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20

 

누가 깨우기에 눈을 뜨니 아침밥이 나온단다. 기내식으로 나온 녹차 죽을 먹었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아 눈이 시린데도 본능적으로 먹고 나니 잠이 좀 깼다. 화장실에 가서 씻고 왔더니 잠이 확 달아났다. 글을 쓰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대원들의 얼굴이 이제야 보였다. 내 자리 앞으로 이원구님, 이화종님, 옆으로 이익우 회장님부부, 김경회 교수님부부가 타고 계셨다. 김경회 교수님은 탐사여행 중에 감기로 고생하신 것 같았는데, 워낙 조용하고 말이 없으신 분이라 남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표 를 내지 않는 것 같았다. 제각기 자기 코가 석자라는 핑계로 나 자신도 신경 한 번 써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는 홍종연님, 문영미님인데, 홍 총무는 뭔가 부지런히 적고 있었다. 둘러보니 모두 깨어나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협조하고 협력한 덕분에 탐사대장 박문호 박사님을 비롯해 33명 대원 전부가 아무 탈 없이 무사해서 무엇보다 감사했다. 이번 몽골 학습탐사여행을 무사히 마친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대원 모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싶었다.

제 8차 몽골 학습탐사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첫 번째, 제일 먼저 들고 싶은 일은 매일 버스 안에서 몇 번씩 반복되는 탐사대장 박문호 박사님의 열성적인 강의였다. 듣는 대원들의 태도도 여느 때보다 열심히 듣고 외웠다. 정말로 박사님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오는지 궁금했다. 조금 쉬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쉴 틈을 주지 않고 우리들을 계속 달려가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대원들의 참여의식이었다. 각자 맡은 일 이외에도 서로 도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누가 시키기도 전에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협력했다. 학습하는 것도 버스와 스타렉스가 경쟁하면서도 정보를 교환해가며 별자리라든지 징기스칸  가계 등을 빨리 습득했다. 외우는 방법을 강구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박자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세 번째는 서로 이해하며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태도였다. 탐사를 떠날 때 고생을 할 거라는 각오는 하고 왔겠지만, 하루 이틀 지내다 보면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민원 들어오듯이 관리자의 귀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서로의 이해 속에서 작은 말썽은 있었으나,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커다란 일이 아예 없었다는 것은 총괄하는 관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뒤에서 말없이 일을 진행시킨 김현미님과 궂은일을 마다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임동수님, 식품을 관리하느라고 새벽별자리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으면서도 웃으면서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준 박순천님, 텐트와 매트 등 공구를 총 관리하신 이원구님, 저녁강의 때마다 컴퓨터 등 기계를 작동하신 맥가이버 신양수님, 맛있는 음식을 끼니마다 선보이신 공송심님, 등등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다. 어느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번 탐사에 빛을 내준 분들이 또 있다.  그림을 그려주신 허만욱 교수님, 어딜가나 엎드려서 몽골의 정경을 열심히 그리는 외에, 33명 대원들의 모습도 다 그려주었다. 우리가 다녀온 곳을  선으로 쓱쓱 그린 것 같은데, 그 특징을 너무나 잘 살려서 놀랐다. 그 다음은 김성미 작가님,  사물을 보는 관점부터 남달랐다. 어떻게 찍는지 자세히 보니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않는 곳을 잡아서 찍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끝으로 임지용님, 젊음이 있어 기동성이 빨라서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순간포착을 잘해서 특이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런 분들이 있어 몽골탐사의 품격이 더욱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날! 회식하는 자리에서 박사님은 시종일관 웃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특별한 뇌 과학” 에 대한 강의를 구상하고 계셨을 것 같았다.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독서하고 강의하며 쉴 틈 없이 달리는 마라톤 선수마냥 달리고 달린다. 마라톤 선수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뛰는 것을 멈추지만, 박사님의 마라톤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제 울란바토르 가는 길에 본 말의 동상을 보고 나름대로 느끼는 점이 많았다. 말을 사랑하는 몽골인들이 세운 동상에는, 그 말처럼 늠름하게 달려가고 싶은 몽골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후진국이지만 언젠가는 몽골의 광활한 대지가 몽골인들에게 많은 것을 안겨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박사님은 “몽골이 앞으로 농업에 주력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몽골의 땅! 이곳저곳을 밟으면서 왠지 마음의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넓고 푸른 초원이 모두를 반겨주고 안아줄 것 같은 느낌! 몽골사람들을 만나면 이웃사촌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건 얼굴이 닮아서라기보다 먼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 그럴까?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나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몽골인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뿌듯했다.

징기스칸이 살았던 땅, 꿈으로만 생각했던 대지를 직접 밟았다는 감회가 새롭다. 책에서만 보고 만났던 땅을 직접 와보고 체험하고 돌아가는 행운을 얻었다는 것!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그 옛날의 영화가 거의 다 사라진 메마른 땅이지만, 몽골인들의 가슴엔 그 광활한 대지를 누비면서 말채찍을 휘두르던 징기스칸의 피가 가슴에 흐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리라! 몽골국기의 빨간색이 말해 주듯이 환희와 승리의 그날이 머지않아 오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