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차 해외학습탐사 몽골 일지(1일째)

 

2016819일 금요일. 날씨는 흐린 뒤 비, 또 흐린 뒤 맑음

 

0000분에 심야 고속버스에 올랐다. 탐사 전전날 김현미 이사가 새벽 4시까지 도착하라는 말에 다시 전화를 넣어 5시까지는 도착할 것 같다고 했더니 괜찮다는 대답이어서 선택한 교통편이다.

버스는 새벽이어서 그런지 410분에 도착해 한 숨을 돌렸다. 도착하니 공용 짐이 산더미 같이 놓여 있고 대원들도 대부분 와 계셨다. 짐을 부치기 전에 먼저 티켓팅을 하려고 했으나 6시부터라는 말에 맥이 빠졌다. 그렇게 일찍 도착하지 않아도 될 것을. 미리 잘 알아보았으면 좀 늦게 와도 되는 걸 말이다.

원망도 잠시 54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몽골 학습탐사 책자와 함께 이름표를 건네받자 정신이 버쩍 들었다. 이 책을 언제 다 보고 외우나싶은 것과 다 알아가고 싶은 욕심이 번갈아 드나든다. 명찰에 적힌 박영주라는 나의 속명이 좀 낯설다. 절에서는 법념이라는 법명이 익어서다.

박자세가 어떤 학습단체인가. 자투리 시간을 그냥 보낼 리가 없다. 박사님이 재빨리 시간을 포착하고 책을 펴라고 했다. 중요한 부분은 빨간 펜으로 표시하고 꼭 외우라는 부탁(?)과 함께. 250페이지까지 넘길 무렵 짐을 부친다는 연락에 강의가 중단되었다.

다들 기내용 캐리어를 준비했기 때문에 공용 짐을 하나씩 떠맡았다. 내가 맡은 짐은 갈색 텐트가방이었다. 짐을 부친 뒤 비행기 표를 받아보니 815분 출발로 탑승구는 6번 게이트다. KE8867편으로 좌석은 53C석으로 단체석이여서 당연히 끄트머리에서 가깝다.

탐사대원 55명과 MBC 촬영 팀 3, 모두 합해 58명이 떠나는 학습탐사이다. 연령층은 중2년생인 10대 김태규를 비롯해 70대까지여서 폭이 아주 넓은 편이다. 남녀노소가 어울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생생한 학습탐사 현장이 될 것 같다. 이번 탐사에는 과학계의 권위자이신 조장희 박사를 비롯해 서강대 철학교수이자 건명원 원장인 최진석 박사. 김영보 박사 등이 참석해 더욱 보람 있는 탐사가 되리라는 조짐이 벌써부터 보인다.

탑승수속이 끝나고 6번 게이트로 와서도 박사님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탐사 책을 펴고 강의를 이어갔다. 공부하러 나섰으니 공부만이 할 일이니까. 탑승하기 전 단체촬영을 한 뒤 기내로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우리 탐사 팀의 짐들은 다 캐리어여서 짐칸이 모자라 승무원들이 밀어 넣느라고 애를 썼다.

지금부터 세 시간 반을 가야하니까 모자란 잠을 청했다. 잠이 막 들은 것 같은데 이륙하던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이었다. 벌써 도착했나, 아니면 잠에 취해 내가 몰랐나싶어 당황하던 참이었다. 비행기에서 기내방송으로 기계장비를 점검한다고 잠시 기다리라 해놓고 감감 무소식이다. 뭐라고 말을 해주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말이다.

아마 한 시간은 지체한 것 같다. 10분 뒤에 이륙하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연발하더니 결국은 리턴해서 비행장으로 다시 가서 새로 점검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처음 당하는 일이지만 정말 황당했다. 기계점검을 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어 다시 이륙하겠다는 방송을 했다. 마지막에 항상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 분간을 할 수 없다. 그럴 땐 탑승객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게 아닌가싶다. 두 시간동안 기다린 탑승객은 아무 보상도 없이 가만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았다.

1145분에 도착해야할 비행기가 오후 155분에 칭기즈칸(Chingiz Khan)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초청 가이드 유로 선생과 민요가수인 바트라 운전기사, 또 한분 낯익은 운전기사도 보였다. 구면이어서 악수를 나누며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버스 3대와 스타렉스 4, 모두 7대가 오늘부터 9일간 동고동락 할 예정이다. 나는 4조로 4호차 버스에 올랐다. 나흘간 타고 다닐 버스이다.

공항에서 나와 단체사진을 찍을 때부터 비가 뚝뚝 떨어지더니 시내로 가는 동안 비가 제법 부슬부슬 내렸다. 다행히 몽골 수도인 울란바타르(Ulaan Baatar)에 닿을 무렵, 비가 그쳤고 시간은 오후 세시를 넘기고 있었다. 울란은 붉다는 뜻이고 바타르는 영웅이라는 뜻으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다. 세시 넘어 KOREA HOUSE라는 한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메인메뉴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였다. 그 외에 반찬으로 돼지고기 고추장볶음, 배추김치, 무 깍두기 등이 올라왔다. 그런대로 맛은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 않던가.

본래대로 도착했더라면 울란바타르 박물관을 견학할 수 있었지만 두 시간 늦게 연착한 바람에 가지 못했다. 식품담당 대원들은 시장을 보러가고 그 외의 대원들은 한참을 달려 NOMIN WHOLE SALE이라는 간판이 붙은 창고처럼 큰 마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시장 보러 간 대원들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도 가고 마트에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마트 안은 천정이 높아 설렁했고 상품은 알록달록한 과자종류가 제일 눈에 띠었다. 마트 화장실은 줄을 많이 서있고 이층에 있는 음료수 가게는 만석이라 앉을 자리도 없어 빙빙 돌다 도로 버스 안으로 돌아와 몽골탐사 책을 펼쳤다.

박사님은 기다리는 동안에 공부하라고 버스마다 다니며 외울 것을 일러주었다. 한 번도 아니고 서너 번 오셨다. 조금이라도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려는 정성스러운 배려였다. 토곤 테무르로 시작하는 몽골의 칸 중에 중요한 이름을 말해주며 다 외우라고 당부했다. 만도룬 칸, 만들하이 가툰, 다얀 칸, 자나바자르, 바토르 홍타이지 등이었다.

60 여명이 먹을 것이어서 장을 볼 것이 많은지 6시 반이 지났건만 아직도 연락이 없다. 박사님은 가다가 푸른 초원에 내려 한 시간 정도 강의를 하시겠다고 했지만 시간상 어려울 것 같다. 8시 지나 장을 본 대원들이 짐을 날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산더미 같은 식품종류 중에 물이 가장 많았다. 사막에서는 물을 구한다 해도 먹을 수 없으니 말이다. 문영창 대원이 물 담당이어서 무거운 물을 나르느라 힘을 많이 쓴 듯하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애쓰는 걸 보고 물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오후 8시 반쯤 출발했다. 해는 아직 떠있어 바깥이 밝다. 850분경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우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저녁노을이 물들면서 해가 지기 시작하자 기온이 갑자기 급강하해서 쌀쌀하다. 배낭에 든 패딩잠바를 꺼내 입으니 따뜻해졌다.

너무 늦어 멀리까지 못 갔다.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을 향해 달리다가 10시 쯤 넓은 초원에 내려 숙영하기로 정했다. 각 조별로 텐트를 치는데 처음이라 서툴러 남자대원들의 협조로 무사히 마쳤다. 4조는 이경, 문순표, 이미숙, 이순란, 나 박영주 이렇게 다섯 명이다. 앞으로 열흘간 텐트 속에서 동고동락할 대원들이다.

바쁘게 마무리 하고 있는 차에 별을 관측한다는 소리에 뛰어갔다. 조금 있으면 달이 뜨니까 달이 올라오기 전에 별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월명성희(月明星稀)라는 말처럼 달이 밝으면 별이 드물어지니까. 검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다. 박사님이 하늘까지 길게 비추는 라이트로 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토성, 화성, 안타레스, 북두칠성, 북극성 티포트(주전자)모양의 궁수자리 등이다.

저녁은 라면과 햇반, 김치였다. 11시가 넘어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오르혼(Orkhon)강 주변에 검은 숲길이라는 뜻을 가진 카라코룸(Karakorum)에 간다고 한다. 카라코룸은 몽골 초기의 수도로 토성이 발굴된 곳이다.

첫날은 이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