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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뇌과학 공부에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사람을 소개한다는 자체가 조심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당사자의 본모습을 제대로 그려내서 진면목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소개 안 한만 못한 결과가 도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그분의 자연과학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기에 작은 바늘구멍 내어 들여다본 그분의 공부법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인물 평전은 아니고 다만 그분의 공부방법에 대한 엿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업비밀일 수 도 있는데 공부에 대한 열정을 널리 알리고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공유한다면 용서해주시지 않을까 미리 양해의 방패막을 쳐봅니다.

바로 '박문호 박사'이십니다. 현재 공익 사단법인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www.mhpark.co.kr)'이라는 단체의 이사장을 맡고 계십니다.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시고 미국 텍사스 A&M에서 전자공학 석박사를 받으셨습니다. 대전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시다 몇 년 전에 퇴직하시고 자연과학과 뇌과학 공부와 함께 강연을 하고 계십니다. 저서도 여러 권 있는데 '뇌 생각의 출현' '뇌과학의 모든 것' '유니버설 랭귀지' '뇌 과학공부'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이 대표적입니다.

"전자공학 박사가 뇌과학 저서를 집필했다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그냥 겉핥기 식 흥미위주로 브레인을 기술해놓은 책 아닐까?"라는 색안경을 끼고 책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망치로 얻어맞는 충격을 경험할 겁니다. 국내에서 뇌과학 관련 책자 중에 이 분의 책을 능가할 책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다른 뇌과학 책조차 접해본 일이 없으면 비교 자체가 불가하겠지만 그나마 브레인에 관심 있어 서점을 기웃거려본 사람들은 놀라 자빠지실 겁니다. 사실 뇌과학 분야에 대한 책은 박문호 박사의 공부에 있어 정말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년 봄가을로 자연과학에 대한 강좌를 엽니다. 봄에는 '137억 년 우주의 진화', 가을에는 '특별한 뇌과학'이라는 강좌를 진행합니다. 한 시즌에 보통 8강에서 15강 정도를 진행하는데 일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을 몰입해서 칠판 판서를 하며 강의를 합니다. 양재동에 있는 훈련센터에 가면 벽면 전체가 칠판입니다. PPT를 사용해 강의를 할 만도 한데 오로지 판서를 하십니다. 판서를 한다는 것은 그 내용이 머릿속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137억 년 우주의 진화' 강의는 올해로 벌써 1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2013년부터 9년째 꼬박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

공부의 스케일이 다릅니다. 137억 년 전 빅뱅의 우주에서부터 태양계, 지구, 인간의 브레인까지 파고듭니다. 4시간 내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수식을 판서로 풀어나가기도 합니다. 뼛속까지 인문학인 저는 그저 따라 그려보기도 정신없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분야 중에서 한 분야만 파도 평생을 올인해야 할 텐데 자연과학 전체 분야를 블랙홀처럼 섭렵합니다. 그렇다고 백화점식 공부라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박문호 박사의 공부에는 화살같이 한 괘를 관통하는 중심이 있습니다. "137억년 우주의 진화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지 브레인까지 들여다보는 일관되고 집중된 공부"입니다. 넓이보다는 깊이의 중요성이 더 강조 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발표한 최신 논문과 책들을 독파하고 정리하고 머릿속에 집어넣어 자기만의 지식으로 재구성해 냅니다. 박문호 박사의 거실에는 1만 권 가까운 자연과학 서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연과학 서적을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감히 한국에서 독서량으로 박문호 박사를 따라올 자 있으면 나오라고 해보세요. 아마 손들고 나오기 힘들 겁니다. 

박문호 박사의 화수분 같은 강의 열정은 바로 최신 지식을 섭렵해 자기화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박문호 박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재는 아니십니다.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공부에 빠져들어 천재화한 사람입니다. 그냥 자연과학이 좋아서 공부를 한 결과가 현재의 엄청난 자연과학 지식 설명자가 되신 것입니다. 공부가 좋아서 하다보니 오랜시간 공부에 매진해도 힘든줄 모릅니다. 오프라인 강좌에 참석해보면 열변을 토하시는 열정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좋아하지 않으면 그런 열정과 땀을 쏟아 낼 수 가 없습니다.

박문호 박사는 구체적 학습법으로 대칭화, 모듈화, 순서화를 주장합니다. 학문은 쌓아가는 축적 과정입니다. 벽돌을 쌓아 100층 빌딩을 만드는데 모듈화 되지 않으면 단층 건물밖에 지을 수 없습니다. 벽돌 모듈을 대칭으로 쌓고 순서대로 쌓아야 계속 건물을 올릴 수 있습니다. 대칭을 숙지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면 쉽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브레인 공부할 때 수없이 브레인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이 기억은 몸으로 생각하기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이 습관화되면 기원의 추적, 시공의 사유, 패턴의 발견으로 사고법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패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10년 가까운 기억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축적된 기억을 활용하는데도 5년 정도가 소요된답니다. 기억의 활용에는 3초 이내에 인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3초 이내에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하면 장기기억에 각인된 기억이 아니라는 겁니다. 3초 내 인출하지 못하는 기억은 바닥에 흩뿌려진 물과 같아서 얼마 못가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기억이 축적되고 활용되어 나중에 편집할 수 있는 단계가 되어야 창의성이 나타납니다. 기억의 구조를 통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습의 핵심인 기억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박문호 박사는 '핵심 단어 공부법'을 활용한답니다. 불가에서 화두 하나를 들고 용맹 정진하듯이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개념 하나를 키워드로 간직하라는 겁니다. 이 키워드가 모듈화의 벽돌이 되어 지식의 플랫폼을 만드는 기초가 되고 이 기초가 튼실해지면 무너지지 않는 학문의 빌딩을 지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박문호 박사는 공부도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좋은 습관은 들이기가 정말 어렵고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나쁜 습관은 쉽게 빠져든답니다. '좋은'이라는 의미가 붙어서 그렇답니다. 의미를 떼어내야 습관이 된답니다. 가치와 분리시켜 그냥 하라는 겁니다. 술 담배에 중독된 사람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냥 하다 보니 중독되었다는 겁니다. 공부도 마찬가지랍니다. 가치와 의도성을 빼버리고 게임과 같이 심심풀이 삼아 그냥 하다 보면 공부도 중독된다는 겁니다.

'그냥 한다'. 무서운 말입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공부를 즐기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쉬운 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일, 그것을 이겨내고 해 내는 사람만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137억 년 우주의 진화' 강의가 양재동 훈련센터에서 다시 시작되니 찾아가, 그 침 튀기는 강의의 열정을 온몸으로 맞아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