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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위 위구르성 숙영지. 1진 마지막 아침강의 모습.^^


7월 26일(일) 학습탐사 10일


1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벌써 해가 떠올랐다. 마지막 초원 햇살이다.

이제야 능숙해진 텐트 정리도, 누룽지도 안녕이다.

역시나 눈을 먼저 뜬 사람만이 멀리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어제 갔던 위구르 성에 다시 올라 가 있었다.

 

오늘은 울란바토르에 들어간다고 한다. 정말 끝이구나. 살면서 언제 또 지평선을 마주보게 될까 먹먹하다. 울란바토르에 가기 전 거란성에 도착했다. 정말 하찮게 여겨졌던 햇볕이 이젠 정이 들었는지 따스하게만 느껴진다. 거란성 옆에 있는 좁디 좁은 박물관에 들어갔다. 촉트타이지 사진이 있었다. 순간 의심이 들었지만 촉트타이지 역을 맡은 영화배우라는 말에 그럼 그렇지가 나온다.

 

거란성으로 들어 가려면 몇 발작 움직여야 한다. 두 팔 걷어 올리며 발랄하게 출발했다.

자박자박. 종아리 까지 오는 풀 들을 넓은 보폭으로 헤쳐 나아갔다. 거란성 입구에 도착했다. 검은색 창살이 있는 철문 이였는데, 부서지기 전에는 제법 예뻣을 것 같다. 거란성 내부에는 돌로 쌓아져 있는 것들이 있었다. 비록 절반 이상이 부셔졌지만 부서진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과 잘 어우러진 성이였다. 하늘이 뻥 뚫려서 그런지 뜨거운 공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그나마 그늘이라고 있는 그림자 밑에 가서 숨을 돌렸다.

가만히 서 있으면 바람이 불어 오는게 느껴지고 작은 구름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아마 한국이였으면 매미소리에 귀가 찢어졌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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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초 거란성 박물관 & 거란성 현장 탐사.^^


사람들이 밖으로 점점 나갔다. 성 외각을 걸으려고 한다. 다들 어찌 에너지가 그리 넘치십니까. 힘이 다 빠진 나는 성 벽 아래 그늘에 주저 앉고 말았다. 애꿎은 풀만 요리조리 돌려보다 뽑는다. 옆을 보니 하은이도 힘이 쭉 빠져 보인다. 결국 하은이와 나는 먼저 버스로 향했다. 버스로 가니 점심식사 얘기가 나온다. 천막을 치느냐 각자 잼을 바르느냐 의견이 분분했다. 시간도 없고 햇빛도 따가워 A버스 B버스 나누어 알아서 잼을 발라 먹기로 했다. 샌드위치 정말 맛있는데, 식빵도 힘들었는지 수분이 바싹 말라있다. 빵을 한입 베어 물면 대륙 이동하는 것처럼 으스러진다. 결국 나는 마지막 샌드위치 식사를 포기하고 삶은 달걀만 먹었다.

 

몽골에 오니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니 나도 모르게 굶게 되고 식욕이 없어졌다.

아마 위가 소식하는 거에 익숙해진 것 같다.

햇빛을 피해 박물관 그림자를 그늘 삼아 한 줄로 앉아 그야말로 피크닉을 했다. 하얀 계란 껍질을 가진 뽀얀 계란이였다. 하얀 계란은 일상에서 보기 드물지만 여기서는 하루종일 흰 달걀만 먹었다.

 

머리 속에는 지글지글 항정살을 생각하며 흰자를 베어 물었다. 소금도 없이 물도 없이.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저 쪽 끝에서 왠 개가 어슬렁 거린다. 생긴 거는 시커매서 들개인줄 알았는데 사람을 피하지 않아 아마 게르에서 키우는 개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쪽쪽 소리와 손을 내밀며 개를 불렀다. 손에 먹을 것이 있는 줄 아는지 가까이 다가왔다. 마침 먹기 힘든 칙칙한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니 챱챱 잘도 먹는다. 행여 목 막힐까 우유까지 건네준다. 동물병원에 홀로 맡겨 있을 우리 집 강아지를 생각하니 울컥 해 졌다. 몽골에 떠나기 직전 가지 말라며 울고 낑낑거렸었는데. 만나면 더 잘 해줘야 겠다.

 

아빠는 자리에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성 외각 걷는 것을 촬영한다고 또 걷는다.

에구, 힘들겠다 우리아빠. 파이팅해요.

더위에 몸이 녹아 내릴까봐 정신 바짝 차리며 우리는 촉트타이지 성으로 출발했다.

이곳이 1진 마지막 여정이라는데, 보통 이럴 때 시원섭섭하다고 표현지만 나는 무진장 섭섭했다. 전혀 후련하지 않았다. 처음 간 칭기즈칸 광장도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촉트타이지 성까지 온 것이 아쉬웠다.

 

덜컹거리던 버스 뒷자리, 가끔 졸다보면 튀어나온 쇳덩어리에 머리를 쿵 박아 혹이 나고, 간식 타임에 과자 한 봉지 두 봉지로 돌려 먹고, 아빠가 강의하다 노트북에 사진이라도 보여주면 벌떡 일어나 기둥하나에 중심을 잡으며 기필코 사진을 보고야 말겠다며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던 기억들이 눈에 그려진다.

 

촉트타이지 성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후다닥 내렸다. 네모나게 생긴 돌벽들이 쌓아 올려져 큰 네모 성이 만들어 져있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중간 중간 부서져 끊어져 있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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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트타이지 성 방문. 시와 문학 그리고 예술이 펼쳐지던 곳.^^

 

촉트타이지 성에 올라가보니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부서진 벽들과 풀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텅 빈 공허함 속에서 촉트타이지와 어머니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두 모자의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책을 참 좋아했다는데 정말 벽들이 책장처럼 쌓아져 있었다.

하은이와 책을 빼는 척 하며 돌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여정을 끝마치고 우리는 모두 기립박수를 서로서로에게 보냈다.

이것으로 모든 여정 끝마치고 울란바토르로 가겠습니다. 300km남았는데 새벽에 도착 할 지 앞으로에 대해 잘은 몰라요. 저녁은 몽골 식당에서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움직이겠습니다

이제야 정말 끝이란 현실감이 느껴진다. 여행이라는 것은 제대로 즐기면 항상 마지막이 아쉽다 못해 섭섭한 것 같다.

 

비포장 도로, 길도 아닌 길을 달리다 고속도로에 버스가 진입하자 기분이 묘했다. 버스가 이리 안정적이였던가... 지금 달리고 있는 거 맞나?

움푹 패인 곳을 지나가면 몸이 붕 떠서 꼬리뼈로 안착했던 그 고통도 이젠 끝이다.

달리는 줄도 모르게 편안한 탑승에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얼마쯤 잤을까, 눈을 떠보니 버스가 점점 속력을 줄이더니 아예 길 옆에 정차했다. 휴식 타임인가 싶지만 휑한 도로 한복판인데, 과연 여기서 볼 일을 해결하라는 것인가 싶다.

 

푸쉬식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어긋난 몸을 풀러 밖으로 나갔다. 버스가 덜컹거리지 않으니 왠지 밋밋해 심심해진 나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직 B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

가끔 차량 끼리 만나지 못하면 앞에서 기다렸다 만나기도 했기에 곧 오겠지 하며 비스킷 한 조각을 꺼내먹었다.

 

이 귀한 자투리 시간을 아빠는 그냥 보낼 사람이 아니지. 분명 아까 다 끝났다고 했지만 끝은 무슨! 다시 세계사 도표를 꺼내 풀숲에 앉아 세계사 맛보기 공부를 했다. 인도사 흐름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역시 발음조차도 기억이 안 난다. 언젠가는 또 인도를 가서 외울 날이 오겠구나...

 

느낌상 몇 십분은 훌쩍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버스는 연락이 안 된다. 더 불안한건 버스 기사분들도 버스의 행방을 모르는 것 같다. 전화도 해보고 스타렉스 차 한 대가 직접 찾으러 나섰다. 한 참이 지나서야 버스는 왔다. 사람들은 매우 지쳐보였다. B버스에 문제가 생겨 중간에 차량이 멈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 기사분이 응급 수리를 해서 버스가 움직이는데 얼마 못 가 중간에 다시 멈춰 섰다.

 

몇 번 수리를 하며 시동도 켜보지만 별 효력이 없어 보인다. B버스 사람들은 버스의 독한 기름 냄새에 멀미가 나고 중간에 차량이 자주 멈추니 힘이 쏙 빠져 보였다. 결국 B버스 사람들은 짐을 가지고 남는 자리로 이동했다. 몇몇 사람들은 스타렉스 차에 타고 나머지 사람들은 A버스에 꾸깃꾸깃 몸을 접어 탔다.

 

정종실 선생님은 자리가 없어 버스 통로 한 칸 계단에 앉으셨다. 그야말로 콩나물 버스다. 왠지 한쪽으로만 몰려 있으면 버스가 넘어질 것 같다. 앞으로 30분 정도 가면 도착이니 조금만 참아 달라는 말에 그저 이 상황을 즐겼다. 30분 걸린다던 시간은 어느새 째깍째깍 흘러 1시간이 넘어갔다.

 

멀미도 나고 한계점에 거의 도달했을 때 점점 건물들이 많이 보이더니 화려한 마차같은 큰 건물 앞에 내려섰다. 이곳이 오늘 몽골 저녁식당이다. 빨간색 건물에 주황색 조명.

 

원래는 이날 휴뮤일이였지만 우리를 위해 특별히 문을 열었다고 한다. 10시가 돼서야 도착해 종업원 들이 거의 없어 셀프 서빙을 해야 했지만 음식은 푸짐했다. 비록 모두다 양고기였지만은...

양고기를 먹고 탈이 난 사람들이 있어 나도 과하지 않게 자제하며 먹었다. 제일 입맛에 맞았던 요리는 양고기 만두였다.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흡사 대왕 납작한 만두에 속을 만두 속 대시 양고기 다진 것을 넣어 튀긴 것 같았다. 늦게 도착해 비록 식어있고 눅눅했지만 그럭저럭 입맛에 맞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노란 옷을 입은 남자분들이 악기를 들고 우르르 들어오셨다. “뭐야?”

몽골 전통악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첼로나 바이올린 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둥글지 않고 각진 네모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짐승의 뿔처럼 보이는 악기에는 구멍이 뚤려 트럼펫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중앙에는 피아노처럼 앉아서 건반을 두드리는데 실로폰처럼 무언가로 토도도독 치며 날카로운 하프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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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악기들로 몽골 전통 노래를 불러 주셨는데, 몽골 노래에는 두 가지 목소리를 내는 전통이 유명하다. 평소 어떤 목소리일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 악사들이 직접 불러주셨다.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우우우어어어어어에에에에에워어어어어어어어이이이야야야아아아

기계같은 이상한 화음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두 명이 부르는 건줄 알았는데 한사람이 목소리를 긁으며 부르고 있다. 잘 들어보면 제일 낮은 저음과 중간 톤의 목소리가 갉아져 나온다. 저런 방식으로 노래를 한다는게 새로워 반신반의했다.

 

몽골어를 섞으며 노래를 하는데 숨도 안 쉬고 안끊기며 노래를 불러나갔다. 자동으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전통 음악으로 넘어갔는데 어디 정글에 가서 개구리가 통통 뛰어다니는 몽환적인 발랄함이였다. 사람들은 점점 흥이 올랐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을 가지고 악사들은 나가셨다.

아직도 노래에 대한 열기가 있어 사람들은 업 되어 보인다.

시간이 늦은 만큼 찜질방에 서둘러 입장해야 한다. 물로 입을 헹구며 식당에 나왔다.

버스를 타고 몇 분만 가니 호텔같은 빌딩이 나왔다.

내가 생각한 찜질방과는 수준이 남달랐다!

 

이곳에 목욕탕과 찜질방이 있다고 했다. 이 호텔은 알고 보니 한국과 연결이 되어 있는 곳이였다. 그래서인지 찜질방이 이해가 됬다.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머리에 샴푸를 해 거품을 내는데 얼마나 안 씻었는지 거품이 안 생긴다. 세 번이나 다시 감으니 보들보들 윤기가 난다. 두피가 시원하다.

 

머리를 드라이기로 대충 말리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이미 시간이 늦어 사람들이 많이 주무시고 계셨다. 수면실은 이미 만석이다. 얇은 담요를 엄마와 덮고 자리에 누웠다.

이제 잠에 들면 벌써 떠난다. 한국가면 답답해서 어떻게 지내나 걱정이 앞선다.

매일 뻥 뚫린 지평선만 바라 보았는데, 이젠 빽빽하게 모여 있는 자동차와 지나가는 사람을 본다니, 걱정 가득한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