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8

 

새벽의 여명 속에서 반짝이며 떠오르는 시리우스를 보았다. 감격이었다. 벌써 10명이 넘는 대원들이 박사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모두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경청하는 대원들을 보니까, 학문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어영부영 살지 말아야지 하는 각오와 함께 뭐든 빈틈없이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별자리를 외우고 나니 별이 내게로 다가오는 걸 느꼈다. 모두가 박사님의 학습결과로 얻어진 소득이다. 슈퍼노바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의를 들었다. 카시오페이아의 정삼각형 자리 밑에 슈퍼노바가 있다고 한 뒤,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들을 땐 이해가 가는데,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내 것을 만들려면 외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외우지 않으면 평생해도 내 것이 안 된다.”는 박사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깡그리 외우세요!” 라는 박사님의 말이 귓전에 울렸다. 이제 금성과 목성은 확실히 안다. 옛사람은 금성이 서쪽에 뜨면 ‘태백성’, 동쪽에 뜨면 ‘개명성’이라 불렀다 했다.

이어지는 별자리 강의, 백색왜성(white dwarf, 白色矮星)은 태양질량의 1.4배 이하이고 크기는 평균적으로 지구보다 작다. 평균밀도는 0.6/㎤로 매우 높다. 이 별은 핵융합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내부의 열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천천히 식다가 빛을 내지 못하는 암체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 때 방출된 물질은 별 주위에 고리 모양의 행성상 성운을 형성한다. 또 이 별은 수소나 헬륨으로 이루어진 얇은 대기를 가졌고, 내부는 헬륨, 탄소, 철 등 무거운 원소들로 이루어진 고밀도의 축퇴상태를 지닌다. 백색왜성이 큰 거성과 쌍성을 이룰 경우 거성으로부터 물질이 유입되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고 했다.

동이 트니까 여명이 점점 사라져 붉은 기운도 스러지고 있었다. 동쪽이 밝아져오니 훤해지기 시작했다. 대원들 몇 명은 산등성이에 올라가 있었다. “식사하세요!” 고함을 질렀으나 들리지 않는지 꿈쩍도 안했다. 김철원 사장님이 호루라기를 후루룩 부니, 그제서 알아듣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이익우 회장님의 생일이라 특별히 미역국을 끓였다. 식사하기 전에 다 같이 생일축하노래를 부른 뒤, 박순천님이 특별히 마련한 작은 들꽃다발을 드렸다. 부부에게 기념촬영을 해드린다니까, 김성미님이 쑥스러워하면서 같이 찍었다. 모두 어울려 웃음이 가득한 속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공송심님이 특허를 낸 미역국은 너무 맛있어서 혀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이 표현을 경상도 말로는 “쌔(혀)가 깨금(뜀박질)을 뛴다.”고 한다.

아침 준비 할 때, 낮에 쓸 것까지 썰고 있었다. 김성미님이 채를 너무 잘 썰어서, 내가 서투른 솜씨 이야기를 꺼내니까 모두들 듣고 하하거리며 웃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에는 더 채를  못 썰었다. 내가 썰어놓은 무채를 보고 ‘목침’만 하다고 했으니까! 곁에 서있던 이화종님은 나와는 반대로 “네가 가스버너의 불 조절을 잘하니까, 만날 나만 시켜요”라고 불평 반 자랑 반을 했다. 그 말을 받아 문순표님이 “그건 그래요. 야외용 가스버너를 다루는 달인이니까요.”라고 해서 또 웃었다. 말은 느리지만, 가스 불은 빠르면서도 익숙하게 다룬다는 정평이었다. 그래서 ‘부주방장’ 이란 감투를 썼나보다고 생각했다.

몽골사막에서 우리나라에서 보던 풀이나 꽃을 만나면 반갑다. 우리가 잔 이곳에도 낮 익은 풀이 있었다. 명아주였는데 키가 작고 가늘었다.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손을 퍼뜨리고 사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또 하나는 산등성이 쪽으로 볼일 보러 가다가 본 강아지풀이었다. 우리 절에서는 잡초라고 여겨 뽑아버리는 귀찮은 존재인데 이곳에서 보니 정겹게 느껴졌다.

텐트를 걷고 물건들을 정리하느라고 저마다 바쁘게 설친다. 이런 광경도 내일이면 끝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일정이 너무 빨리 끝난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했다. 그래선지 이원구님을 비롯해 몇몇 대원들은 남아서 고비사막으로 며칠간 더 다닐 예정이라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나오면서 슬쩍 보니까 이익우님이 아침에 받은 꽃다발을 가슴에 꽂고 있었다. 꽃다발 냄새를 맡아보더니 혼자 웃으며 곁에 서있는 박사님에게도 맡아보라는 시늉을 했다. 마늘 냄새가 나니까 웃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그 꽃다발이 마음에 드시는지 내내  들여다 보았다.

떠나기 전, 야영지 근처에 있는 축사를 갔었다. 가축들을 가두어두는 우울쯔라는 곳이었다. 겨울이면 추워서 주로 양이나 염소 등을 가두는데, 가두는 집은 하시야라고 하며 나무울타리로 사방을 막아놓았다. 말하자면 가축피난소라고 할 수 있다. 가는 도중에 길바닥이 푹신푹신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양과 염소의 똥이 쌓여서 그렇다는 소리를 듣고 웃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우울쯔 안은 바닥전체가 다 양과 염소의 똥이었다. 매년 쌓이는 똥을 뭉쳐 벽돌을 만들어 담벼락위에 쌓거나 똥 벽돌로 아예 담을 쌓아서 사방의 담이 모두 똥 벽돌 담장으로 되어 있었다. 담장 높이는 1m는 족히 되어 보였고 담장 길이는 눈짐작으로 수십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말린 똥 벽돌은 연료로 쓰는데, 화력이 무척 세다고 유로선생님이 말해 주었다. 비가 와서 똥이 깔린 길을 쓸고 지나간 곳을 보니, 똥의 두께가 50cm는 더 되어 보였다. 그러다가 겨울에 가축을 먹일 풀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고 했다. 유목민의 게르는 4칸, 5칸, 6칸짜리가 있다고 했다.

아르항가이 쪽은 소가 많아서 한 집에 40~50마리 정도는 기른다고 하며, 바양홍가르 쪽은 염소나 양이 많다고 했다. 유로선생님에게 가축의 가격을 물으니, 한국 돈으로 소 한 마리는 100만 원, 작은 소는 50~60만 원 정도이며, 양 한 마리는 15만 원, 작은 것은 7만 원 정도라고 했다.

박사님 말씀이 이곳에서 40km 떨어진 곳에 ‘말을 탄 사람’이 새겨져 있는 암각화가 있다고 하면서 그것으로 보아 말을 길들여서 처음으로 말을 타고 기르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했다.

오전 8시쯤 야영지를 떠났다.

낮은 구릉이 연이어져 있는 길을 달리는데 넘으면 또 다른 구릉이 나오고 그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달리다가 높은 구릉을 만나면 가파르니까 버스가 힘들어했다. 동굴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낮은 구릉과 높은 구릉을 넘나들면서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달렸다.

동굴이 있다는 곳에 내렸다. 여기에도 몽골어로 ‘아와’라고 불리는 돌로 쌓은 탑이 있는데, 돌탑 앞에 커다란 소뿔이 놓여있었다. 양쪽이 바위로 되어 있는 협곡사이를 지나니 동굴이 나왔다. 몽골 운전기사 뭉크는 먼저 가서 동굴위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굴로 올라가보니 게르의 천정처럼 위가 둥그렇게 퍼져 있었다. 박사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동굴의 이름은 화이트 케이브(white cave)이고 길이는 38m, 높이는 10m라고 했다. 1987년부터 러시아와 미국학자들이 공동조사를 했고, 조사에 의하면 75만 년 전 초기인류가 살았던 곳이라고 했다. 동굴 옆에 위쪽이 뻥 뚫어진 곳이 보였다. 동굴 위로 올라간 대원들이 뻥 뚫린 구멍 사이로 웃으면서 손짓을 했다. 다른 대원들은 동굴의 좁은 굴속을 기어 들어가 보기도 하였다. 동굴의 벽화는 3만 년 전부터 주술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공주 석장리에서 80만 년 전에 인류가 살았던 터가 발견되었다. 북경원인은 50만 년 전의 인류의 조상이며, 인류의 기원은 170만 년~200만 년 사이에 호모 에스카르터,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진다. 인류의 이동은 자바에서 뉴기니아로, 뉴기니아에서 호주로 5만 년 전에 이동이 있었다. 인류가 아시아권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에서 남미로 이동하는데 10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동굴에서 나와 언덕위의 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니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시원했다. 30도가 넘는 더위지만, 건조해서 그런지 땀이 나서 끈적끈적한 무더위를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건조한 탓에 입이 마르고 목이 자주 말랐다. 사막에는 모기가 없다더니 어제부터는 사막지역이라 모기로부터 해방되었다. 모기는 초저녁에 나왔다가 밤에는 사라지지만, 때로는 낮에도 덤비는 경우가 있었다. 모기 때문에 고생을 해서 낮인데도 나올까봐 걱정했는데 여기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알타이산맥의 줄기가 줄지어 있는 것이 멀리 보였다. 버스 안에서 그 풍경을 보며 다음에는 알타이산맥 쪽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초원은 낮은 산중턱까지 이어져서 산자락은 연두색 파스텔 물감을 칠해놓는 것처럼 신비로운 색깔이었다.

중간에 게르가 여러 채 있는 곳에 잠깐 내리자, 몽골여인이 수제치즈를 들고 나와 맛보라고 권했다. 딱딱해서 씹기 어려웠으나, 짭짤한 맛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있다 가려나 했는데, 유로 선생님이 탄 차가 먼저 가버려 이내 출발을 해서 점심 먹을 장소에 내렸다.

먼저 떠났던 유로선생님은 오토바이를 탄 몽골남자와 함께 오면서 우유를 큰 통으로 한 통 가지고 왔다. 우유인 줄 알고 남영진님이 식사 전에 먼저 먹어보자고 건의를 했다. 먹어보니 구수하면서도 시큼한 맛인걸 보니 요구르트임에 틀림없었다. 알아보니 낙타요구르트라고 했다.

식사준비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별식으로 구무트라고 부추처럼 생긴 풀을 뜯어서 부침개를 부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돌과 모래가 섞인 사막에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풀은 구무트였다. 이렇게 지천으로 많으니 그걸 뜯어서 부쳐 먹어보려는 생각을 낸 모양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수제비를 반죽하고 있었다. 만들지도 않았는데 벌써 군침이 입안에서 돌았다. 사막에서 이런 손가는 음식을 먹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하늘에는 깃털 같은 구름이 날고 있는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리 넓은 곳이라 해도 몽골처럼 넓은 평원이 없다. 몽골사람들은 이런 넓은 초원에서 고르지 못한 기후 등 열악한 환경조건 가운데에서도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목생활을 하며 강인하게 버텨온 민족이었다. 그러니만큼 그 속에는 어떠한 난관이라도 능히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왔다고 본다. 현재의 우리들 눈에 겉으로 비치는 몽골은 우리보다 가난할지는 몰라도 앞으로 새로운 몽골을 보여줄 날이 머지않다고 생각한다. 몽골사막에 난 풀을 뽑으려고 하면 어찌나 깊게 뿌리가 박혔는지 손으로는 뽑히지 않는다. 악조건 가운데서 살다보니 뿌리를 깊숙이 내려서 살아가는 힘을 기른 것이다. 가느다란 풀이지만, 좀처럼 뽑을 수 없는 강인함을 지닌 것처럼 몽골사람도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사들 중에 한 분은 더위를 많이 타는지 낮에는 쉴 때마다 셔츠를 걷어 올리고 배를 드러낸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 이리 기웃거리고 저리 기웃거리며 관심을 표했다. 말이 통한다면 뭐라 말을 해 줄 텐데 서로가 답답한 노릇이었다. 못 알아듣는 말로 지껄여대기도 하는데 혀를 안으로 굴려서 말하기 때문에, 뜻은 물론 말도 도통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반대로 몽골사람들은 우리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조용히 앉아서 쉬고 있는데, 박순천님이 뭘 뿌린다. 뭘 하나 보니 빵을 잘게 해서 들판에 고루고루 던지고 있었다. 새들이나 들짐승들이 맛있게 먹어 줄 것 같았다. ‘어머! 이게 뭐야? 생전 보지 못하던 거지만 맛있네. 냠냠!’ 그러면서 먹을 거라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시장도 거의 없으니까 한꺼번에 빵을 많이 비축하다보니 아마 빵이 상한 게 있었나보다! 그냥 버리지 않고 들판에 뿌려서 먹게 하는 지혜가 놀랍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몽골기사님들 끼리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렌지주스 한 통을 돌려가며 마시면서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모르지만, 가끔 웃는 것으로 보아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가는 모양이었다. 보통 때와는 달리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안 되는 소리인가? 우린 알아들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등 뒤로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니까, 목덜미가 뜨거웠다. 목수건을 목뒤로 해서 묶었다. 어디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갑자기 볼일이 보고 싶어졌다. 밤에는 여자들을 위한 전용텐트가 있어 좋은데, 사방이 훤하게 트인 이런 곳에서는 정말 난감하다. 이 일처럼 중요한 일이 없는데, 남이 안 보는 곳에서 빨리 마치려고 둘러보았다. 다행히 사람들의 시선이 안 가는 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 있어서 얼른 가서 급한 볼일을 보았다. 우유, 요구르트 등을 먹어서인지 변비가 없어서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 학습탐사에서 유심히 눈여겨 본 사람이 둘 있는데, 같은 버스에 탔다는 인연도 작용을 했다. 김양겸학생과 솔다렐라님이다. 김양겸 학생의 별자리도표는 누구라도 알기 쉽도록 잘 그려놓아서 다른 대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내방식대로 공부하는 편이라 빌려보지 않았지만, 그린 걸 보고 정말 감탄했다. 그 다음 솔다렐라님! 누가 뭘 물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하는 성의! 보통사람은 어려운 일이다. 홍총무님은 ‘병원에서 주로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치료를 하기 때문에 몸에 밴 친절이다’라고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본래 그런 좋은 성격을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앞으로 박자세를 이끌어 갈 기둥이 될 재목들이니 귀하게 여겨야 될 것 같았다.

아! 한 사람 또 빠트릴 뻔했다. 앤디강훈님이다. 앤디로 불리는 임동수님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대원 33명, 가이드, 기사들까지 합치면 총39명이라는 숫자는 장난이 아닌데, 묵묵히 그 뒷바라지를 군소리 한마디 없이 치러내는 것을 보고, 겉보기보다 속이 깊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 누가 어떤 부탁을 해도 “예! 예!”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받아드리는 마음가짐! 본받고 싶었다.

“점심 드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은 구무트를 넣고 부친 부침개접시였다. 접시위에는 꽃을 꺾어 장식해 놓아서 정성이 돋보였다. 황태를 넣고 끓인 밀수제비, 짬뽕라면에 밥을 넣고 끓인 짬뽕 밥, 그리고 밑반찬 등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떠나기 전에 다 퍼주고 갈려는 모양이었다. 갈수록 풍성해지는 식단에 모두의 얼굴에 행복바이러스가 넘쳐흘렀다. 모두들 합심해서 훌륭한 오찬을 꾸며준데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고 먹었다.

정확하게 12시 56분에 출발했다.

버스 강의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아! 점심도 많이 먹었으니 조금 있으면 잠 오니까, 졸기 전에 시작할게요.” 이 말을 듣고 웃을 수밖에! 사실이 그러니까 할 말이 없었다.

인류에 대한 강의였는데 요약하면 대략 이러했다.

15,000년 전 남북미대륙에서는 모음만 사용했다. 호모 네안데르탈인은 멸종된 인류의 한 종이었다. 현생인류의 호모 사피엔스와 가까운 종이었으나 분절 언어를 발성하는 능력이 낮았을 가능성이 높아서 사회적 지능이 낮았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자음과 모음을 쓰는 분절음을 사용했다. 인간의 지능에는 도구기술지능, 자연사지능, 언어지능, 사회적 지능이 있는데, 네안데르탈인은 언어지능과 사회적 지능이 없었다. 예를 들면, 점심에 구무트라는 풀을 이용해서 부침개를 만든 것은 자연사 지능에 속한다고 했다. 또 아침에 박순천님이 야생화로 꽃다발을 만들어 이익우회장님께 드린 것도 자연사지능에 속한다고 박사님이 말했다. 인간의 숫자가 150 이상이 되면 진화라고 하고, 150 이하가 되면 멸종이라고 한다. 진화와 멸종의 구별은 숫자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이 직립하게 된 것은 300만 년 전부터이다. 인간은 브레인이 완성되기 전에 아이를 낳는데, 낳았을 때는 뇌가 반만 자란 상태이다. 나머지 반은 아이가 자라면서 완성된다고 했다.

가는 도중에 스타렉스가 언덕을 올라오지 못하고 또 빠졌다. 할 수 없이 모두 내리게 되었다. 휴식하는 동안에 합심해서 끌어올렸다. 오후 2시 10분경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경주 남산과 비슷한 모양을 한 산을 보았다. 산 밑에는 경주 왕릉 같이 생긴 것도 보였다. 어쩜 그리도 남산하고 닮았는지 희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다가 넓은 평원이 펼쳐진 곳에서 휴식을 가졌다. 초원에서 말 몇 마리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휴식시간마다 여자대원들은 볼일 보는 장소를 마련한다. 큰 보자기나 우산으로 몇 명이 가리고 즉석화장실을 만들면, 그 아래서 편히 볼일을 보는 것이다. 자기네들도 가리고 있는 것이 우스운지 깔깔대며 웃어댄다. 때론 남녀가 양쪽으로 갈라서서 볼일 볼 때도 있으나, 여기처럼 평평한 곳에서는 서로 보이니까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간이 화장실 곁에 하얀 나비가 날고 있다. 몽골 와서 처음 보는 나비였다. 메뚜기, 벌, 개미 등은 보았지만, 나비는 보이지 않았다. 자연사박물관 표본실에는 나비종류가 많았는데, 왜 안 보였는지 모르겠다.

몽골은 비포장도로가 많아 승용차는 다니기 어려울 것 같은데 가끔 보인다. 비포장이라 길도 울퉁불퉁하고 비가 내린 뒤엔 진흙탕길이 되거나 진흙수렁이 되어 차가 빠지기 쉬운데 승용차는 어떻게 그런 길을 피해 다니는지 궁금했다.

비가 와서 움푹 파인 차가 진흙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일, 비온 뒤 모래땅이 물러져서 버스가 가지 못하고 내려앉은 일, 전날 온 비로 강물이 불어 차가 강물을 못 건너온 일 등등, 정말로 난관이 많았지만, 잘 이기고 예까지 온 걸 감사해야겠다.

버스 강의실, 낮에 많이 먹어서인지, 아니면 피곤해서인지 박사님의 강의소리가 들리는데도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그런 와중에도 흔들리며 쓴 단편적인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스팩트럼(spectrum).

빅뱅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조지 가모프

모든 우주는 빛이다.

광속불변의 법칙-상대성이론

전자기는 빛이다.

빛은 길 없는 길을 간 적이 없다.

에너지의 불연속

막스플랑크-양자역학 등이 적혀 있는데 무슨 말을 들었는지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모래먼지를 날리면서 달리는 사막의 길! 뿌연 바람을 일으키며 버스 안으로 날아든다. 건조해서 목이 마르니 물을 많이 마셔 물통에 물이 다 떨어져 조그마한 소도시에 도착해서 우선 조금 사기로 했다. 마을의 가게에서 사온 물은 고작 500ml 4병이었다. 전부 사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목마른 사람들만 갈라서 마시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지금 오후 7시 5분인데, 5시간을 더 가야 물을 살 수 있다니 그때까지 참아야겠다.

아까 졸았기 때문에 무슨 강의를 했는지 물어서 알아냈다. 양자역학에 대해서였다.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막스플랑크는 아인슈타인을 발굴한 사람이었다. 양자역학 이론의 흐름은 1900년 플랑크의 양자이론 제안, 1905년 아인슈타인의 빛 알 이론, 1913년 보어의 새로운 원자모형 제안, 1925년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요르단의 행력 역학 이론,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발표 등으로 이어진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 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반도체나 초전도체의 기본 메카니즘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나노기술이나 양자계산 등과 같이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인식론과 같은 철학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양자역학은 문학과 예술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양자역학의 이론으로서는 형광 현상, 냉광 현상, 광전효과, 진동수, 파동함수, 불확정성 원리 등이 있다.

다시 버스 강의실, 박사님이 김양겸 학생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그려져 있는 상대성이론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은 뭐가 먼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이어서 별자리 외우기를 지명했는데, 김철원님, 조서연님, 김양겸님, 문영미님 등이 완벽하게 잘 외워서 박사님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매번 지명을 하는데 다른 대원들도 잘 외웠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별자리 외운 것을 정리해보았다.

적색은 세 개로, 오리온자리 베텔기우스, 전갈자리 안타레스, 황소자리 알테바란이다.

황백색은 두 개로, 마차부자리 카펠라, 작은개자리 프로키온이다

주황색은 세 개로, 목동자리 아크투르스, 쌍둥이자리 폴룩스, 카스토르이다.

백색은 다섯 개로, 백조자리 데네브, 처녀자리 스피카, 사자자리 레굴루스, 거문고자리 베가(직녀성), 독수리자리 알타이르(견우성)이다.

그 외에 물고기자리 포말하우트, 용골자리 카노프스 (노인성) 등을 합한 것이 15 개의 일등성 별자리이다.

그중에 적색거성 여섯 개의 크기를 차례로 나열하면, 오리온 자리 베텔기우스, 전갈자리 안타레스, 황소자리 알데바란, 마차부자리 카펠라, 목동자리 아크투르스, 쌍둥이자리 폴룩스 이다.

큰 바위들이 듬성듬성하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곳에 야영지자리를 정했다. 좀 떨어진 곳에 염소와 양떼 무리가 보이는데 족히 500 마리는 넘어 보였다. 바위에 앉아 노트에 정리한 별자리 색깔을 외우고 있는데, 박사님이 지나가면서 뭐하느냐고 물었다, 계면쩍었지만, 별자리 외우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냥 웃으며 지나갔다. 저녁 8시 무렵이라 어둠이 차츰차츰 밀려오고 있었다. 공책을 덮고 하늘을 보니 구름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오늘밤 하늘의 별자리는 잘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은 늦은 시간이라 남은 것들을 활용해서 이것저것 내 놓은 것을 각자 취향대로 먹었다. 햇반, 컵라면, 그리고 낮에 남은 잔반들을 나누어서 다 먹어치웠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잠자리! 가기 전에 밤하늘의 별자리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 솔다렐라님에게 부탁을 했다. 별자리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천천히 가르쳐주어서 이내 외울 수 있었다. 그 동안에 외우고 익혔던 별자리가 도움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별자리를 알게 되니까 왠지 별과 가까워 진 것 같고, 별도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듯 했다. 특히 티 포트 자리와 왕관자리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주어서 너무 기뻤다. 나중에 홍총무님이 땅꾼자리도 일러주어 아는 별자리가 하나 둘 늘어나니까 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박사님이 설명할 때는 따라가기 바빠서 별이름만 기억에 남았는데, 이렇게 찬찬하게 찾아보니 재미가 매우 쏠쏠했다. 세 번의 학습탐사 때마다 별을 봤건만, 외우지 않아 이내 잊어버려서 내 것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 박사님이 말끝마다 “깡그리 외우세요!”라고 하는지 정말 가슴 속 깊이 납득이 갔다. 별자리 선생님이 되어준 솔다렐라님!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몽골의 마지막 야영지의 지명은 고충오수라고 했다. 8월의 별밤은 별자리와 함께 이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