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종강 때, 생각도 못한 순간에 박사님께서 챙겨주셔서 소감을 말하게 돼,
아직 낯설고 조심스러운 회원분들 앞에서 당황 돼 버벅거리고
말았던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대상 앞에서는 자기 자신을 더 정확하게 밝히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버벅 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헤르만 헤세, 이문열처럼 이름만으로 직업과 작품이 대변되는 것이 아니니
남이 불러주는 위치에 가기 전에 스스로 작가로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직업을 물으시면 어쩔 수 없이 작가라 대답할 수 밖에 없더군요.
제 소설로는
clever boy라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성애자의 이야기와
레이디라는 제목의 추락한 아이돌 스타가 자기처럼 상품성이 다했다는 이유로
집 앞에 버려진 유기견을 키우며 벌어지는 초보 양육자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문예지에 실려 있습니다.
각각, 북팔과 사람과 환경 이라는 작은 공모전에서 당선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인사 나눈 몇몇분, 작품을 물어보셨는데 네이버와 영풍문고에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그 중 레이디라는 책의 주인공은 제 강아지 셜록이고 이 아이가 저를 박자세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나 이외의 생명을 감히 책임지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성취하는 과정에 외로움이 친구라 생각했으므로 외로움에 강아지를
키운다거나 귀여움에 정신 놓는 사람은 바보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접한 동물 학대 자료에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었고
자본과 결부된 동물 학대 현실을 알고나면 신피질 좀 더 발달했다는 이유로
인간 따위가 이렇게 까지 동물을 고문하고 산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마음이
절로 드는 그 과정을 저도 거쳤습니다.
관광지, 동물원, 실험실,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 펫샵에서 파는 예쁜 개를 빼기 위해
개농장에서 벌어지는 종견들의 끔찍한 생애(애견샵에서 개 사시면 절대 안됩니다.)
등등 온갖 곳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를 알고 난 모든 사람들이 갖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동네에 집을 잃어버린 수려한 용모의 강아지가 나타났고
(그때는 강아지에 워낙 무관심해서 패턴 분리가 안돼 예쁜 강아지라는 것도 몰라죠).
전단지와 인터넷으로 그 아이의 본래 양육자를 찾다가 결국 제가 키우게 됐어요.
아이와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 처음에 접하게 된 건 행동학 계열 책이나
세미나였죠. 네. 요즘 유행하는 긍정강화 훈련으로 스키너 박사의 이론을 따와서
짜맞추는 강의죠. 양육자가 원하는 데로 행동하면 리워드를 주는 방식입니다.
보호자의 매우 집중력 있는 관찰이 필요한데
외부에서 관찰해 내가 원하는데로 행동을 이끄는 것이므로
아이의 속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어서 와 닿지가 않았어요.
그러다가 세미나에서 강아지는 변연계까지의 발달로 공포가 주된 감정이고
(물론 인간에 비해 얇은 신피질도 발달) flight & fight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말을 처음 듣고 뇌과학 책을 찾다가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을 알게 됐고
참고 목록 서적의 템플 그랜딘의 저서들을 보게 됐습니다.
뇌과학 서적은 생소한 전문 용어 이므로 단번에 내용이 들어올 수는 없었으나
평이한 문장 속에서 발견되는 박사님의 통찰은 그 전까지 경탄해 마지 않았던
인문학자들의 책보다 더 심오한 각성을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여태껏 나를 깨우쳤던 (칙센트마하이 같은 주로 유태인 석학들의) 인문학 책들로 환희가 왔던 상태, 그리고 극기 훈련과도 같았던 신체 운동은 나의 뇌가 활성화 돼 있을 때 강력한 힘이 나오더라는, 그러므로 신체적 힘도 뇌에서 나온다고 혼자 결론 짓게 만들었던 과정, 그리하여 뇌가 신이라고 결론 짓게 만들었던 - 그때는 세포가 신인줄 몰랐죠 - 과정이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속의 내용과 그림을 온전히 소화하자니 내 글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빠르게 가보려고 동영상을 찾아 봤고, 더 감동받았고 아예 빠져들어 올 여름 내내 동영상으로 공부를 하다가 결국은 박자세까지 오게 됐습니다. 첫 강때, 동영상에서 매일 보던 박사님 얼굴을 실제로 보니 무척 신기했어요.
이후로 줄곧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편을 쓸때, 자칫 하이퍼 어소시에이션 될 수가 있어요. 썸씽 디퍼런트가 발견 됐으니, 새 글을 시작하나 어느 순간 표현력이 고갈돼 버리면, 세상의 아름다움에 환희가 왔던 기억은 있는 채로, 흥분하여 옛기억에 집착해 CA3에서 리커런트 회로만 돌리다 보면, 욕망과 환희와 더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혼재해 고흐가 귀를 짜르는 심정이 되버립니다.
전에는 그러할 때 어쩔 줄 몰라 했으나 이제는 초등학생처럼 해맑게 센실륨을 따라 그리고 옴마티듐 따라 그리고 하다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정돈도 되고 정성스럽게 그림 하나하나를 그리는 과정에 내 글에 대한 세심한 열정도 되살아 납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 제 가슴에 패턴 세퍼레이션이 꽂혀 들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 패턴 세퍼레이션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던 시기에 시작됐습니다. 시련의 시기에 공감하고 위로 받았던 책으로 인간이 자기 신체에 대한 모든 권리를 박탈 당하고 오직 실행 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고압선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 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수용소 유태인들에게 분노나 투쟁의지 같은 건 없습니다. 양심, 도덕도 사라지고 오로지 무감각. 옆 사람이 죽거나 모함을 당해도 무감각일 뿐. 외부에서 보는 사람은 비열하다고 판단 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극단적인 시련을 겪은 자는 아무 할 말이 없고, 그 사실들을 담담하고 솔직히 술회한 프랭클 박사의 고매한 용기와 인격에 숙연했어요.
인간을 무감각으로까지 모는 시련을 이겨내는 길은 오직 지적 투쟁 밖에 없죠. 책을 통해서든,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성이나 가치관을 통해서든 , 짓밟히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 가치를 끄집어 내려 저항하면 그때 비로소 패턴 세러페이션이 되더군요. 프랭클 박사가 숨쉬기 조차 힘든 기차를 타고 수용소를 옮기며 밖을 바라봤을때 자연속의 풀 한포기, 꽃 한송이가 사무치게 아름다웠노라 술회하죠.
살벌함과 비정함의 한가운데 있던 도시 한복판의 제 방 창문을 통해, 앞집 목련 나무가 한철 동안 있었어요. 찌르르 박혀 들어와 아직도 제 신피질에 아름답게 살아있어요. 절박하거나 투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름다움을 모르기에 양아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세상은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박자세의 공부이므로 이 강의를 외우면서 내 글과, 그 글에 관련한 공부, 그리고 생활을 위한 경제활동과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 속상한 우리 셜록과의 시간들을 어떻게 조화 시켜야 할까가 커다란 관건으로 남아 있는데, 박자세와 함께 최대한 인터피어런스를 줄이는 훈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봉사해 주시는 스텝 분들, 그리고 자연과학 문외한이라 동영상을 반복 시청해야하는 제게 꼬박꼬박 파일 보내주시는 분들의 노고에 기대고 있습니다. 낯도 가리고 소심해서 다가가 표현하지는 못하나 늘 감사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제가 , 내 기억에 엮어 박사님의 정의하신 내용을 오해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없는 시간 할애해 주실 수 있다면 정정해 주세요.
느낌들이 섬세하게 와 닿네요...
매순간 수많은 생각들로 점철되었다가, 갑자기 어떤 한 가지에 매몰되면서
앞선 생각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가버리는 듯하여... 스스로 치열한 몸 훈련의 부족을 탓하고 있을 때
박혜준님의 생생한 패턴 세퍼레이션에 자극을 받습니다...
(물론 박사님을 포함한 박자세의 열성 분들로부터도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