위를 걸어보았다. 발밑에 밟히는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져서 계속 걸으며 그 느낌을 즐겼다. 모래언덕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는데, 돌아다보니 모래바람으로 생긴 물결무늬 위에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푹푹 패여 있었다. 바람이 세차서 옷에도 모자에도 모래가 날아들어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바람이 부는 반대쪽으로 앉으니 다행하게도 모래먼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대원들은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모래언덕에 누워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이 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대로 누워 하늘과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무언의 대화를 끝없이 흘리면서 하늘을 닮아가고 싶었다.

모래언덕에 앉아 글을 쓰려고 발로 모래 밑을 파보니 이내 축축한 보래가 나왔다. 거기에 발을 집어넣으니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보니 작은 관목들이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뿌리가 깊어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을 성 싶었다. 아까 내가 만든 발자국은 바람에 실려가 없어져버렸고, 나는 새로운 자국을 만들며 내려왔다. 우리들이 떠나도 모래바람은 파도 만들기를 반복하리라!

잘 오다가 차가 하나 강물에 빠졌다. 강을 따라서 오니까 아슬아슬하더니 다 와서 또 스타렉스가 빠져버렸다. 오후 4시50분이었다. 비가 많이 왔었는지 모래톱이 1m가량 쓸려 내려간 흔적이 보였다.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 강을 건넜다. 버스가 줄을 메어 스타렉스를 끌어올렸다.

이제부터는 처녀젖무덤 같은 언덕이 이어지는 초원이 나왔다. 언덕은 연초록으로 싱그러웠다. 초원도 엊그제 내린 비로 연두색 풀이 다시 돋아나와 갓 삭발한 머리처럼 산뜻해 보였다. 들판에 풀이 나지 않은 곳은 황토색, 풀이 난 곳은 연초록이라 한 폭의 파스텔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일직선으로 된 언덕이 이어지고 있는 곳에서 수백 마리의 양떼를 만났다. 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라 움직이는 동물만 만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비가 많이 내린 덕분에 파릇파릇 새로운 초지가 조성되어 멀리서 보면 파스텔 물감을 발라놓은 듯해서 신기루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비한 색깔이었다. 지금 지나가는 곳은 해발 2200m라고 옆에 앉은 신양수님이 말해 주었다. 백두산보다 높은 곳을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공연히 으쓱해졌다.

길 양옆이 협곡으로 이루어진 곳에 내렸다. 오후6시경이었다. 하트트코트라는 이 협곡은 기암절벽으로 되어있는 제법 높은 산이었다. 사막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깎아지른 바위가 있는가 하면 바위가 구르다가 멈춘 것 같은 것도 있고, 돌들이 굴러 내려온 곳도 보였다. 드넓은 초원만 보다가 협곡으로 들어서니 그늘이 져서 으스스하니 추웠다. 제법 길게 뻗어있는 협곡이었다. 버스기사 아들이 아버지한테 애교를 떨며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자, 아버지는 아들 찍어주느라고 바빴다. 부자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바위가 많은 곳이니, 박사님의 암석 강의가 빠질 수 없었다.

암석은 생성원리에 따라 화성암, 변성암, 퇴적암으로 나누어진다. 화성암은 마그마가 식어서 된 것으로 실리카(sio2)가 60%이상이면 산성암, 52%이하면 염기성암, 그 중간은 중성암으로 분류된다. 화성암에는 흑운모화강암, 규장암, 도색화강암, 현무암, 유문암, 섬록암, 마산암 등의 종류가 있다. 변성암은 높은 온도와 압력에 의해 변성작용을 받아 액체로 변하지 않고 고체 상태에서 변화된 암석이다. 엽리(葉理)가 있는 편암과 편마암, 엽리가 없는 대리암, 사암이 변성한 규암, 세일 등이 있다. 지하 16km까지의 지각에는 95%이상이 화성암이고, 지표근처는 75%정도가 퇴적암이다. 퇴적암은 물과 바람 등의 운반작용에 의해 지표의 낮은 압력과 낮은 온도상태에서 퇴적작용을 거쳐 만들어진 암석이다. 쇄설성 퇴적물은 이암, 사암 등이 있고, 화학적 퇴적물은 암염, 처트 등이 있으며, 유기적 퇴적물은 규조토 등이 있다.

그린스톤이라 불리는 녹색암은 20억 년 이상 되었고, 흑운모와 편무암은 22억 년 된 것이 우리나라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이다. 화강암은 지구에만 있으며 43억 년 전부터 있었다고 했다.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해서 휴식을 조금 가졌다. 차들이 기름을 채우는 동안 마을구경을 했다. 붉은색 울타리, 청색이나 녹색으로 칠해진 대문, 적, 홍, 청 등의 원색 지붕 등이 있는 가운데 게르도 눈에 많이 뜨였다. 오후 6시가 넘었건만 햇볕은 아직도 따갑고 밖은 너무나도 훤했다.

버스에서 별자리 강의, 황도 12궁이라 부르는 별자리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연주운동을 하는 길에 있는 12개의 주요한 별자리를 말한다, 월별의 대표적인 별자리로, 양자리 (Aries)는 3월21-4월20, 황소자리(Taurus)는 4월21-5월21, 쌍둥이자리(Gemini)는 5월21-6월20, 게자리(Cancer)는 6월22-7월22, 사자자리(Leo)는 7월23-8월22, 처녀자리(Virgo)는 8월23-9월22, 천칭자리(Libra)는 9월23-10월21, 전갈자리(Scorpio)는 10월22-11월21, 궁수자리(Sagittarius)는 11월22-12월21, 염소자리(Capricorn)는 12월22-1월19, 물병자리(Aquarius)는 1월20-2월18, 물고기자리(Pisces)는 2월19-3월20이다.

박사님이 일등성 별자리를 외우라고 나를 지적했는데, 쑥스러워 외우지 못했다. 다른 대원들은 줄줄 잘도 외웠다. 나도 외우기는 했는데 실수할까봐 겁이 나서 아예 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열심히 해서 자신 있게 발표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야영지를 정했다. 처음엔 좀 비스듬한 곳이라 어떨까 했는데, 조금 위쪽에 평평하게 풀이 깔린 곳이 있었다. 사막이라고 해도 풀이 자라니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메마르고 척박해서 사막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텐트를 치는 저편으로 노을이 불그무레하니 물이 들었다. 박사님과 이화종님! 두 분이 서서 노을을 보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사진을 찍으면 멋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허 교수님이 저 장면을 놓치지 않고 그렸으면 좋으련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쓰던 글을 멈추고 노을을 좀 더 바라보아야겠다. 노을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까! 지는 노을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생기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오늘처럼 또 해가 뜨고 질 것이다.

오늘은 밖에서 강의를 하려는지 천막 앞에 하얀 화면을 걸어놓았다. 인버터도 고쳐서 충전을 충분히 했으니 전번처럼 강의 도중에 꺼지는 일은 없을 듯 했다.

식단은 햇반, 김치찌개, 마늘향이 나는 구무트의 꽃으로 장식한 햄 구이, 멸치와 오징어볶음, 깻잎조림, 김 등으로 푸짐하게 차려졌다. 돌아 갈 때가 다 되니 밑반찬이 총출동을 한 것 같았다. 아까 이우자님과 홍총무가 꽃을 따러 다니더니 그 꽃들로 햄을 장식한 모양이었다. 모두의 정성이 담겨진 만찬이었다.

저녁엔 밖에서 동영상으로 학습을 했다. 갤럭시, 슈퍼노바, 태양열 등의 영상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천문학은 거리를 재는 학문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별의 거리측정에 의한 것이라니! 정말로 천문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보며 박사님의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슈퍼노바는 우리 인체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와도 관련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고, 또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대기층이 있어 외부의 받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암각화와 동굴은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해 섭섭했지만,  정말 뜻있는 하루였다.

날씨가 좋아 별을 더 보려고 몇몇 대원들은 비박을 했다. 우리 텐트는 바닥에 까는 매트를 비박하려는 대원들을 위해 양보하고, 나는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