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4

 

새벽 5시쯤 일어나니 별이 희뿌연 했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고, 앤디님, 남영진님 순이고, 솔다렐라가 연이어서 왔다. 먼저 나와보니 어제 저녁에 피웠던 모닥불의 불씨가 남아 있기에 불을 살려서 남은 장작을 올려놓으니  불이 활활 타올랐다. 대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니까, 불이 아까우니 들통에 물을 부어 올려놓기로 했다. 들통을 얹으려고 남영진님이 돌을 주워 와서 고정을 시키니까, 그것을 본 이익우님이 “과연 우리 막내!” 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둘러 앉아 불을 쬐는데 남영진님이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아아! 사막에서 여인의 곡선을 보고 싶다’ 고 엉뚱한 말을 했다. 가끔씩 이런 말을 해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그는 뭐든 열심이다. 문득 하늘을 보니 터키국기와 닮은 달과 별이 떠 있었다. 저마다 신기하다며 사진을 눌러댔다.

이화종님이 뒤늦게 나타나서 하는 말 “아침에 햇반을 데우려고 하는데 물을 조금 부어서 끓는 압력으로 따뜻하게 데우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네.”라며 느린 어조로 말했다. 그 사이에 들통의 물이 펄펄 끓어서 햇반을 끓이려고 이사를 가고 또 다른 들통이 올려졌다. 햇반은 낯에 먹을 것이고, 아침은 목장에서 갓 짜온 우유와 시리얼로 해결했다.

아침식사 후 아직도 타고 있는 불 주위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바라만 보아도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매일 출발하기 전 아침체조를 한다. 문순표님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맞추어 체조를 하면 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졌다. 나는 몸이 굳어져 안 되는 동작도 있지만, 모두들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열심히 동작도 따라하고 구령도 같이하니 너무 즐겁다. 체조하다 하늘을 보니 어디서 왔는지 갈매기가 보인다. 근처에 강이나 호수가 있는가보다 생각했다.

항상 떠나기 전에 박사님의 간단한 말씀이 있다. 오늘의 일정은 화산지역과 화산분화구를 보러 간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 화산지역으로 가기 때문에 박사님이 암석 종류에 대한 강의를 했다. 버스에서 흔들리며 적었기 때문에, 대략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화산지역의 유문암은 화강암에 상당되는 화학구조를 가지며 유리구조를 나타낸다. sio2는 이산화규조로 실리카라고도 한다. 모래나 석영 등으로 발견되며 규조류의 세포벽에도 내재한다. sio2가 많은 현무암은 인도의 데칸고원에 많이 있으며,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많다. 지구표면의 대부분은 sio2로 되어있다. 현무암질의 파호이호이(pahoehoe)는 유동성이 크고 빨리 흐르는 용암이라 펑퍼짐하고 아아(aa)는 유동성이 작아서 느리게 흐르는 용암이라 뾰족하게 생겼다. 화산의 용암은 해양판보다 대륙판이 더 오래되었다. 가장 오래된 대륙판은 35억년이고 해양판은 2억년으로 백악기이다. 대륙판은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는 암판이며 북아메리카판, 아프리카판, 남아메리카판, 유라시아판, 인도판 등이 있다. 조산운(造山運動)동으로 생긴 산맥은 록키, 안데스, 알프스, 희말라야 등이다. 해양판은 대양 밑의 해령(海嶺)에서 솟아나와 양쪽으로 이동하는데 태평양판 등이 있다. 가장 오래된 해양판은 필리핀과 일본해역 사이에 있으며 구로시오(黑潮)해류로 해삼이 많이 잡히므로 해삼길이라고도 한다. 화강암은 지구 밖에 없는 암석으로 석영, 운모, 장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트륨장석은 흰색이 나며, 장석은 빗물에 녹으면 도자기를 만드는 고령토가 된다.

인도 펀자브(punjub)지방은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한 관개농업으로 벼를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다. 수십 미터 넓이의 강이 버스 밖으로 보이고 갈매기도 나른다. 아침에 갈매기가 보인 것은 여기에서 날아온 것 같다. 강이 보이니까 벼농사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가는 길에 바위가 많이 보였는데 전부 화산으로 인해 생긴 바위들이었다. 바위에 생긴 지의류도 가지각색이었는데, 지의류는 균류와 남조류의 합성이라고 했다. 마지막 당부는 지질학에 관한 것은 깡그리 외우라고 했다. 공부를 안 해서 받아 적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학습하는 동안, 제법 큰 마을에 닿았다. 집집마다 붉은 색 나무 울타리와 푸른 대문이 있는 인상적인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서, 유네스코 지정 자연유산으로 되어있는 마이칸 (MAIKHAN) 톨고이라는(TOLGOI)지역으로 들어섰다. 페름기말의 대멸종은 시베리아의 대화산분출로 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길이가 1,500km, 넓이가 100km에 달했다고 한다.

버스로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갖가지 지의류를 입고 있는 바위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바위나 흙이나 땅들이 전부 검은 색들이었다 .화산재로 뒤 덥혀 있는 검은 땅에 까만 화산돌 사이로 보라색, 흰색, 노란색, 꽃분홍색 등의 꽃들이 깔려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육식물들이 고개를 디밀고 있고, 푸른 풀들도 자라고 있어 자연 이 만들어낸 꽃밭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옆에서 보니 문영미님은 카메라를 가지고 야생화를 찍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연방 ‘아이 예뻐!’ ‘어머 너무 너무 아름답네!’ 라는 감탄사를 쏟아내며 찍고 있었다.

화산분화구까지는 400m라고 유로 선생님이 말했다. 오르막길이라서 나에게는 힘들었지만, 다른 대원들은 잘 올라갔다. 뒤늦게 처져서 올라 가보니 정말로 장관이었다. 이원구님은 등산가답게 벌써 분화구 반대편에 가서 서 있은 모습이 보였다. 분화구는 흑갈색의 화산재가 흘러내려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게 되어있었다. 분화구 위쪽은 바위가 빙 둘러있는데, 넓이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분화구 아래쪽은 흑갈색의 잔돌들이 쌓여있었다. 분화구의 이름은 KHORGO라고 했다. 화산재가 쌓여있는 평지에는 나무도 자라고, 이름 모를 예쁜 꽃들도 많이 피어 있었다. 특히 진분홍의 패랭이가 무더기로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분화구에서 내려오는 길목에는 돌을 쌓아서 만든 크고 작은 탑들이 많았고, 돌무더기에는 나무막대기를 세워서 푸른 천을 달거나 감아놓았고, 돈도 꽂혀있었다.

시간이 날 적마다 뭘 적으니 솔다렐라님이 궁금해서 뭘 적나? 하고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감추었더니 싱긋이 웃었다.

차강노르(TSAGAN NOR)라는 호수로 가는 도중, 승용차 스타렉스가 진흙탕에 빠졌다. 지나는 길에 늪도 있고 작은 강물도 흘러서 다니기가 불편하더니 기어이 빠져버렸다. 버스에 매달아 무사히 끌어올렸다. 비가 온 뒤라 길이 울퉁불퉁해서 버스가 이리 기울어지고 저리 기울어질 때마다 모두들 어이쿠! 라는 소리를 냈는데, 이화종님은 암말도 않고 있다가 “아! 십겁했네.” 라고 느린 만연체로 한마디!

초원에는 쥐구멍보다는 큰 구멍들이 많아서 궁금했는데, 오다가 거기에 사는 놈을 보았다. 다람쥐보다 큰놈으로 털이 복슬복슬한 다람쥐모양을 하고 있었다. 재빨리 달아나는 폼이 여간해서는 잡기 어려울 것 같았다.

호수에 도착해보니 말이 호수지 바다처럼 넓었다.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 것 같은데 유로 선생님의 말로는 몽골인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니 호수에 사는 갈매기는 실컷 포식하며 먹이 걱정은 안 해도 되니 그것만큼은 부러웠다. 이 호수는 몽골 10대 호수의 하나로, 길이가 25km나 된다고 했다. 산을 빙 돌아서 호수가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호수를 접한 산자락에는 게르가 수십 채나 보였는데,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라고 했다. 호수 입구에 어우어 라고 부르는 돌무더기에 마른 장대가 많이 꽂혀 있는데 거기에 푸른 천을 둘둘 감아 놓아서 바람이 불적마다 펄럭거렸다.

오는 도중에도 숙박하는 게르가 많이 보였다.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바위로 된 산, 또 한쪽은 푸른 산인데 아래로는 호수가 있는 길을 되돌아갔다. 옆자리의 신양수님은 노트북을 검색하며 들여다본다. 워낙 말이 없어서 언제나 내편에서 말을 걸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한다. 뭘 물어도 짜증 한 번 안 낼 것 같은 그런 얼굴이다.

오늘 가는 길에는 빗물 고인 진흙탕도 많고 강을 건너는 곳도 많아 위태위태한 고비를 잘 넘기고 울렁거리며 잘도 달린다.

버스 안 10분 강의, 풀이 초원을 덮은 이유는 일년초라 해마다 많은 씨를 맺고 퍼트리기 때문에 지구상에 늦게 출현했지만, 단시간에 초원지대를 만들어 유라시아지역에 초원을 많이 만든 것이다. 볍씨 식물은 그중에서 종류가 제일 많은데, 지금의 볍씨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개량된 것이다.

점심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 자리 잡았다. 메뉴는 김밥과 신라면 이였다. 점심 후에 모두들 강가로 가서 그동안 씻지 못했던 머리도 감고, 발도 씻고, 양말이나 손수건 등도 빨았다. 물을 떠보니 약간 누런색이 보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양치물과, 설거지물을 하려고 빈 물통을 가득 채웠다. 사서 먹는 물로는 감당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삭발을 못해서 머리 밑이 계속 가려웠었는데, 머리를 밀어버리니 날아갈 것처럼 시원하였다. 물을 아끼느라 낮엔 양치질을 안 했는데 공짜 물에 양치질도 하니 한층 더 개운했다. 먹은 밥그릇도 깨끗이 씻고 있는데, 김성미님도 점심 때 쓴 들통이랑 그릇들을 몽땅 갖고 와서 흐르는 물에 씻고 있었다.

남영진님은 웃통까지 벗고 씻더니 어느 틈에 내 곁으로 와서 옷을 주섬주섬 주워서 입고 있는 나를 찍고 있어서 “안 돼”하며 소리를 질렀더니 웃으면서 가버렸다. 메뚜기 한 마리가 다리에 올라앉아 있기에 건드리니 파드득하고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 버렸다. 참 한가한 시간을 오랜만에 가졌다.

휘어져 있는 나무다리를 지나 아까 지나갔던 도시로 도로 나갔다. 식량을 실은 스타렉스가 고장이 나서 고치는 동안 특강을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저녁 식량만 싣고 떠나기로 했다. 가다가 이런 사고가 나는 것은 비포장으로 비만 오면 길이 엉망진창으로 변하는 열악한 곳이라 몽골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그런지 유로 선생님도 기사들도 태연했다.

버스 강의실. 312p, 흉노이야기를 번역한 분의 후기가 실려 있다. 옮긴이는 ‘이 번역서를 최후의 전사 질지 장군에게 바친다.’ 라고 했다. 필독을 권했다.

몽골을 이해하려면 정서적 교류와 정서적 교감을 느껴야 하는데, 불교 특히 라마불교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의 선교활동이 아무리 활발해도 몽골사람을 2%도 교화를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은 문화적 교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을 했다. 가는 동안 버스에서 안태순님이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두 번 독송했다. 박사님은 들으면서 그 뜻을 찬찬히 생각하라고 했다.

스타렉스 짐차가가 타이어에 구멍이 나서 갈아 끼우는 동안 휴식을 취했다, 버스에서 내다보니 주유소 간판이 보였다. 76이란 숫자가 적혀있는 주유소였다.

주유소 간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95 1860

92 1710

80 1550

дТ 1850

☎ 7007-3003

이 칸은 그림으로 화물차, 세차, 주유, 타이어가 옆으로 네 개 그려져 있었다.

사진으로 찍으면 금방 알아 볼 수 있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적었다.

дТ이라는 글자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신양수님은 ‘경유를 표시한 게 아닐까’ 라고 했다.

스타렉스가 타이어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손 볼 일이 있어 시간이 걸리니까, 그 동안에 게르 체험을 하기로 했다. 유로 선생님이 교섭을 한 곳에 두 팀으로 나눠서 갔다. 게르는 바깥에서 들여다만 보았지 안에 들어가기는 처음이었다. 들어가니까 과자부터 권했다. 강정처럼 생긴 것은 조금 딱딱했고, 치즈를 둥글게 말아서 만든 것과 우리나라 약과처럼 동그란 판에 찍은 과자도 있는데 설탕을 넣었는지 모두 단맛이었다. 게르의 천정에는 만든 과자들을 실에 꿰서 주렁주렁 달아 놓았다. 금방 만든 것은 수분이 있으니까, 오래 두고 먹으려고 말리는 중이었다. 야크우유로 만든 요구르트를 한 공기씩 떠 주어서 먹어보니 시큼하기는 한데 고소했다. 자꾸 더 먹으라고 권했으나 다른 대원들은 사양했다. 그러나 나는 맛이 좋아서 한 그릇 더 먹었다.

유로 선생님이 게르의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게르의 둥근 전정은 공기통이자 연기통으로 론이라 부른다. 서까래는 운이라 하고 따로 따로 떨어지므로 설치하거나 걷어낼 때 편리하다. 가운데 기둥은 두 개로 바른이라 하며, 마름모꼴의 나무로 되어 있는 벽은 한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가족들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방이나 마루에 걸어 두었는데 게르의 내부에도 그런 사진들이 네 개나 장식되어 있었다. 조상을 모신 제단도 있고 구식 텔레비전도 있었다. 제단의 위로는 쌀과 치즈과자 등을 올려놓았고 아래로는 촛대와 향로가 놓여있었다. 전력은 태양열을 이용해서 텔레비전을 본다고 했다. 게르의 앞에는 반드시 태양열을 받는 판이 한 두개 놓여 있고, 이 전기로 전자제품을 사용한다고 했다. 이 게르는 큰 구조로 벽에 붙은 침대 겸 소파가 네 개나 있고, 바닥에는 카펫이 여러 개 깔려 있었다. 게르 가운데 난로가 있는데, 난방뿐만 아니라 요리도 난로에서 한다. 천정은 재껴서 해나 바람이 들어오도록 하고, 벽도 재껴서 바람이 들어오도록 한다고 했다. 게르는 해체하는데 30분, 짓는데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신기했다. 주택난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로선 이상적인 집이 아닌가 생각했다.

몽골의 장례풍습은 우리와 비슷하나,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고 했고, 몽골어의 어순은 우리말과 같다는 등 여러 가지 설명을 유로 선생님이 잘 해주었다. 또 몽골어로 아버지는 아우, 어머니는 에지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게르 안에 손으로 수를 놓아 짧은 커튼처럼 장식해 놓은 것이 눈에 띠어서 물어보니 이집 안주인의 솜씨라고 해서 놀랐다. 장미, 목단, 동백, 작약 등을 수놓았는데 색상이 매우 화려했다. 자세히 보니 꽃을 하나씩 수놓아서 여섯 개를 붙여서 만든 것이었다. 물은 호수까지 가서 길어온다고 하니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긴 내가 어릴 적엔 동네의 공동우물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 먹었으니까, 수돗물이 집집마다 틀면 쏴아 하고 나온 것은 우리나라도 80년대 이후라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다. 게르 입구에는 장작을 때기 좋도록 잘게 패서 네모난 양철통에 담아둔 것이 있었다. 불 피울 때 쓸 나무인 것이다.

정말로 훈훈한 시골인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집이었다. 가족은 주인부부와 아들, 딸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몽골은 20세 전에 결혼하는 조혼풍습이라고 했다. 주인 아저씨가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묻기에 69이라고 했더니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52살이라는 아저씨는 나보다 늙어 보였다. 내 옆에 앉은 신양수님이 51라고 하니 거짓말 같은지 보고 또 보면서 웃었다. 유로 선생님 말로는 여름과 겨울이 온도차가 60도가 넘는 기후와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생활에서 고생하며 살다보니 빨리 늙는다고 했다.

차 고장으로 인해 다섯 시간정도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에 게르체험을 해서 몽골을 좀 더 가까이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짐차 스타렉스가 고장 난 곳을 다 손보고 이리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떠나려고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좋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궂은 날이었다.

“아리랑 고개를 또 넘어가 볼까!” 고친 차가 도착해서 출발한다니까 허만욱 교수님이 한 말이었다. 그 말대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 야영지에 도착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몽골인도 보이는 사방이 훤하게 트인 넓은 초원이었다. 기다리느라 지쳐서 가라않았던 기분이 확 풀렸다. 어딘가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허 교수님이 이익우 회장님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편하게 그리시라고 내가 앉을 깔개를 드렸더니 너무 좋아했다. 나는 박스를 하나 주워 와서 깔고 뭘 쓰는데 남영진님이 보살에 대해 물어왔다. 아는 대로 대강 설명해 드렸다. 남영진님

은 때 묻지 않은 소년 같아서 손익을 따지지 않고 무슨 일에나 발 벗고 나서서 거들어 주는 봉사정신이 몸에 배서 이번 탐사에서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다. 아까 호수 옆에 있는 굴속을 보다가 이마를 다쳐 반창고를 붙이고 있기에 놀렸더니 소년처럼 수줍어했다.

몽골은 어딜 가나 푸른 초원과 얕은 산등성이가 눈에 밟히는데 내일부터는 사막으로 들어선다니 기대가 된다. 그러나 유로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내일도 사막까지 가지 못한다고 했다.

박사님은 항상 공부만 하는지 머릿속에 들은 걸 꺼내고 꺼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또 외울 것이 생겼다. 라마불교의 4대 종파이다. 닝마파, 카규파, 샤카파, 겔룩파인데, 쫑카파는 겔룩파의 개조이다. 현재 달라이라마도 겔룩파이다.

초원을 바라보며 이런 초원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기후조건과 싸우고, 자연환경과 싸우고, 일과 싸우고, 그것도 모자라 이리저리 푸른 풀밭을 찾아 옮겨 다니는 유목생활 속에서 무조건 참고 견디어 이기는 길밖에 없는 삶의 연속뿐인 것이다. 결코 수월한 삶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다. 삶이 곧 투쟁이라는 말이 가장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선지 몽골인은 삶에서 이기기 위해 힘을 내는 육식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기사님들이 식사준비 하는 걸 보면 고기가 없는 날이 없다.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놓고

숭숭 잘게 썰어서 양파 썬 것과 함께 끓이다가 끓으면 국수를 넣고 만드는 고릴테 슐이라는 국수음식을 즐겨 드셨다. 옆에서 만드는 것을 지켜보면 지극히 간단했다. 우리처럼 밑반찬도 없고 메뉴가 단지 하나뿐이었다. 때로 빵을 곁들여서 먹기는 하지만...

몽골을 보면 불편한 것도 있겠지만, 문명의 편리함에 의해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엔 편리한 만큼 쓰레기 더미가 보여서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문명의 발달은 편리함을 안겨주는 대신 환경오염이라는 공해를 유발하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도라도 결코 좋아할 일만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 몽골도 경제의 발전과 함께 쓰레기 문제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다른 여타문제에 골머리를 앓을 것이다. 강 건너 등불 보듯이 훤하게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걱정스러웠다.

버스강의에서 몽골의 역사를 배우면서 그들의 끈질긴 전쟁,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벌과 정복! 그와 함께 넓어지는 대몽골제국의 땅! 그런 저력이 밑바탕이 되어 앞으로의 몽골에 기대를 걸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메뉴는 부대찌개와 햇반, 그리고 밑반찬 이였다. 이국땅에 학습탐사 와서 이렇게 잘 먹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합장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저녁 강의는 큰 텐트를 두 개 합친 학습탐사 임시강의실에서 시작되었다. 몽골을 이해하기 위해선 불교를 알아야 된다는 것부터 시작되어, 그러려면 티벳 불교 즉 밀교수행을 하는 라마교를 알기위해선 티벳 불교사 529p-628p를 잘 읽고 학습해야 된다고 했다.

겔룩파의 시조인 쫑카파(1357-1419)의 저서인, 631p-632p,『보리도 차제론』과 『비밀도 차제론』을 소개했다. 『보리도 차제론』은 대승과 소승 전체를 체계화하여 이해하기 쉽게 쓴 책으로 몽골인 이면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이는 누구나 다 잘 아는 불교서적이라 유로 선생님도 알고 있었다. 『비밀도 차제론』은 겔룩파의 교의와 교판, 공양법을 담았고, 유가(瑜伽)와 중관(中觀)을 집대성했다. 인도밀교, 특히 아티샤(Atisa)의 주장을 계승하였다. 441장의 방대한 저서이다.

밀교의 대가로 다섯 분을 기억하라고 했다.

아티샤, 파두마삼바바, 카마라실라, 마루빠, 밀라레빠 이렇게 다섯 분이다.

그 다음은 298p-299p,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에 있는 내용을 도표로 만든 것을 깡그리 외우라고 했다. 이튼 날, 김양겸 학생이 정말로 다 외워서 너무 놀랐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무조건 외웠다고 했다. 그런 점은 본받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승가대학에서 대승기신론을 배울 때 외우라고 학장스님이 누누이 말했건만, 나는 외우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부끄러웠다.

강의 후에 중간평가가 있었는데, 안 한 것이 나을 뻔했다. 좀 더 일찍 출발하자! 식사를 간단하게 줄이자! 등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결말은 없었다. 사공이 너무 많아서, 좋게 말하면 관심이 너무 많아서였다.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