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움을 느꼈던 시간들> 

 

돌아와서 10일을 더듬어 보니 아득합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어딘가를 다녀온 것 같습니다. 워낙 험한 길을 달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어서 알타이 산맥과 고비사막을 못 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길이었습니다.

 

바람만이 들러주는 유목민들의 흔적에서 최강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 타르보사우루스가 활보했던 데스밸리 같은 협곡까지, 화강암의 기원이 되는 우리 지구 속 마그마가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변한 곳에서부터 저 먼 우주 공간까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날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 조용해진 차 안에서 지나온 기간을 죽 되돌아봤습니다. 이 탐사를 딱 하나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우선 생각났던 건 앞에서 이끌어가는 열정입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분명 하나의 조직일 텐데, 이러한 조직을 무엇으로,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직업병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말씀 드린 것처럼 새벽에 1시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적어도 2-3, 저녁식사 후 야학에서 또 1-2시간… . 이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열정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빛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면서 , 이럴 땐 박수가 나와야 하는데…” 같은 말이, 의식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나오는 게 아니라 탄식처럼 나오고, ‘흉노라는 책의 옮긴이가 쓴 후기를 직접 몇 번이나 읽으면서, 아니 그것도 모자라 옆 자리의 김현미 선생님께 읽게 하고서는 이런 걸 읽고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이라고 했던 대목은 적어도 제겐 그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리더의 특징 중의 하나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동기를 주위에 뿌려주는 힘입니다. 이건 아무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으면 별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군대 훈련병 시절 그 작은 창 밖 하늘에 안타레스(전갈자리)가 보이는데 눈물이 나더라라는 말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뭔가 다른 열정의 샘을 갖고 있는 거지요.  

 

열정을 표현하는 과정도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사님 생각으로는 아마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천천히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 공감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감탄하는 대목에 이르면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뜨거워집니다. 그러면 마치 초신성이 그러는 것처럼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지식들이 번쩍 터지는 순간에는 수많은 지식이 좌~악 쏟아져 나옵니다. 마치 뜨거운 핵융합으로 빛을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탐사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열정에 공감하는 학습력입니다. 한 손으로는 박수를 칠 수 없듯이 이 빛나는 열정에 화답하는 이 또 다른 열정이 바로 많은 분들의 학습력인 것 같습니다. 이 두 힘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박자세를 굴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힘은 박자세 회원들이라면 박자세 첫날의 첫 경험에서 다들 겪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7월 말 천뇌 모임의 중간에 간신히 참석할 수 있었는데(참석하지 않으면 못 간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좀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수업 도중 조용히 들어가서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5분도 안돼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텅 비어 있는 하얀 칠판을 가득 채우는, ‘한 판또는 두 판으로 끝내는 강의자, 그리고 슥슥슥 볼펜 굴러가는 소리와 딸깍딸깍 하는 볼펜 색깔 바꾸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하리만치 조용한 분위기. 요즘 말로 하면 완전 진지 모드. 이 묘한 정적 속에서 금방 느낄 수 있는 건 왠지 모를 소외감입니다.

 

다들 너무나 열심히 뭔가에 집중하고 또 뭔가를 열심히 쓰는데 그걸 함께 할 수 없는 묘한 소외감. 적을 것도 없지만 적을 수도 없습니다.

 

저만 그런가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탐사기간 동안 많은 분에게 물었는데 다들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또 그 경험이 참여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도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분에서부터 부끄러웠다는 분까지 그 묘한 소외감의 결과를 얘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묘한 첫 경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가진 것을 나눠주려는 힘과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는 힘, 이것이 박자세의 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박사님의 말처럼 이것도 인과 연이 있을 뿐인가요?

 

그런데 이 힘이 유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요? 본의 아니게 고생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 탐사의 가이드 6명이 그들입니다. 마지막 날 공항 가기 전 회식을 할 때 가이드 책임자인 유로씨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겪어보니 어떻습니까?”

 

가끔씩 느끼는 거지만, 뻔한 질문에, 그러니까 우문에 현답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술이 한 잔 들어가고

다시 한 번 묻자 제대로 된 답변이 나왔습니다.

 

사실 이번 기간 중 운전사들이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주 뿔이 단단히 나서(유로씨는 8년 정도 한국 생활을 해서 그런지 재미있는 한국말들을 잘 구사했습니다) 달래느라고 고생 좀 했어요. 우리처럼 이렇게 초원 여행을 하면 대개 회사원들이 출퇴근하는 것처럼 아침에 운전을 시작하고, 저녁이 되면 게르에서 편하게 자는데, 이건 어떻게 된 것이 하루 종일, 어떤 날은 12시간씩 운전을 하면서도 잠은 차 안에서 자야 하니 말이죠. 더구나 비포장도로로만 다니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를 운전하시는 분은 입술이 터졌을 정도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긴 우리는 버스를 타는 것만 해도 힘들었는데 그 울퉁불퉁한데다가 툭하면 빠져서 꼼짝 못하기 쉬운 길을 가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아마 엄청 고생했을 겁니다.

 

그런데 유로씨의 그 다음 말이 우리를 한참이나 웃게 했습니다. 몽골 운전사들이 우리를 보면서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을 보면 무조건 관광지로 가거나 말 타러 가는 편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길도 없는 곳만 찾아 다니는 데다가 새벽에는 별 본다고 일어나고, 저녁에는 공부한다고 또 모여서 뭔가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 종일 달리면서 다 허물어진 곳만 찾아 다닌다는 겁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자기네들은 고기를 매일 먹어야 힘이 나는데, 이 사람들은 매일 허옇고 멀건 밥이나 샌드위치 한두 조각 아니면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면서 또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는 겁니다.

 

웃고 나니 홀가분했습니다. 그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면서 문득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밤,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져있다는 별들을 보면서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런데 유로씨의 그 말이 대답이 되어 주었습니다. 알고 싶어하는 힘, 인류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더 알고 싶어하는 힘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박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말 하나가 있습니다.

 

학습을 한다는 것은 향후 10년 동안 공부할 욕심을 만드는 동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작아짐에 감사한 시간들>

 

초원에 군데군데 놓인 바위들 때문에 마치 야외 조각공원 같은 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우리는 마지막 날 아침 울란바토르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어제까지 맑았던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비만 내리는 게 아니라 초겨울 날씨처럼 추워집니다. 하루만 늦었어도 꼼짝도 못했을 텐데, 이걸 천우신조라고 하는 건가요?

 

옆에서는 오늘도 흉노화가 날렵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맨 앞 좌석에는 39명의 뒤치다꺼리를 아무런 말 없이 해낸 덕분에, 얼굴이 반쪽이 된 주인공(임동수)이 한눈에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무엇을 무리 없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은 이렇게 힘든 노력이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바로 그 모습을 허만욱 교수님께서 날렵한 터치로 흉노화에 담습니다. 영원히 남을 흉노화에 그 모습이 담겼으니 이제 그의 노력이 영원히 남을 겁니다.(임동수 선생님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부식 재료 담당을 맡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던 박순천 사장님, 시청각 자료 준비하시느라 바쁘셨던 신양수 선생님, 별자리 해독과 그림을 만들어내신 이진홍 선생님, 사진 전담 임지용 선생님,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는데..., 주로 주제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은 에피소드를 담지 못했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초원에서의 4일째(한국 출발까지 하면 5일째), 오전 735, 우리를 태운 버스가 전날 모닥불까지 피웠던 야영지를 막 출발했을 때 김현미 선생님께서 뒤를 가리켰습니다.

 

저 뒤를 보세요. 우리들이 머문 곳, 아무 흔적이 없어요. 우리들 가슴 속에만 있어요.”

 

뒤돌아보니 정말 그저 푸른 초원만이 있었습니다. 바람처럼 머물고, 바람처럼 떠나는 유목민들의 삶을 표현하는 이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지만, 막상 그 주인공이 되어 보니 신기했습니다. 분명 먹고 자고, 캠프파이어까지 했는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그저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는 그 곳을 다들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정말 바람처럼 살아간다는 말이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초원을 떠나왔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정말이지 바람처럼 휘돌다 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흔적은 초원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 속에 그 넓은 초원을 담아왔으니 말입니다. 아마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달렸던 초원이 이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거지요. 답답할 때마다, 우리가 좁아질 때마다 우리를 넓혀줄 그 초원입니다. 눈을 감으면 이제 우리가 그 초원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빗물로 불어난 강을 트랙터로 끌어서 건너고, 수렁에 빠진 버스를 으샤으샤 해서 구해내고, 비가 내리던 밤, ‘아 오늘은 자다가 일어나면 빗물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까지, 흔들리고 또 흔들렸던 10일간의 기억이 벌써 추억이 되어 갑니다. 아마 누군가는 이 흔들리던 추억을 꽃으로 피워내겠지요. 또 이 우주의 기본법칙이라는 것이, 끝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듯이, 이번 탐사도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이든 박자세 차원이든.  

 

알면 알수록 세상은 커졌고, 우리는 작아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달려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이 마지막 편을 쓰면서 오랜만에 들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그 한 구절로 이 체험기를 마감할까 합니다.

우리는 달려야 해, 말 달리자~…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