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15

 

 “금성, 목성 볼 수 있어요.” 라는 김현미님의 소리에 일어나 안경을 끼고 나가려고 찾으니까 없었다. 벌써 날이 밝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 급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텐트를 샅샅이 뒤지고 침낭을 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안경이 없으면 우선 일지를 제대로 적을 수도 없고, 책도 볼 수 없어서 정말로 낭패였다. 이리저리 찾다가 포기하고 텐트에서 나오니 버스 기사님이 풀밭에 떨어져 있더라고 주워서 갖다 주어 그제서 안심이 되었다. 건망증이 이렇게 심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스러웠다. 기사님께 몇 번이나 머리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 동안에 새벽별은 흐릿해지고 동쪽에 동이 터 올랐다. 동이 트는 쪽은 안개가 없는데 건너편 산은 안개가 산자락을 둘러싸서 아침공기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젯밤엔 이슬이 많이 내렸는지 텐트 안이 눅눅하니 물기가 젖어 있었다. 이내 지퍼를 여니 텐트에서 물이 주루룩하고 흘러내렸다. 그래선지 아침안개가 초원에 낮게 깔렸고, 풀들은 이슬을 머금어 햇볕에 반짝거렸다. 이원구님은 이슬에 젖은 텐트를 탈탈 털어서 익숙한 솜씨로 다룬다. 그리곤 어느새 근처의 산등성에 올라가 서있다. 재바른 이를 일러 ‘물 찬 제비’라고 옛 어른들이 말하던데, 일하는 모습이 정말 말 그대로이다. ‘속전속결의 귀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만연체의 이화종님은 초원에서 천천히 걸으며 뭔가 골똘하게 명상하고 있었다. “출발 5분전입니다” 앤디님의 소리가 멀리까지 퍼졌다. 해가 서서히 올라오는 장관을 보고나서 다른 날보다 일찍 출발했다. 8시 경이었다.

버스에서 아침학습이 시작되었다.

태양과 행성에 대해서, 수퍼노바는 항성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하여 그 밝기가 평소의 수 억 배에 달하므로 지구에서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밝기가 서서히 사라지는데, 그 현상을 말한다. 마치 새로운 별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초신성(超新星)아라고도 한다. 수퍼노바는 별의 형성, 은하의 형성, 더 나아가서 우주형성 과정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탄생의 비밀’, ‘진화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또 수퍼노바에 의해 핵융합을 일으켜 행성이 된다고 했다.

어젯밤 우리가 머문 곳은 타리아트와 갈루트 사이에 있는 차키르(TSAKEHIR)라는 곳이었고 갈루트는 아직 멀었다고 신양수님이 노트북으로 검색해서 말해주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직도 초원 위로 옅은 안개가 깔려있고, 이슬도 촉촉한 그대로였다. 아침은 초원에서 즉석에서 만든 샌드위치와 사과로 간단하게 먹었다. 따끈한 블랙커피가 버스에 준비되어 있는데 흔들려서 마실 수가 없었다. “왠 블랙커피”냐고 물으니 앞자리의 김철원님이 “내가 블랙을 좋아하니까! 준비한 것 같소.” 라고 했다. 그러자 박순천님이 “님을 위해서”라고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공송심 주방장님이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뜻을 알아채고 둘이 키득키득 웃었다.

푸른 들판에는 오이꽃풀의 작은 씨앗열매가 자주색 방울을 자랑하며 들판의 초록과 조화를 이루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라색 구절초가 피어 이곳저곳에 무더기로 있었다. 미역초는 단풍이 들어 여기저기 있었는데 멀리서도 잘 보였다. 된장국을 끓이면 미역처럼 미끌미끌한 진기가 있는데, 어릴 적에 어머니가 끓여준 걸 먹은 적이 있었다.

비포장으로 달리기는 하지만, 어디를 가도 이정표가 없다. 비가 와서 길이 없는 곳은 초원으로 길을 만들면서 달릴 때도 가끔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 가는 것이 신통방통했다. 오다가 제법 큰 강을 지나는데 버스는 무사히 건넜지만, 스타렉스는 빠져서 승객들은 내리고 차는 로프로 묶어 버스가 끌어올렸다. 네 대가 무사히 건넜으나, 차들은 눈물을 줄줄 흘려야만했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차에서 물이 다 빠질 때까지 휴식을 가졌다.

박순천님의 코발트빛 긴 머플러는 쉴 때마다 대활약을 하였다. 서 너 사람이 잡을 정도로 길어 볼일 보는 걸 가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푸른 머플러가 펄럭이면 커다란 흰 꽃도 같이 춤을 추었다. 긴 보자기처럼 생긴 머플러를 다섯이서 들고 기념촬영을 한다고 해서 제목을 “보자기 다섯 자매 ”로 하기로 결정하고 찰칵! 하하하! 우습다!

도시이름은 모르지만 작은 도시가 나왔다. 들리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가는 길에는 강과 웅덩이, 그리고 진창길이 많았고 길도 없어진 곳이 많아 고된 여정이었다. 비 때문에 늪도 많이 생겨 이만저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진창에 빠질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달려도 만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도 다 꼽지 못하는데, 소, 말, 야크, 염소, 양들은 수없이 만났다. 어쩌다 몽골 사람을 만나면 꼭 길을 물어보고 가고는 했다. 길이 좋지 않으니 차가 한 번씩 널을 뛰어 머리가 천정에 닿을 지경이었다. 조서연님은 머리가 천정에 부딪쳤고, 솔다렐라님은 앞좌석에 부딪쳐 눈썹 위가 좀 긁혔었다.

버스는 기우뚱거리며 널을 뛰어도 바깥경치는 아름다웠다. 꽃잎이 다섯 개인 하얗고 가냘픈 꽃, 보라색 꿀풀, 노란 달맞이꽃 같은 노란꽃 등이 많이 피어서 눈을 즐겁게 했다. 비가 와서 습한 탓인지 버섯 종류도 눈에 많이 띠었다.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빛깔도 다양했다. 건드리면 포자가 터지는 것도 있었다. 먹는 것이면 좋으련만 보기에도 독버섯 같았다. 몽골 초원의 풀이나 꽃은 거의 다 키가 작았다. 비, 바람, 눈, 추위 때문에 땅에 납작하게 붙어 있고 뿌리도 얼마나 깊고 넓게 박혔는지 뽑으려고 힘을 주어도 좀처럼 뽑히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일정은 예정보다 이틀이상 늦어졌다고 한다. 앞으로의 일정은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몰라도 이대로만 가면, 박사님 말로는 볼 건 다 보고 갈 수 있다는 낙관론을 폈다. 쉬는 시간에 이진홍님이 몸의 피로를 푸는 운동법을 가르쳐 주었다. 운동을 따라하니 뭉쳤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졸다가 깨어보니 돌 자갈밭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지나는 양옆이 온통 보라색 물결이었다. 보라색 구절초의 물결 속에 푸른 풀들이 간간이 섞여 있는 들판이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 카메라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래! 마음속에 담아가자고 가자! 하며 마음을 달랬다. 민들레  홀씨 같은 씨앗식물이 무더기로 있는데 무슨 꽃의 씨앗인지 알 수 없었다.

들쥐구멍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쥐와는 다른 종으로 몽골어로 타르왁이라 불리는 동물이었다. 들판 곳곳에 구멍이 나 있어서 매우 궁금했는데 오늘에야 그 의문이 풀렸다. 갈색 털이 있는 재빠른 놈으로 한 번 본 적이 있다. 이 동물은 고기가 맛있어서 식용으로 많이 잡기도 하지만, 털은 옷을 만들어 고가로 팔 수 있어 함부로 많이 잡아서 지금은 멸종위기에 있다고 유로 선생님이 말해 주었다.

우리들이 점심을 들기 위해 머문 이곳은 해발이 2,500m라고 했다. 점심은 컵라면이고, 밑반찬으로 김무침, 깻잎조림, 고추장아찌였다. 비가 주룩주룩 와서 선채로 후다닥 먹어치웠다. 아까 흙탕물에 튀어서 더러워진 차들은 저절로 세차가 되어 깨끗해졌다. 오늘은 유난히도 많은 강과 진흙탕 길을 지나왔다. 우리 버스 기사는 차는 후져서 고물 같아도 매일 아침마다 정성들여 버스의 몸체와 유리를 말끔하게 닦았다. 버스바닥 청소는 아들인 마그네가 엎드려서 구석구석 살피면서 꺠끗하게 닦아내는 것을 보고 여사로 생각되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길이 울퉁불퉁해서 차가 지그재그로 몸을 기우뚱거리며 겨우 올라갔다. 힘이 달려서 승용차스타렉스가 진흙탕에 빠져버렸다. 이륜구동이라 항상 말썽쟁이다. 버스가 로프를 매더니 스타렉스를 끌러갔다. 차가 올 동안 기다리는데 산등성이에 돌무더기 탑이 두 개 있었다. 어디에나 마찬가지로 긴 나무장대에 푸른 천이 잔뜩 감겨져 있었다.

해발 2,800m라고 했다. 이 고원지대를 넘어 가는데 푸른 고원에는 분홍꽃밭이 이어지는 한편, 비포장 길은 진흙탕길이 계속 이어져서 또 빠지면 어쩌나 하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원지대의 초록 들판을 지나면서 별자리 공부를 하였다. 박사님이 일등성 별자리 15개를 일러주고 꼭 오우라고 해서 모두들 열심이었다. 연상 법을 사용한 외우기, 노래를 만들어 외우기 등 독특한 아이디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나도 외우려고 버스에서 적었더니 글이 비뚤비뚤해서 내가 적은 글이지만, 여간 우습지 않았다. 나중에 내려서 새로 말끔히 정리하면서 다 익혔다. 내친 김에 별들의 색깔까지도 깡그리 다 외워버렸다.

박사님은 래퍼였던 임지용님에게 일등성별을 주제로 렙을 만들어 보라고 특별히 명령을 내렸다. 나도 모닥불 피우던 날! 임지용님의 렙을 들어서 실력을 인정하는 터라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발표를 언제 할런지 기대가 되었다. 이틀 후에 한다고 했지만....

흉노족의 적석목곽분이 있었던 자리에 내려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곳은 바양홍고르 라고 불리는 지역에 속한다고 했다. 뒤로는 돌이 많은 돌산이 있고 산 아래로는 넓은 초원이 드리워져 있는데, 가까운 곳에 강도 있었다. 무덤을 구르칸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구르칸 양식은 2,000년전 것이라고 했다. 구르칸에서 B.C 3,000년전의 체스 판이 나왔는데, 실제로 흉노족은 B.C 450년경에 체스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왔다고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강의 수심이 깊어서 기사들이 내려서 의논을 하더니 다른 길로 좀 돌아가기로 결정이 나서 출발했다.

저녁 6시 20분경, 또 큰 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얕은 곳을 찾았지만 없었다, 다행히 갈루트라는 작은 마을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연락을 취해서 큰 농사용 트랙터를 빌려 올 수 있었다. 트랙터 뒤에 로프를 묶어서 버스를 끌어 올릴 준비를 했다. 끌어 올릴 준비를 하는 동안 별자리 공부를 했다. 고장 난 스타렉스에서 옮겨온 승객들이 합쳐지니 버스 안이 소란스러웠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기다리는 동안 이익우님이 ‘내가 군대있을 때는 이보다 더 험한 일도 많았다고! 이건 장난수준이니까 더 강하게 해도 된다.’고 한 말씀했다.

그러는 동안 트랙터는 3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버스를 끌어올려 강을 건넜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경유냄새가 코를 찔렀다. 끄는 힘이 이렇게 셀 줄이야! 모두들 놀라움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과학의 힘이다.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오지마라! 비야! 제발! 버스가 움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스 안은 학습열기로 가득 찼다. 『별밤 365일』은 가지고 오기를 잘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이 책을 중심으로 별자리 학습을 할 거라고 박사님이 말했다. 미국 그랜드캐년에서 사온 별자리도표는 김양겸 학생이 빌려가더니 아예 줄 생각을 않는다. 실컷 보고 공부하라고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이진홍님과 김양겸 학생 둘이서 꼼꼼이 들여다보며 별자리를 짚어 나가고 있는 모습이 매우 좋아보였다.

쟈르갈란트 (Jargalant)라는 마을에서 화장실 휴게를 했다. 거의 내리고 나랑 몇 사람만 버스에 남아 있었다. 비도 오고 몸 상태가 안 좋은 대원이 있어 게르를 한 채 빌려 오늘은 그곳에서 야영을 하려고 교섭하러 갔는데 유로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아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게르를 찾지 못했다. 인원이 많아서였다. 마을을 벗어나 10분쯤 달렸으나 게르는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 줄기차게 오고 있었다.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자동차 라이트로 신호를 해왔다. 먼저 간 유로선생님이 타고 있는 차였다.

나는 미열이 있고 콧물이 주책없이 줄줄 흘러서 누가 볼까봐 민망스러웠다. 안 보이도록 슬쩍 닦았으나 계속 흘러나왔다. 며칠 전에도 그런 증세가 나타나서 갖고 온 약을 먹었더니 나았었다. 오늘 저녁도 잊어버리지 말고 약을 먹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르를 한 채 빌렸다. 집 주인들과 같이 잔다고 해서 나는 몸 상태는 안 좋지만 텐트를 선택했다. 게르 안에는 할머니, 아들부부, 두 살 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여자대원들만 게르의 바닥에 자기로 했는데, 그 바닥에 10명쯤 자려나? 의심스러웠다. 그런대로 이리저리 얽혀서 잘 잔 모양이었다.

저녁은 간단하게 컵라면과 김치로 해결했다. 김치를 좋아하는 버스기사 아들인 마그네가 자꾸만 집어 먹으니 박순천님이 “그만 먹어! 모자라!” 라고 말하니 얼른 눈치를 채고 마지못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대원들이 먹을 김치인데 모자라면 어쩌나 싶어 한마디 하고나서 '더 먹게 둘 것을' 하며 후회했다는 맘씨 고운 우리의 박순천님 이었다. 

할머니는 몽골 기사들을 위해 고릴테 슐이라는 국수요리를 하고 있다. 익숙한 솜씨로 난로에 불을 지피고 난로 위에다 무쇠 솥을 걸더니 물을 많이 부었다. 소고기를 듬뿍 썰어서 솥에 넣고 양파도 큼직하게 썰어 같이 넣었다. 소고기 국이 펄펄 끓으니까 마른 국수를 넣고 휘휘 젓더니 솥뚜껑을 닫고 또 푹 끓였다. 간은 국수에 소금이 들었는지 일체 넣는 것이 없었다. 참으로 간단한 요리였다.

게르 안은 난로의 불로 인해 아주 훈훈했다. 나는 불을 쪼이다가 잠자리에 들려고 텐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