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우리는 이 초원에서 바람처럼 살다가 사라져간 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초원에 남아있는 성터들이 목적지였습니다.

오늘부터 가는 길은 가이드도 처음 가본 길이 많습니다. 가이드도 물어 물어서 가야 합니다.”

 

박사님의 말마따나 아침 먹고 곧바로 출발했는데 성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끝없이 푸른 초원과 물결 같은 산들이 나지막이 지평선을 달리고 있을 뿐, GPS가 없다면 동서남북 찾기도 힘들 것 같은 바다 같은 초원입니다. 어디를 봐도 똑 같은 모습뿐입니다. 가야 할 방향이 없다면 방황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흔히 서몽골로 불렸던 오이라트 시절의 궁성을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세계 제국을 경영하고, 중국을 천하통일했던 원나라가 명나라 주원장에게 밀려 다시 북쪽으로 쫓겨간 후예들 중의 하나인 오이라트. 그 나라의 마지막 왕 초쿠트 타이지가 살았던 궁성은 장중한 산맥이 뒤를 받치고, 앞으로는 드넓은 초원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벽은 다 허물어져 파편만이 뒹굴고, 낯선 방문객들이 신기한지 수리 두 마리가 빙글빙글 돌다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몇 시간을 달려도 사람 하나 발견하기 어려운데 옛날에는 이곳이 한 나라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저 초원 끝까지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끼고, 전사들을 품은 게르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었을 텐데, 그 전사들이 동으로 서로, 남으로 질풍처럼 달리며 우리가 모르는 역사를 날마다 새로 썼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서 있기도 힘들다는 듯 간신히 서 있었습니다. 시간과 시대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앞서가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다음에 찾아간, 거란군 2만여 명이 주둔했다는 성터와, 한때 위구르족의 수도였다는 곳까지하나같이 초원 한 가운데 있었고, 하나같이 그 위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또 하나같이 황성옛터 같은 허무한 느낌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 힘, 그 기세,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박사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우리를 뒤돌아보게 합니다.  

 

 

<학습탐사의 진수를 경험하다>   

 

몽골에서의 9일은 너무나 단순한, 그러나 너무나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눈을 뜨면 달리고, 달리다가 힘들면 쉬고, 식사시간이 되면 멈춰 식사를 하고, 또 그렇게 달리다가 봐야 할 것이 나타나면 내려서 둘러보고, 또 달리다가 어둠이 길을 막으면 텐트를 치고 잤습니다.

 

,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공부! 날마다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면 20분쯤 지나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들려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익히 아시겠지만 같은 목소리입니다.

 

새벽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보통 이렇습니다.

저기에 있는 저 별은…”,

 

버스에서는 이렇습니다.

00 페이지를 보면… “ 아니면 오늘 암기할 것은… “,

 

그리고 대개 시청각 교재로 이루어지는 야학은 이른바 심화학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벽 5시에 한 번, 흔들리는 버스에서 보통 3~4, 그리고 저녁식사 후 한두 시간. 우리는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리고, 쉴 새 없이 공부했습니다. 버스와 떨어진 스타렉스 팀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무전기로 연속 타전 생중계를 했습니다. 이만하면 학습탐사모드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거의 모든 설명은 -다운 식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탑다운 식이란 박사님의 설명을 제대로 기억하고, 중요한 것을 무조건 암기해야 한다는 거죠. 일단 그렇게 해놔야 거기에 살이 붙는다는 게 박사님의 지론이라는 걸 저도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제 수첩에 적힌 가장 첫 번째 암기사항은 ‘162636’입니다. 박물관에서 처음 나온 이 숫자는 이제 33인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에 관련된 숫자인데, 916년은 요나라가 건국된 연도, 926년은 이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킨 연도, 그리고 936년은 만리장성 내의 연운 16주를 획득, 중국 방식으로 중국의 중요한 일부를 통치했다는 연도입니다.

 

이 거란족은 몽골계에 가까운, 지금은 사라진 민족인데 한때 전세계 역사를 출렁거리게 한 주인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사용한 명칭은 키탄’(khitan), 이란식으로 키타이라고 하는데, 이 요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멸망한 후 왕족 중 일부가 서쪽의 중앙아시아로 이주, 서요라는 나라를 세운 적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바로 키타이라고 불렸는데, 한때 강성한 나라였던 이 키타이는 영토를 넓히는 와중에서 서쪽에 있는 셀주크와 자주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이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성 요한의 나라라는 명칭을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십자군이 지금의 지중해 동쪽에서 셀주크와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반대쪽에서 어떤 반가운 나라가 양면전을 벌여주니 전쟁이 한결 수월해졌던 것이지요. 유럽은 이 신비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지 바스코다가마의 신항로 개척에는 이 성 요한의 나라를 찾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중앙아시아의 움직임이 전세계 역사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키타이는 나중에 중국이나 아시아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쓰이게 되는데 지금은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의 캐세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선한 역사 공부였습니다.(적어도 제게는…)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역사는 늘 중국 25사를 중심에 놓고 옆 나라들을 갖다 붙이는 식이었는데, 이렇게 중앙아시아의 흥망성쇠를 중심에 두고 거꾸로 중국 역사를 갖다 붙여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던 겁니다.

일례로 두 번째 암기사항이었던 흉노족과 선비족, 유연과 돌궐족에서 거란족, 그리고 몽골족이 세운 나라들이 중국 25사에 견줄만한 계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게 더 와 닿았던 것은 이들이 바로 이 초원을 휩쓸고 다녔던 주인공들이었고, 이들이 어떤 흥망성쇠를 겪느냐에 따라 주변국은 물론 전세계 역사가 출렁거렸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들 민족들은 상고사에서부터 우리 민족과도 항상 끈이 닿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흉노족에게서 발견되는 적석목곽분이 경주에서 발견된 적석목곽분과 같다는 것에서부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양()이란 말이 돌궐말에서 시작된 것까지 말입니다.

 

이 중앙아시아 중심 공부는 그 다음 암기사항인 몽골제국의 칭기즈칸 가계도까지 이어졌습니다. 칭기즈칸의 형제(카사르, 카치온, 옷치킨)와 네 아들,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드러낸 손자들까지… .

 

암기사항은 날마다, 아니 수시로, 아니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첫날, 둘째 날, 셋째 날까지는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통사적 접근이 이루어졌고,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혈연적, 문화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이 쪽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다양한 책에서 발췌한 700쪽 책이 여반장하듯 뒤적여졌습니다. 무지막지하게 흔들리는 차 안이었지만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우듯그렇게 흔들리면서 조금씩 줄기를 만들고, 줄기에 살을 붙여갔습니다. 덕분에 수첩에 적힌 글씨는 거의 암각화나 고대 상형문자 수준입니다. 이 답답한 서울에 와서 그 넓은 초원을 생각하며,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제 글씨를 해독하려고 끙끙거리는 저를 연상하시는 일, 이제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흔들림을 단순한 긍정적 착각 수준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분이 계셨습니다. 몽골에서의 둘째 날, 흔들림이 아주 심한 버스 뒤쪽에 앉으신 한 분이 가지고 오신 한지를 약간 펼치시더니 붓펜으로 뭔가를 그리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 흔들리는 차 안에서 무슨 그림이시냐고 했더니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게 바로 흉노화라는 거야!”

 

흉노화, 그런 것도 있었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설명이 뒤따라옵니다.

 

옛날 이 초원을 달렸던 흉노족들이 말 위에서 화살을 쏜 것처럼 달리면서 이런 걸 그리는 거지.”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교수님은 시간 날 때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크로키처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탐사기가 책으로 나오면 보시겠지만 버스 안 인물화는 이렇게 그려진 겁니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시는 안채순 사장님도 화제의 인물이셨습니다. 둘째 날 초원에서 잠시 멈춰 휴식을 취하는 시간, 멋진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 몇몇 여성들의 어깨춤을 덩실덩실 이끌어내시는 범상치 않은 내공을 보이시더니 이후로도 몇 차례 멋진 경기민요를 선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초원에서의 3일째 밤, 불타는 모닥불 앞에서 뽑아내신 경기민요 창부타령은 그 애절한 가사로 인해 찬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창부타령의 가사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습니다. 한 구절만 맛을 보여드릴까요?

 

창문을 닫아도 숨어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사랑이 달빛이냐 달빛이 사랑이냐, 텅 빈 내 가슴속엔 사랑만 가득 남아있네. … 사랑 사랑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게 무엇이냐 보일 듯이도 아니 보이고 잡힐듯하다가 놓쳤으니 나 혼자만이 고민하는 게 이것이 사랑의 근본이냐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정말 멋진 소리 한 자락이었습니다.

 

 

 

<티벳불교, 들으면 들을수록 어려운….>  

 

울란바트로를 기준으로 서북쪽으로 달리면서 몽골과 거란, 그리고 위구르의 성을 훑고 난 우리는 깊이만 100미터 정도 된다는 화산 분화구에 들러 지질학 강의를 잠깐 듣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덜컹거리기는 했지만 이제까지는 일종의 국도(國道) 수준이었던 길에서 산길 같은 초원 길로 들어선 겁니다.

 

풍경이 점점 바뀌었습니다. 저 멀리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낮게 물결치던 산들이 줌렌즈를 당기기 시작한 것처럼, 볼 때마다 눈앞으로 다가서고 광활한 초원이 이 다가온 산들 안에 갇히기 시작했습니다. 초원은 갈수록 작아졌고 산들은 커져갔습니다. 동시에 흔들림은 가히 환상적인 놀이기구 체험 수준으로 격상됐습니다. 버스 뒷좌석에서는 앉은 자세로 튀어올라 선반에 부딪치는 일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한국 출발 5일째, 그리고 몽골 초원 4일째, 아르항가이 아이막(‘아이막은 우리로 치면 ’()입니다)의 서북쪽 끝 지점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양홍고르 아이막으로 가는 길, 어디서나 그렇지만 경계를 넘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경계를 시속 30킬로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천국을 넘나들 듯한 환상적인 놀이기구를 타고 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했을까, 1 25, 두 아이막 사이에 놓인 고도 2800미터인 항가이 산맥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개에 해당하는 곳이 4Km나 되는 평지인데, 전후좌우엔 멀리 산들만이 겹쳐진 까마득한 곳입니다.

 

이곳을 넘어서면서 우리의 목적지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목표는 저 남쪽의 사막,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있는 곳, 고비… . 이제 그 없는 곳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겁니다. 당연히 공부 주제가 바뀌었습니다. 이날부터 흔들리면서 더듬었던 두 번째 줄기는 티벳불교였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몽골 역사를 알아야 할까요? 몽골을 이해하는 것은 세계사의 반을 이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못하면? 세계사를 모르는 것이지요.”

 

말씀처럼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중앙아시아, 구체적으로 흉노에서 몽골에 이르는 유목 세계가 어떻게 출렁거리느냐에 따라 세계지도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25사의 개괄은 물론, 흉노에서 몽골에 이르기 까지 역사를 죽 더듬었는데, 이번에는 몽골인의 마음 저변에 깔린 티벳 불교에 들어선 겁니다.

 

오전 810, 역시 출발 20분만에 시작된 아침 공부는 박사님이 일찌감치 정리하셨다는 일심도’(一心圖)의 설명으로 출발했지만, 귀에 설은 말씀들이 바람에 날립니다. 왜 그러했는지 머리가 아프실 분도 계시겠지만 조금만 옮겨볼까 합니다.

 

일심(一心)은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으로 나뉠 수 있는데, 진여(眞如)는 공()이고, 생멸(生滅)…. 또 생멸은 심생멸(心生滅)과 생멸인연(生滅因緣), 생멸상(生滅相)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세(三細)와 육추(六麤)인데 삼세는 의()이고, 육추는 의식(意識)… . 그러니까 의식의 대상이 의()라는 것… .”

 

저만 낯선 걸까요? 솔직히 여기 와서 티벳불교를 처음 접한 저는 너무 어려워서 옮겨 적을 수도 없었습니다. 역시 저 같은 속세의 범인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영역입니다.(다음 탐사 때는 이런 것에 익숙한 분에게 숙제를 내주시길…)

 

어쨌든 우리가 알아야 할 기본 뼈대는 역시~ ‘-다운 암기로 이뤄졌습니다. 아티샤에서 파드마 삼바바, 카마라 실라에서 쫑카빠에 이르는 5대 고승과 링마파, 샤카파, 까뀨파와 겔룩빠라는 4대 파… . 이름부터가 낯설고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외웠고 야학에서까지 티벳 불교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더듬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역시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는 사원 만들링히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1755년 건립되었다는 이 사원은 원래 24채나 되는 대단한 크기였는데 옛 소련 지배 시절인 1937년 이른바 대숙청 기간에 파괴되어 지금은 한 채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대숙청은 당시 승려만이 아니라 700여 곳의 사원이 파괴당했고, 식자층 수만 명이 살해된 엄청난 사건이었죠. 지금까지는 영화(榮華)가 사라진 초원을 주로 봐왔는데, 이번에는 영혼이 사라진 곳을 보게 된 겁니다. 영화가 사라진 초원에 무심한 바람만 있었다면, 고양된 영혼이 사라진 그곳에는 잡초만이 무성했습니다.

 

사실 그 심오한 종교 철학의 세계를 어떻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조그만 줄기라도 세웠으니 봄이 오면 잎이 나고 뿌리를 내릴 때가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