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6

 

고도 3,000이나 되는 고원지대에서 양과 염소의 똥으로 다져진 위에다가 텐트를 치고 잤다는 것을 아침에야 알았다. 밤에 도착했기 때문에 어제 저녁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개가 요란하게 짓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이쿠! 늦지는 않았는지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오늘은 식사당번이기 때문이었다. 식품담당 박순천님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서 내주었다. 내가 당번이 아닐 땐 몰랐는데, 식품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 정말 몰랐다. 적당하게 내어주고 나머지를 관리하면서 규모 있는 살림살이를 해나가는 것은 보통머리로는 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뒤에서 알게 모르게 박순천님처럼 일을 척척 해주는 일꾼이 있어서 박자세의 주방이 술술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막내 김연숙님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건만 매일 나와서 거들어 주던데,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아침은 누룽지, 반찬은 김, 깻잎, 김무침, 무말랭이무침, 건과 졸임 등으로 차렸다. 당번은 조서연님, 서광원님, 나 이렇게 셋이었다. 서광원님은 가스버너 다루는 솜씨가 서툴러 다른 대원의 힘을 빌려서 열심히 불을 살려 놓았다. 식사준비가 끝나자 6시 22분이었다.

게르 건너편에서 잠자던 양과 염소는 아직 자는 놈도 있고 깨어나서 움직이는 놈도 보인다. 게르 옆에서 기르는 야크와 소들은 밖에 나와 되새김을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새끼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놈도 보였다.

누룽지가 끓을 동안 우유 짜는 걸 구경했다. 야크 젖을 짜기 위해 할머니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송아지를 어미 야크의 젖을 물게 해서 좀 빨아먹게 한 뒤, 어미에게서 떼어냈다. 그때부터 익숙한 솜씨로 낮은 의자에 앉아 젖을 짜는데, 어쩐지 의자가 눈에 익었다 싶더니 어제 게르 안에서 쉬느라고 앉았던 것이었다. 할머니가 손으로 야크 젖을 비비면서 짜면 주룩주룩 소리가 나며 우유가 흘러나왔다. 짜는 동안 어미는 눈만 끔벅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어미에게서 억지로 떼어 낸 송아지는 저편에서 어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어서 안쓰러웠다. 옆에 있는 송아지는 어미 소의 젖꼭지에 고개를 들입다 밀고 맛있게 빨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불쌍해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야크가 오줌을 누었다. 야크가 그렇게 오줌을 많이 누는지 처음 알았다.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려서 너무 놀랐다. 할머니는 우유 짜던 손을 멈추고 다 눌 때까지 기다리더니 자리를 옮겨서 또 짜기 시작했다. 갓 짜낸 우유를 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끓이지 못해서 사질 못했다.

식사 준비하는 동안 개 한 마리가 계속 감시하고 있기에 곁에 가서 쓰다듬어 주니 귀를 납작하게 낮추고 친한 척을 했다. 새벽에는 그렇게도 짖더니 이젠 낮이 익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는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가 손자를 어르면서 게르에서 나왔다. 우는 손자를 달래느라 애를 쓰는 걸보니 손자사랑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아들은 아침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침체조를 끝내고 박사님이 오늘 일정을 말했다. 달리는 길은 170km이며, 박물관까지 갈 예정이라 하고, 가는 도중에 큰 강을 세 번 건너야 하고, 오후부터는 사막으로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오늘부터 3일간은 별자리 중심으로 학습하니까, 일등성별자리를 마스터하라고 했다. 떠나기 전, 단체사진을 촬영하는데 박순천님이 크게 재채기를 해서 모두들 하하 웃으며 찍었다. 7시 50분에 출발했다. 게르의 가족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떠나면서 보니, 게르 건너편의 산자락이 해를 받아 아침 안개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버스 안 강의실, 여름철 이등변 삼각형으로 백색별인 데네브, 베가, 알타이르.

겨울철 삼각형인 시리우스, 프로키온, 베텔기우스.

봄의 대곡선인 북두칠성의 6, 7번의국자, 아크투르스, 스피카.

겨울철 다이아몬드라는 육각형의 시리우스, 미겔, 알데바란, 카펠라, 쌍둥이자리의 카스토르와 폴룩스, 프로키온 등을 외우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별의 색깔도 익히라고 했다.

수퍼노바가 왜 그리 중요한가하면 우리 인류의 뇌와 신체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1,000억 개의 별 중에 일 년에 하나가 터져서 수퍼노바가 된다고 했다.

9시경에 흉노귀족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 내렸다. 2,000년 전의 무덤으로 터만 남아있었다. 화산에 의해 생긴 유리로 흑요석이라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흉노와 한나라의 전쟁, 한나라가 흉노의 돈황을 정벌할 때 돈황의 마지막왕인 휴도왕의 아들이 김알지라고 하며, 그 때 김알지가 신라로 왔다고 했다. 이와 같이 흉노는 우리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민족이었다. 초원은 아직 아침이슬이 맺혀있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잎이 다섯 개인 하얀 꽃이 하늘거린다. 잎은 가는 풀 같은데 길이가 짧고 가는 꽃대에 꽃이 매달려 한 포기에 수십 개의 꽃이 달려 있었다.

앞에 보이는 산에 모두 올라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연록색의 지의류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래쪽에는 작은 늪도 있었다. 산도 초원도 모두 푸른색이다.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것뿐이다. 구름 없는 하늘과 어우러져 그대로 수채화 한 폭이었다.

김성미님이 사진 찍는 것을 유심히 보면 우리와는 다른 작가다운 면이 보였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정상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돌로 둥그렇게 표시한 곳이 많이 보였다. 무덤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해 놓은 곳이다. 무덤 주위에는 선돌을 세워 놓은 곳이 있는데 나중에는 사슴돌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몽골에는 사슴이 없지만, 사슴을 많이 그려서 세운 것은 뿌리가 북방민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슴돌 주위에서는 구르칸(무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올라간 산은 큰 돌과 잔돌로 이루어진 산이고, 정상은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며 이 산은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또 석영을 주워서 보이고, 35억년 된 화석의 분자구조는 석영에 함유되어 있는 처트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처트는 sio2의 함유량이 많은 화학적 퇴적암으로 각암이라고도 한다. 분자구조는 시아노박테리아의 세포벽에 있는 분자이며, 생명현상에서 나온 유기적 퇴적암이다. 멈춰지지 않는 박사님의 강의는 그대로 이어졌다.

유난히 색색의 지의류가 많이 보였는데, 지의류는 바위에서 인산이나 질산을 공급받아 살아간다고 했다.

내려오는 길, 메뚜기가 파드득 거리더니 찌르찌르 울면서 날아가고 있었다. 가을밤에 우는 여치소리하고는 다르지만, 메뚜기 우는 소리는 왠지 귀에 익은 소리 같았다.

자연을 무대로 해서 학습탐사대원들이 각자 맡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로 감동적인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슴 뿌듯하게 느껴지는 한 순간이었다. 물론 무대연출은 박문호 박사님이고, 대원들의 연기는 자연 그대로를 닮아 자연스런 연기가 저절로 펼쳐지고 있었다. 연말의 연기대상은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이라는 것이 꿈만은 아닌 것 같았다.

버스 양편으로 둥그렇게 돌로 표시해 놓은 무덤자리가 연이어서 나타났다. 가는 도중 몇 킬로미터나 쭉 연이어서 무덤자리가 보이고, 크고 작은 돌로 이뤄진 돌산도 연이어져 있는 특이한 지형이었다. 산 전체가 전부 돌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길에도 들판에도 온통 돌뿐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자연이 만든 조각예술품이었다. 김성미 작가님이 어떤 각도로 찍었는지 궁금했다. 버스에서 큰 바윗덩어리가 듬성듬성 놓여있는 것을 보면서 지나갔다.

암각화가 보이는 곳에 내렸다. 우리가 내린 곳은 보르한다트라는 곳이었다. 큰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 두 점, 연꽃위에 앉으신 보살상이었다. 박사님이 ‘스님이 설명해보라’고 했는데,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어름어름 설명했더니 부연해서 박사님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한분은 결가부좌를 하고 계셨고, 또 한분은 다리 한쪽을 살짝 내리고 계셨다. 이 암각화는 1,600년경에 새겨진 것으로, 색은 최근에 입힌 것이라고 했다. 보살상 아래에는 티베트어로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있고, 또 하나는 좀 긴 글인데 뭐라고 적혀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보살상이 있던 자리에는 쫑카파가 지은 절이 있었다고 했다. 암각화 건너편에도 길고 큰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도 글자가 길게 새겨져 있었다. 옛날에는 이곳에 많은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지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월의 무상함을 가슴속까지 절절이 느끼게 하는 장소였다.

조금 더 가서 큰 절이 보이는 곳에 내렸다. 절 앞에는 최근에 세운 탑이 양쪽에 있고, 돌리도록 되어있는 윤장도 양쪽으로 있었다. 돌리는 경판은 오른쪽에만 있는데, 전부 요즘 만든 것이었다. 대문은 꼭 닫혀 있는데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글은 모르지만 눈치로 보니, 용무가 있으면 연락하라는 글과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로선생님이 어느새 연락을 했는지 담당자가 나타나서 절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대문과 건물 셋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대문은 붉은색으로 칠했고, 대문의 천정은 정사각형의 칸이 가로 세로로 줄지어있고, 그 칸마다 용이 그려져 있었다. 용 그림은 단청으로 그려져서 화려했다. 대문지붕의 제일 꼭대기에는 팔정도의 법륜상이 세워져 있고, 대문의 천정 옆으로 오른쪽은 호랑이상, 왼쪽은 청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가운데 있는 건물은 전체를 거의 붉은 색으로 칠이 되어 있고, 이층으로 지어진 훌륭한 건축물이었다. 문에는 조각이 들어가 있고 지붕 밑에도 온갖 조각을 해 놓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왼쪽 건물에서 박사님과 현지 담당자와 유로선생님 셋이서 통역을 하며 설명을 하고 있어서 얼른 쫒아갔다.

이 절은 1755년에 건립되었고, 옛날에는 23채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있어서 불국토를 연상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남아 있어 그림을 눈으로 보고 상상을 해보았다. 얼마나 하려하고 멋진 절이었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절의 이름은 만들린히트라고 하며 창건주는 겔룩파의 스님이었다. 이절은 1937년까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혁명으로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당원들에 의해 승려 3천여 명이 죽임을 당했고 이절뿐만 아니라 800 여개의 사찰을 대상으로 정리정돈을 감행했다는 이야기를 유로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념과 사상에서 오는 무지한 행위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살 떨리는 전율을 느꼈다.

불에 타서 없어진 이 절은 남아 있는 건물부터 복구하고 있으며, 다른 절도 점차로 복구하고 있다고 했다. 참 다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없어져버린 건물을 되돌릴 수 없는 안타까움을 호소할 길이 없었다.

달리는 길에는 돌산이 점점 사라지고 산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적당한 곳에 내려 모두들 나와 도와주어서 짧은 시간에 훌륭한 점심메뉴가 완성되었다. 이것저것 남은 것을 모아 먹기 좋게 배열해서 각자 취향대로 먹게 했다.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 그리고 커피였다. 아침에 갓 짠 우유는 끓일 시간이 없어 아쉽게도 사지 못했다. 있었더라면 딱 이었는데, 그 대신 샌드위치 속을 충실하게 넣었다. 구운 햄, 치즈, 오이, 피망, 잼은 불루베리와 딸기잼으로 가득 채웠다. 김양겸 학생은 대형샌드위치를 두 개나 먹었다. 역시 젊은이는 달랐다. 흐르는 강가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기름진 그릇뿐만 아니라 다른 그릇도 서광원님이 몽땅 가져와서 수세미로 깨끗이 씻었다. 처음엔 수세미를 안 갖고 와서 강가의 풀과 모래로 기름기를 닦아냈는데 수세미가 있으니 정말로 편리했다. 여기서도 빈 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양치물과 설거지용으로! 알뜰한 살림은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실행되었다.

버스 강의에는 몽골의 티베트 불교에의 영향에 대해 강의했다.

잠마바자르는 몽골의 1대 벅뜨이고 달라이라마 칭호를 처음으로 받은 현자로서 몽골인의 추앙을 받았던 분이다. 잠마바자르는 티베트에 유학해서 라마불교의 일파인 겔룩파의 가르침을 배우고 청동불상을 모셔왔으며 청동주조기술도 익혀와 그가 만든 불구 몇 점은 몽골의 문화재로 국립박물관에 모셔져있다고 했다. 벅뜨라는 말은 최고의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권력자를 말하며 그 당시에는 벅뜨의 지도아래 정치가 행해졌다고 한다. 아까 들렀던 만들린히트절에는 신문기사에 나온 9대 벅뜨의 사진을 오려서 부쳐놓은 것이 있었다. 몽골 역사를 잘 알려면 『유목민제국 사』를 참고하라고 했다. 곁들여서 학습탐사는 공부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는 길이 진창구덩이가 군데군데 있어서 가는데 애를 먹었다. 빠진 차를 로프로 묶어 끌어내서 겨우 가는데 또 스타렉스 승용차가 강 중간쯤에서 멈춰버렸다. 어떻게 처리할지 또 내려서 기다렸다. 스타렉스에 탄 대원들은 옷을 둥둥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너왔다. 또 로프를 묶어 끌어올리니 “구출됐다”고 안심의 환호성을 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큰 강이 또 앞을 가로막았다. 어제 비가 밤새 오더니 결국은 일을 내고 말았다. 앞차가 길을 둘러서 가고 있었다. 버스에 탄 대원들은 버스가 강을 건너도록 내려서 버스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강이 좀 얕은 곳에서 다른 차들은 버스보다 가벼우니까 무사히 건넜는데, 이번엔 버스가 진창에 빠져 버렸다. 풀과 함께 진창이 된 길을 옷을 걷어부치고 건넜다. 안태순님은 강 밑바닥이 미끈거리니까 그만 질퍼덕한 진창에 넘어져버렸다. 건너오니 옷이 젖어서 엉만 진창이 되어 있었다. 풀을 한 옷이라 얼룩이 생겨 내일은 다른 바지로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았다. 열흘 동안 계속 입으려고 했었는데 말이다. 고비사막까지 가려면 아직도 400km를 더 가야한다는데 초입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강 건너온 버스 팀을 보고 스타렉스 팀의 이익우님이 “맛이 어때요? 오늘 건너보니! 우리 팀은 스무 번쯤 건넜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라고 말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버스를 들어 올려야 하는데 버스 무게로 진창에 빠졌으니 빠져나오기가 여간 힘들 것 같지 않았다. 모두들 각자 의견이 분분했다.

버스를 건져 올리기까지 기다리는데 저쪽 산 너머에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소리가 작게 들려오더니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쉬는 시간만 생기면 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강의하는 우리 박사님! 『별자리 365일』41p 펴세요!

책에는 하지점과 춘분점, 동지점과 추분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물병자리와 물고기자리의 사이에 춘분점이 있고, 황도가 적도를 통과하는 지점이 추분점이 된다. 그래서 춘분과 추분은 해지는 쪽이 정 서쪽이 되는 것이다.

다음은 158p의 설명이다. 6,000년 전 북극성은 용자리의 몸체에 해당하는 투반(Thuben)이었다. 북극성은 이집트의 파라오 쿠푸(Khufu)가 기제(Gizeh, 지금의 El Giza)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만든 지 수백 년이 안 된 기원전 2,800년경에 이 별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이 거대한 피라미드의 중심부에 이르는 하향식 계단은 환기구멍을 따라 깊은 곳에서 투반을 볼 수 있도록 배열했다고 많은 이들이 믿고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미심쩍지만, 다른 이집트 구조물들이 천구의 북극과 별이 뜨고 지는 것에 정확하게 배열되었다는 것은 명학하다. 이러한 건축은 천문학과 수학의 탄생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결국은 여러 모로 힘썼지만, 버스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안하니까, 차 2대로 장정(?)들이 나눠 타고 가서 버스를 밀기로 합의했다. 천둥소리는 계속 들리지만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나머지 대원들도 버스 있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비를 몰아내는 것 같더니 주변이 컴컴해지면서 비가 조금씩 오더니 악수같이 퍼부었다. 게다가 우박까지 쏟아져 목덜미가 따끔따끔했다. 그 때 마침 버스 지원군을 내려놓고 스타렉스가 우리를 실러 왔다. 스무 명이 넘는 대원들이 스타렉스에 빼곡하게 박혀 버스 쪽으로 오니 진창에 박힌 버스가 옴짝달싹도 못하고 빠져있었다. 이렇게 해야 된다는 둥 저렇게 해야 된다는 둥 말이 많았지만 신통한 묘책은 하나도 없었다. 하도 의견이 분분하니 “그 동안에 공부나 하세요!”라는 박사님의 한마디에 모두가 움찔했다.

여러 사람의 의견으로 최선을 방법을 강구해서, 차 밑에 큰 돌들을 집어 놓고 작키로 올려

놓았다. 그런 뒤에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힘을 합쳐 어영차하며 힘을 합치니 버스가 드디어 지면으로 올라왔다. 이젠 갈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힘을 합쳐 밀어 올렸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박수소리로 서로를 위로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꾹 참았다. 비는 세차게 쭈룩쭈룩 내리고, 차는 빠져있고, 옷은 흠뻑 젖어 추운 기운이 몸속까지 스며드는 최악의 상황에서 해낸 일이라 기억 속에 남는 일중의 하나가 될 듯싶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너무 깊은 수렁에 빠지면 건져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이 일을 계기로 깊이 느꼈다.

차를 들어 올리는 일을 끝내자, 갑자기 거짓말처럼 날이 말짱하게 개었다.

지금은 오후5시, 달리는 버스에서 보니 게르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벽을 두르고 천정에 서까래를 얹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지붕에 하얀 천을 덮는 것을 보며 지나갔다.

달리어도달리어도 보이는 것은 드넓은 초원! 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버스가 아까는 계속 올라가기만 하더니 지금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우리가 조그마한 도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6시 반경이었다. 이 도시 근처에서 머물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계획을 변경했다. 오늘 일정은 박물관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늦어서 가지 못했다. 그 대신에 박물관 가까운 도시까지 가서 머물기로 했다. 30분만 더 가면 바양홍고르 라는 도시가 나온다고 해서 떠났다. 가는 길에는 비가 온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버스 강의실, 별밤 48p에는 태양의 일생 주기가 그림으로 상세히 나와 있는데, 전부 외우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바양홍고르에 들어서니 아스팔트도 깔렸고 호텔도 보였다.

박사님 강의는 계속되었다. 별의 분류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데리고 했으나, 간단한 작업이라 시간낭비라고 여겨서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아 분류했다고 하는 일화를 소개했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그 사이에 스타렉스 팀인 남영진님이 와서 버스 팀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염탐하러 왔다. 그 쪽 팀의 열기도 대단한 모양이었다. 솔다렐라님은 일급비밀이라며 가르쳐주지 않으니 궁금해서 죽을 지경인 것 같았다. 버스 팀은 솔다렐라님이 스토리를 재미있게 만들어 별의 빛깔도 외우기 쉽도록 했다. 모두 외우기에 열심이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양 팀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인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또 김양겸 학생은 별자리 도표를 알기 쉽게 그려서 이사람저사람이 빌려보았다.

이 도시에 연이어져 있는 산들은 온통 민둥산으로 풀도 나무도 보이지 않는 적갈색의 산뿐이었다. 노을이 발갛게 물드는 것을 보며 다리를 지나왔다. 필수품을 사러 시내로 들어가는데 검문소를 지나왔다. 별다른 검사를 하지는 않는데, 큰 도시를 거칠 때마다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했다. 저녁은 햇반 , 카레, 된장국이 주된 메뉴이고, 밑반찬은 김치, 김, 무말랭이무침, 멸치조림이었다. 된장국이 인기가 좋았는데, 간을 이언희님이 봐주었다. 처음부터 나와 헌신적으로 도아주어 너무 감사했다. 식사당번이라 할 줄은 모르지만 혼자서 다 하는 것처럼 바쁘게 다니니까, 문영미님이 한 마디 했다. “스님은 항상 느긋한 줄 알았는데, 상당히 빠르시네요!” 라고 했다. 또 내가 일을 원체 못하니까, 감자 써는 내 모습을 보고 최설희님이 “일 안 해봤어요?”라고 물어서 정말 부끄러웠다.

오늘의 야영지는 마을의 불빛이 건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위로는 굵다란 전선줄이 몇 가닥 지나가고 길가에 지나가는 차도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늦어서 별자리강의는 휴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