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차 해외학습탐사 몽골일지(6일째)

 

2016824일 수요일, 날씨는 맑았으나 두 차례 눈을 조금 뿌림

 

피곤한 탓에 모두들 늦게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깜짝 놀라 침낭과 짐을 챙기고 텐트 밖으로 나오니 된서리가 내려 발을 디디자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밖이 온통 하얗다. 텐트 위에도 된서리가 두껍게 내려 하얗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한가이(Hangai)산맥 줄기여서 이렇게 추운가 보다.

 

밤샘을 한 대원들이 모닥불을 피워놓아 아직도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다. 산에 가서 삭정이를 주워와 피웠을 텐데 그 수고로움에 모닥불의 불길보다 더 따뜻함이 전해진다. 불을 쪼이며 몸이 더워지자 그제야 우리가 탔던 버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다. 어제 저녁 체체를렉에서 견인차가 와서 진구렁이가 없는 언덕까지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하, 그래서 밤새 차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 말소리도 들려 왔구나. 그 덕에 오늘은 차가 진구렁에 빠질 일은 없겠다싶어 마음을 놓았다.

 

아침은 7시 반에 먹었다. 뜨끈뜨끈한 누룽지에 김치, 콩자반, 마늘종장아찌, 김이 나왔고 어제 남은 김치찌개도 놓여있다. 후식으로 사과까지 나와 푸짐하다. 서리가 내려 식탁을 닦은 자리에 남은 물기가 도로 얼어붙어 성에처럼 끼었다. 추워서 손이 곱아 일하기 어려웠을 터인데. 식사당번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듯싶다.

 

식사 뒤에 텐트를 걷는 손이 곱아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 아직 된서리가 녹지 않아 텐트를 사방에서 잡고 털었다. 얼어서 그런지 뻣뻣해서 잘 개어지지도 않았지만 텐트가방 속에 억지로 구겨 넣었다. 매트를 걷으니 밑에 물기가 많아 축축하다. 어쩔 수 없이 대충 닦고 커버를 씌웠다. 저 위에서 잘도 잤으니.

 

박사님의 아침강의는 840분에 시작되었다.

황도 12궁을 다 외우라고 했다. 12궁은 사자, , 쌍둥이 황소, , 물고기, 물병, 염소, 궁수(사수), 전갈, 천칭, 처녀자리의 순이다.

추분점은 처녀자리, 하지점은 쌍둥이자리, 동지점은 궁수자리, 춘분점은 물고기자리이나, 춘분점이 물고기에서 물병자리로 옮겨가는 중이다.

황도 상에 행성이 있다. 행성 중에 천왕성은 1781년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 17381822)이 발견하였다.

언제나 저 멀리 보는 습관을 익히자. 내 근처만 보면 발전이 없다.

강의는 간단하게 끝났다.

 

9시에 출발해서 버스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탈길인 데다가 길이 질척거려 저절로 헉헉거리는 소리가 난다. 풀이 자란 아래가 진흙탕이어서 신이고 양말이고 간에 진구렁에 빠진 채로 그냥 걸었다. 무거워진 발을 띨 때마다 힘이 배로 들었다. 50여분 걸었나보다. 저만치 버스가 보인다. 스타렉스 3대는 대원들이 버스에서 내린 짐을 옮기느라고 아직도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버스가 보이니 다 왔구나싶어 힘이 난다. 산등성이를 넘어 널찍한 곳에 주차되어 있어 한시름 놓았다. 어제부터 6대의 차가 움직인다. 먼저 가는 분들을 싣고 1대가 가버려서다.

 

10시 반에야 차가 움직였다. 버스에 올라 먼저 젖은 양말부터 벗고 신은 휴지로 대충 닦아 신었다. 발이 추위에 얼어 새 양말로 갈아 신고 싶지만 캐리어에 있으니 꺼낼 수가 없다. 흙탕물에 빠진 양말이라도 말려 신으려고 꼭 짜서 휴지로 물기를 몇 번이나 빨아드리게 한 다음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에 걸어두었더니 꾸덕꾸덕 마른다. 나중에 약간 덜 말랐지만 그거라도 신으니 보온이 돼서 발이 한결 따뜻하다. 평소에는 더럽다고 신지 않을 테지만, 그나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산등성이를 넘어서니 양쪽에 늘어선 산이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해가 잘 드는 남쪽에는 풀이 자라고 해가 들지 않는 북쪽은 나무들이 자라는 산들을 지난다. 맑은 강물이 연이어 흐르는 곳으로 공기가 맑아 엊저녁의 피로가 말끔하게 가셔지는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지나간 몽골의 강물은 그다지 깨끗한 색이 아니었다. 조금 누런색을 띠거나 흐리거나 탁한 물이 많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강물은 강바닥에 깔린 자갈돌이 환히 비치는 깨끗한 물이 굽이치며 흘러서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산악지대여서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넘는다. 가다가 도중에 절벽이 멋있는 곳이 있어 내렸다. 백여 미터나 되는 절벽 위로는 나무가 자라고 있어 절경이다. 바위색깔은 연갈색과 회색을 띠고 있어 몽골에서는 보기 드믄 풍경인 듯하다.

11시쯤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로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으로 전부 나무만 써서 만들었지만 무거운 버스가 지나가도 끄떡없는 걸 보니 매우 튼튼하게 만든 성싶다.

 

다리를 건너자 야크의 천국이다. 수백 마리가 넘는 야크들이 너른 초원에 흩어져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정말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는 곳은 아르한가이 아이막 보도금 솜의 테일산이라고 한다. 아이막은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되고 솜은 시, 군에 해당된다.

용암이 흘러내린 산이 연이어 보이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는 주홍색 지의류가 피어 산뜻해 보인다. 누가 예쁘게 칠한 것처럼 여기저기에 많이 잇다. 큰 돌이 아니라 작은 돌들이라 꽃들이 피어 있는 것 같다. 강에는 큰물이나 홍수가 쓸고 갔는지 흙이 떠내려간 강가에는 제법 패인 곳이 많다.

 

가다가 게르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12시쯤이다. 유로선생님이 체험이 될지 안 될지 물어보러 갔다. 게르 앞에서 유로 선생님이 와도 된다는 손짓을 해서 대원들이 그리로 걸어갔다. 게르 주변에는 가축들이 많아 우리가 걸어가니 빤히 서서 구경하는 놈들도 있다. , 염소, , 야크 등이다. 게르 내부가 좁아 버스의 호수 순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2, 3, 4호의 순으로. 나는 2호차여서 먼저 들어갔다.

 

들어가니 난로에 불을 피워 수태차를 올려놓았고 간식으로 치즈와 치즈과자 등이 게르 가운데 놓여 있는 탁자에 올려져있다. 게르는 크기가 2, 5, 7, 8칸짜리가 있는데 이 게르는 5칸짜리로 7인 가족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 아들 부부, 손자2, 손녀 2명이다.

내부를 살펴보았다. 지붕의 서까래는 가운데를 중심점으로 부채꼴 모양이고 둥글고 가는 나무로 이었다. 모두 조립식이어서 서까래를 잇기도 쉽지만 잘 떼어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붕 한가운데 뚫린 둥근 창은 여닫을 수 있어 공기조절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에서 불 때는 난로의 연통이 그리로 나가도록 되어있어 편리하다.

수태차 끓는 소리가 들리니까 들어내어 큰 마호 병을 여러 개 가져와 옮겨 담는다. 차를 거르는 걸 보니 보이차 찌꺼기가 많이 나온다. 푸성귀가 귀한 곳이어서 차가 유일한 비타민 보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본다. 들어가는 왼쪽의 제일 윗자리가 불상을 모셔놓은 불단이다. 불상 앞 양쪽에는 종지에 기름을 부어 불을 켜놓았고 가운데는 향로가 놓여있다. 그리고 포대화상의 도자기상, 코끼리를 탄 부처님 액자 3개가 불단 위에 장식되어 있다. 불단 위의 서까래 사이에 몽골국기가 꽂혀있는 게 보인다. 불단 다음에는 나무로 만든 침대가 있고 위에는 카페트가 깔려있다. 그 옆에 서랍이 달린 가구가 있는데 잡다한 것을 넣는 것 같다. 가구 위에는 큰 마호 병이 몇 개 올려져있다. 가구 옆에 작은 냉장고가 있는 게 신기하다.

왼쪽의 제일 위는 예쁘게 꽃을 그려 넣은 주홍색 탁자 위에 텔레비전과 탁상시계가 있고 가족사진이 여러 개 걸려 있다. 알록달록한 장식품도 몇 개 놓여있다. 그 옆으로 침대가 있고 침대 다음으로는 선반이 있는 찬장에 주방도구가 올려져있다.

 

게르 가운데 양쪽으로 단청을 칠한 큰 기둥이 하나씩 있고 제일 위에는 구름모양의 조각을 해서 장식을 해놓았다. 양쪽기둥 사이에 걸쳐놓은 큰 나무 세 개는 대들보 역할인 것 같다. 그 나무들도 단청을 해 놓았다.

게르의 벽은 노란 바탕에 빨간 꽃모양이 그려진 천으로 둘러놓았다. 몽골사람들은 화려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르의 벽은 사선으로 된 나무를 두르는데 접고 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그 위를 천으로 덮은 것이다. 지붕은 양털로 된 두꺼운 천을 덮은 위에 방수가 되는 천으로 한 번 더 덮은 것을 보아 눈이 많이 오는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서인가싶다. 여름에는 바깥벽을 덮은 두꺼운 천을 위로 걷어 올려 바람이 통하도록 하고 겨울에는 천을 내려 꽁꽁 싸매두어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게르는 대략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게르 입구에는 태양열을 이용할 수 있는 열판이 세워져 있다. 그걸 이용해 텔레비전도 보고 작은 냉장고도 쓰는가보다.

게르의 좋은 점은 설치하는 것과 해체하는 것이 빠르다는 점이다. 30분이면 되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가축의 먹이를 따라 이동한다. 옮겨 다니기에 제일 편리한 집이 아닐까싶다. 게르를 돌아보고 나서 느끼는 점이 많다. 복잡하게 죽 벌여놓고 사는 것도 모자라 좀 더 넓은 집, 더 큰 방, 더 큰 평수를 선호하며 끝없는 욕심을 부리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2호자 대원들이 나가고 3호차 대원들이 들어오며 밖에 눈이 온다.”고 전해준다. 8월에 눈이라니, 한국은 아직도 찜통더위라던데. 눈은 금방 그쳤다. 이곳은 겨울에 기본이 영하 35도인 추운 곳으로 8월 중순이 되면 된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는 짐작만 할 뿐이다. 식생활을 소개하면 여름엔 주로 우유, 요구르트, 치즈, 치즈과자, 마유주 등을 먹고 추운 겨울에는 고기를 많이 먹어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한다. 나는 일지를 쓰려고 나가지 않고 계속 앉아 유로선생님의 설명을 받아 적었다.

 

몽골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덜어먹고 왼손으로는 그릇을 바치고 먹는다. 숟가락이나 포크를 써서도 안 되며 오른손으로 집어먹어야 주인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에 주인장이 술을 준비해 나와 박사님께 권했다. 보기에는 말간 빛깔의 술로 우리나라 소주 비슷하게 보인다. 야크우유를 발효시킨 술로 귀한 손님이나 집안에서 제일 높은 어른이 오면 드린다는 술이다. 그릇에 넙치도록 따라주는 술을 받자 박사님은 처음에 조금 머금어 맛을 보더니 조금 있다 연달아 두 번을 맛보고 다음 사람에게 돌린다. 평소에 술을 안 드는 분이라서 어떤 맛인지 매우 궁금했다. 어떤 맛인지 궁금해 하니 아무 맛도 안 나지만 순한 느낌이 들고 약간 솔향기가 납니다.”라고 말해준다.

유로선생님에게 술의 도수를 물으니 34도라고 한다. 도수가 제법 높아 많이 마시면 취할 것 같다. 술 이름은 레이믹아리브로 귀한 것이라서 아무 때나 내놓는 술이 아닌데 대접하는 걸 보니 우리 팀을 환대한다는 마음에서 내놓은 것 같다고 유로선생님이 말했다. 게르 안에 있는 대원들이 돌려가며 한 모금씩 마신 뒤 술이 줄어든 걸 보더니 또 따라주면서 박사님에게 또 마시라고 권하자 아직 못 마신 대원들에게 맛을 보라고 말했다. 박사님도 몽골에서 몇 번이나 게르를 방문했지만 술대접은 처음 받는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영국 어느 목장에서 올해 초에 처음으로 우유로 만든 보드카를 선보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너무 비싸 부호들만 사서 마신다던데. 우리 대원들은 오늘 엄청난 호사를 한 셈이다. 몽골의 산악지대의 게르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이야.

 

우유제품(치즈, 크림, 버터 등)으로 만든 과자는 이떼라고 부르고 우유의 크림으로 만든 부드러운 과자는 어름이라고 부른다. 어름은 조금 떼어 수태차에 넣어 먹으면 더 고소하다고 해서 조금 넣어 마셔보니 정말 맛있다. 몽골식당에서 마셔본 경험이 있어 모두들 잘 마시는 것 같다. 어름은 그냥 먹어도 고소해 자꾸만 손이 갔다.

 

밖으로 나오니 네 기둥을 세우고 널빤지를 올려놓은 뒤, 그 위에 치즈를 널어놓았다. 우리나라의 약과처럼 꽃무늬를 찍어 말리는 것은 과자인 듯하다. 게르 안에서 먹어보았던 과자모양이다. 말려 놓고 두고두고 먹는가보다.

옆에 있는 작은 게르의 지붕 위에 이상한 것이 있다. 양의 위라고 한다. 바람을 불어넣어 풍선처럼 만들어 말리는 중이다. 대원들이 이상해하니 열댓 살 나는 손녀가 손짓을 해 작은 게르로 우리를 안내한다. 마침 짧은 영어는 서로 알아들어 다행이었다. 양의 위는 67리터가 들어가는 용량으로 말려서 그 안에다가 치즈나 버터를 넣어 보관하는 용기로 쓴다. 게르 안에는 양의 위속에 넣은 것들이 스무 개는 넘어 보인다. 몽골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양의 위는 풍선처럼 물에 떠 연결해서 보트를 만들어 쓰는 걸 본 적이 있다. 칭기즈칸 당시에는 전쟁 때 염소 오줌통을 말린 주머니에 우유를 넣어 다니다가 요구르트가 되면 마시고 기력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사람들은 자연에서 모든 걸 구해 잘 썼던 것 같다.

 

게르에서 노래가 새어나와 들어가니 운전기사인 바트라 아저씨가 몽골민요를 부르는 중이다. 다 끝나자 답가로 김현미 이사가 나착 도르지라는 몽골민족시인의 시를 몽골말과 우리말로 번갈아 낭독했다. “나 태어난 고향이라는 시이다. 게르에서 나오기 전, 친절한 환대에 보답하는 뜻으로 우리들이 가져온 간식과 라면 등을 종류대로 넣은 것과 아이들의 문구류(색연필, 연필, 노트, 볼펜 등)를 주인부부에게 선물로 드렸다.

 

점심은 1시 반에 들었다. 빵은 잼, 도마도, , 오이피클, 사과 등을 취향대로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게르에서 만들어온 수태차와 함께 먹었다. 게르에서 키우는 검둥이 두 마리가 와서 대원들이 주는 빵 부스러기를 넙죽 받아먹는다. 검둥이 등에 날 파리가 와서 귀찮게 해도 아무렇지 않은지 가만 있다. 눈이 또 조금씩 뿌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친다.

 

두시 십 분에 출발했다. 게르에서 얼마 못간 곳에 강이 앞을 가로 막는다. 게르의 할아버지가 먼저 차를 타고 가서 강의 깊이를 알아보고 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한 번의 만남이거니 이렇게 인정을 베풀다니. 두 부자가 마음을 써준 덕택에 6대의 차가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 차 한 대의 바퀴가 빠졌으나 모두 힘을 합쳐 빼내느라 조금 지체하긴 했지만. 고마움을 가슴에 가득 안고 가는 소중한 체험이었다.

 

버스에서 내다보니 자갈이나 돌들이 흘러내려 바위가 드러난 산이 많다. 산기슭이 깎여져 내린 것은 빙하가 지나간 영향이 아닌가 싶다고 박사님이 말했다. 산맥줄기를 타고 가는 길이어서 산등성이를 넘거나 강을 건너는 일이 많다. 그런대로 잘 달렸으나 오후 4시경에 강을 건너다가 앞 서 가던 버스가 또 물에 빠졌다. 강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바퀴가 빠진 것이다. 할 수 없이 바지를 둥둥 걷어 올려 모두들 차에서 내렸다. 찬 강바닥에는 자갈이 울퉁불퉁해 밟고 지나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덕택에 6일간 물 구경을 못한 발이 저절로 씻겨 깨끗해졌다. 물에 빠진 버스에 로프를 걸어 다른 버스가 끌어 올렸다.

 

강을 건널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또 빠지면 어쩌나 싶어서다. 어젠 땅이 질척거려 산을 넘을 때마다 간이 조마조마하더니. 산 너머 산, 강 건너 강이다. 비탈길이나 강이 나올 때마다 멈추었다가 가기를 반복한다. 강의 깊이를 알아보거나 올라갈 수 있는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산길이어서 험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 이곳에 살았지만 버스가 지나가는 걸 처음 보았다고 게르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렇게 험한 길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해서 무척 놀랐노라고 하면서. 얼마나 험준한 길인가는 와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도 못하리라.

 

가다가보니 빙하가 녹아 내려오며 흙이 쌓인 언덕이 고르게 줄지어 서있다.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너무 신기하다. 삼사 킬로미터나 연이어져 있다. 크고 작은 강을 건너며 버스는 계속 달린다. 다섯 시 반쯤, 돌 자갈이 무너져 내린 곳에 지의류가 많이 보인다. 박사님은 그런 광경들을 살펴보고 다음에 이곳을 한 번 더 오고 싶다고 말했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어서 다시 와서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하며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고갯길을 넘어가는 길목에 50m 간격으로 오보가 두 개 서있다. 몸에 푸른 천을 퉁퉁하게 감은 채로 말이다. 근처에 타르박(다람쥐처럼 생겼음)이 사는지 가다가 몇 마리나 보았다. 한라산 보다 높은 산을 계속 달린다. 2,000m가 넘는 고지대를 하루 종일 달려온 셈이다. 한가이 산맥의 제일 높은 산은 3,650m이고 20cm 정도의 만년설이 쌓여 있는 곳이다.

 

드디어 숙영지에 도착했다. 오후 7시를 넘긴 시각이다.

평평한 초원에 내렸다. 어젠 경사가 진 곳인데다 땅마저 우툴두툴하고 게다가 습해서 최악이었다. 이런 날이 있으면 저런 날이 있듯이 오늘은 텐트치기에 최적인 땅이다.

 

저녁은 740분에 먹었다. 햇반에 배추된장국, 고추장아찌, 멸치볶음, 검은콩자반, 김치, 김이다. 식사 끝난 뒤 지질학강의가 있을 거라고 박사님이 말했다. 강의하기 전에 텐트를 치러갔다. 비바람에 우리텐트의 지지대가 부러져 이틀 전부터 다른 텐트이다. 조장희 박사팀이 쓰던 텐트로 새것이지만 짐 둘 자리가 없다. 이틀 전엔 비바람이 몰아쳐 정신이 없었고 어젠 춥기도 했지만 우리가 썼던 텐트가방을 찾지 못해 이틀 동안 캐리어와 배낭, 신 등을 텐트 안에 두고 자는 불편을 겪었다. 오늘은 여유를 되찾아 예전 텐트가방에서 현관을 다는 천막을 찾아내 텐트에 이어 달았더니 확 넓어진 느낌이다.

 

저녁 아홉시 반에 박사님의 저녁강의가 시작되었다.

하나의 대륙이었던 판기아(Pangaea)가 빙하의 이동으로 테티스 해(Tethys Sea)가 생겼다.

대서양중앙해령(Mid Atlantic Ridge)의 생성, 해령은 협곡(cirque)으로 16km에 달한다. 이것은 30km에 걸쳐 마그마가 분출되어 생긴 것이다.

오늘 지나온 곳은 빙하지역이었던 곳으로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생긴 자갈(Boulder)이 많이 보였다. 지질학적으로 대단한 지역이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온 보람이 있다. 빙하가 녹아 생긴 빙퇴석(morains)으로는 Medial morainsEnd morains가 있다.

드라이아이스란 한대지역(寒帶地域)에서 피는 꽃을 말한다.

빙하기는 250만 년 전부터 100만년 사이에는 주기가 대략 4만년이었고 100만 년 전부터는 주기가 대략 10만년이었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어 사철이 생겼다.

천왕성은 90도 기울어져 있다.

미국 뉴멕시코의 화이트 샌드(White Sands)는 한여름에 밟아도 시원하다. 모래가 석고재질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직도 빙하기이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져 간빙기로 가고 있다.

빙하기가 올 때 이산화탄소 농도는 350ppm, 빙하기 때는 250ppm, 현재는 400ppm으로 농도가 짙다. 그 여파로 그린란드(Greenland)5만년에서 1만년 사이에 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져 급격히 변화했다.

지금처럼 그냥 이대로 나가 2도 이상 조절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100년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현대는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기후학을 공부하여야 한다. 지구의 존망(存亡)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3,500만 년 전부터 남극에 빙하가 있었다. 그 때는 남극이 호주대륙의 두 배였다. 1,000만 년 전부터 남극이 다시 얼어붙었다.

북극은 250만 년 전부터 빙하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남극과 북극이 같이 얼어붙기는 빙하기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신생대 제 3기인 4,000만 년 전에 인도와 아시아판의 충돌, 이로 인해 희마라야 산맥이 이루어졌다.

티베트 고원의 융기 등이 대륙의 이동에 의해 생겼다.

 

다음은 천문학이다.

태양은 어디에 있나. 항상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좌표는 별자리로 알 수 있으며 지금은 사자자리(레굴루스-Regulus)에 있다.

안드로메다 갤럭시(Andromeda Galaxy)를 찾는 법을 알면 또 하나의 다른 우주를 찾은 것이다.

밤하늘의 카시오페아(Casiopea)별자리 W에서 뒤에 있는 V의 끝에서 페가소스 사각형으로 쭉 내려와 첫 번째 별에서 일학년, 이학년, 삼학년에서 멈추고, 그 자리에서 다시 삼학년 일반, 일반, 삼반자리 옆에 지우개로 지운 듯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안드로메다 갤럭시이다. 안드로메다 갤럭시는 지구에서 25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로 밝기는 3.4등급이다.

금성은 저녁에는 서쪽에 있고 새벽에는 동쪽에 있다. 천왕성은 쌍둥이자리에서 발견이 되었다.

강의는 밤 11시에 끝났으나 별자리를 다시 복습하고 나니 자정에 가까웠다.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