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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깊은 역사  지구의 기원을 찾아가는 장대한 모험

마틴 러드윅 지음 | 김준수 옮김 | 동아시아 2021년 08월 27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과학 > 교양과학 > 교양우주 > 교양지구과학

이 책의 주제어

#과학 #고대품 #자연사 #인류사 #행성

지구의 나이 45억 살. 누가, 언제, 어떻게 알아냈을까?

지구과학의 탄생과 발전을 한 권으로 묶은 지구과학의 지성사

지구의 깊고 낯선 과거를 밝혀낸 사람들의 좌충우돌 이야기

_ 한양대학교 철학과 이상욱

이 책에서 다루는 폭넓은 역사는 문ㆍ이과 모두에게 흥미로울 것이다

_ 뉴 사이언티스트

저자소개

저자 : 마틴 러드윅

역사학자생물학자

Martin J. S. Rudwick

마틴 러드윅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분교의 역사학 명예교수이자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의 방문교수이다. 고생물학자로서 학계에 첫발을 내딛었으며, 이후 과학사학자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지구과학의 역사에 천착해왔다. 지은 책으로 화석의 의미The Meaning of Fossils: Episodes in the History of Paleontology(1972), 데본 대논쟁The Great Devonian Controversy: The Shaping of Scientific Knowledge among Gentlemanly Specialists(1985), 시간의 한계를 깨트리다Bursting the Limits of Time: The Reconstruction of Geohistory in the Age of Reform(2005), 아담 이전의 세계World before Adam: The Reconstruction of Geohistory in the Age of Reform(2008) 등이 있다.

 

역자 : 김준수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사를 공부했으며, 지구과학, 생태학, 환경공학 등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여러 과학과 기술의 역사,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물질적·비물질적 인프라 등에 관심이 있다. 옮긴 책으로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논쟁, 숫자, 의학을 지배하다(공역)가 있다.

목차


서론


1.
과학이 된 역사

연대기의 과학/ 세계사의 연대 추정/ 세계사의 시기 구분/ 역사로 본 노아의 홍수/ 유한한 우주/ 영원주의의 위협


2.
자연 고유의 고대품

역사가와 고대품 연구자/ 자연의 고대품/ 화석에 대한 새로운 관념/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념/ 화석과 대홍수/ 지구의 역사를 그려내다


3.
큰 그림 그리기

새로운 과학 장르/ ‘성스러운이론이라고?/ 지구가 서서히 식어간다고?/ 세계 기계가 순환한다고?/ 이전 세계와 현재 세계라니?


4.
시간과 역사의 확장

화석, 자연의 동전/ 지층, 자연의 기록 보관소/ 화산, 자연의 유적/ 자연사와 자연의 역사/ 지구의 시간 척도에 대한 추측


5.
시간의 한계를 깨트리다

멸종의 실재성/ 지구상의 마지막 혁명/ 현재, 과거의 열쇠/ 표석의 증언/ 성서의 대홍수와 지질학적 대범람


6.
아담 이전의 세계

지구의 마지막 혁명 이전/ 기묘한 파충류의 시대/ 새로운 층서학’/ 지구의 장기 역사를 그려내다/ 서서히 식은 지구


7.
흔들리는 합의

지질학과 창세기/ 불편한 이방인/ 격변 대 균일/ 빙하기


8.
자연사 속의 인류사

빙하기 길들이기/ 매머드에 둘러싸인 인간/ 진화 문제/ 인류의 진화


9.
파란만장한하고 심원한 역사

주변으로 밀려난 지질학과 창세기’/ 지구의 역사에 지역 차를 반영하다/ 지질학의 세계화/ 생명의 기원을 향해서/ 지구 역사의 시간 척도


10.
세계화된 지구의 역사

지구 역사의 연대 추정/ 대륙과 대양/ 대륙 표류를 둘러싼 논쟁/ 새로운 지구적 지질구조학


11.
여러 행성 중 하나

지질연대학의 활용/ 격변의 귀환/ 머나먼 과거를 밝혀내다/ 우주 속의 지구


12.
결론

지구의 깊은 역사를 되돌아보며/ 과거의 사건과 그 원인/ 깊은 역사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지질학과 창세기 다시 보기


부록
: 심원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창조론자


용어 설명
더 읽을거리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참고 문헌
삽화 출처

추천사

이상욱(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꽃도 피지 않는 기괴한 식물이 무성하고 집채만 한 동물들이 어슬렁거리는 아주 오래된지구의 풍경을 과학자들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을까? 지구의 깊고 낯선 과거를 밝혀낸 사람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펼쳐진다

네이처

러드윅은 근대 이전의 사고방식을 노련하게 정리하면서 어떻게 자연사의 아이디어들이 문화사에 바탕을 두었는지를 능수능란하게 설명한다. 러드윅의 글을 읽으면 즐겁다.

뉴 사이언티스트

러드윅의 책은 권위 있으며 매혹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폭넓은 역사는 문·이과 독자 모두에게 흥미로울 것이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

[지구의 깊은 역사]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두루 훑으며 발견과 논쟁, 통찰과 해석의 짜릿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속으로

앞서 언급한 기원전 4004년이란 악명 높은 연도는 계몽된 이성의 진보에 저항하는 교회의 억압적 반계몽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과학Science과 종교Religion, 교회Church와 이성Reason 같은 딱지(보통 단수이고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를 붙이는 일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한다. 진짜 역사는 그렇게 추상적이지도, 깔끔하지도 않다. 사실 과학과 종교가 끊임없이 갈등한다는 고정관념은 그런 갈등의 예로 언급되는 사건들을 면밀히 연구한 역사가들에의해 폐기된지 오래됐다.

_9쪽, ‘서론’ 중에서

어셔의 증거에서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른 연대학자와 마찬가지로 성서가 아니라 고대의 세속 기록에서 끌어온 증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셔의 전거는 기원전에서도 최근에 가까운 시대에 대한 것일수록 풍부했고, 먼 과거로 가면 갈수록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초창기에 대한 자료는 매우 빈약했고, 고작해야 인류의 초기 세대에 ‘누가 누구를 낳았더라’라는 창세기의 기록이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을 보면 어셔의 주요 목표가 세계에 대해 상세한 역사를 한데 엮는 것이었지 본래부터 천지창조의 연도를 확정하거나 전반적으로 성서의 권위를 드높이려던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_29쪽, ‘1. 과학이 된 역사’ 중에서

예를 들어 그는 진기한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매우 귀중한 것으로 평가했던 다양한 모습의 아름다운 ‘암모나이트’를 두고 논쟁을 벌여야 했는데, 암모나이트는 당시 알려진 어떤 조개의 껍질과도 닮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동식물에 대해 아는 바가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화석으로만 알려진 조개일지라도 언젠가는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리라 예상하는 편이 사리에 맞다고 여겼다. 장거리 항해나 탐험이 이루어질 때면 처음 보는 새로운 형체의 물건이 유럽에 여럿 유입되었다. 후크는 그게 아니라면 마치 품종 개량으로 새로운 가축 품종이 나타나듯이 어떤 종은 시간이 흐르며 형상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이 부분에서 그의 생각은 진화에 대한 후대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_ 72쪽, ‘2. 자연 고유의 고대품’ 중에서

많은 자연사학자가 현지 조사를 수행한 주된 이유는 자신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18세기 후반 유럽의 각국 정부는 급격히 성장하는 광업에 필요한 과학 인력을 훈련하기 위해 광업 전문학교를 창설했는데, 현지 조사는 이런 시류를 반영했다(영국은 예외였다. 영국은 광업 전체를 민간사업으로 남겨두었다).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새 광물 자원을 발견하고 채굴하려면 암석의 지하 구조를 조사하여 기술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는 채석장을 새롭게 개장하고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수직 갱도를 굴착할 때 지침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상세한 3차원 조사는 새로운 광물학 분야를 낳았으니, 이 분야는 ‘지구에 대한 앎(Earth-knowledge)’을 뜻하는 ‘지구구조학(geognosy)’이라 불렸다(‘geognosy’의 어원만 놓고 보면 ‘지구학’이라 옮기는 편이 한결 어울리지만, ‘geognosy’가 현재 지구구조학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고 당시의 활동을 따져보더라도 지구구조학이란 단어가 이해에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지구구조학으로 통일해서 번역했다. - 옮긴이).

_127쪽, ‘4. 시간과 역사의 확장’ 중에서

빙하 이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던지라 앞서 지질학계가 도달한 합의를 흔들어놓았다. 지구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서서히 식어왔다고 생각한 지질학자 대다수는 물론이고, 지구가 거의 변함없이 정상 상태를 줄곧 유지해왔다고 생각한 라이엘에게도 빙하 이론은 예상 밖이었다. 지구가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았을 때 최근에 짧은 혹한기를 겪었다가 다시 따뜻해졌다는 연구 결과를 예견한 지질학자은 아무도 없었다. 빙하 이론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굳이 따지자면 격변론자들이었다. 빙하 이론은 격변론자들이 늘 강조하던 대로 지구의 과거사가 철저히 우연에 좌우되며 사후에 되짚어보더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뿌리 깊은 직관을 북돋웠기 때문이었다.

_263쪽, ‘7. 흔들리는 합의’ 중에서

다윈은 과학계에 지질학자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그는 라이엘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나중에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 비글호 항해를 할 때도 라이엘의 『원리』를 지참했다(그는 비글호의 비공식 자연사학자였으며 남아메리카 해안선의 공식 수로를 측량할 때 선장의 말벗 역할을 했지만, 육지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긴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항해 전에 세지윅에게 지질학 현지 조사에 대해 잠깐 배운 적이 있었다. 다윈은 항해에서 돌아와 지질학회의 정회원이 되었고, 약혼자에게 자신을 “지질학자인 저는”이라고 소개했으며 항해를 하면서 현장에서 목격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후 몇 년 동안 지질학 논문과 책을 저술하고 발표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와 동시에 남몰래 진화 이론을 전개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이 앞서 제시한 이론보다 상세한 증거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폭넓은 대중은 고사하고 ‘과학지식인’도 자신의 이론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_290쪽, ‘8. 자연사 속의 인류사’

출판사 서평

지구의 나이 45억 살,

누가, 언제, 어떻게 알아냈을까?

지구의 나이는 대략 몇 살일까?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워서 답을 알고 있다. 45억 살이다. 화석을 탐구하고 방사능 연대 측정을 활용해서 우리는 지구의 역사를 꽤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지구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이 책은 (서구에서) 지구의 기원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17세기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지구의 나이를 밝히는 것은 역사학자와 문헌학자, 연대학자들의 관심사였다. 지구의 나이를 문헌학을 통해 알 수 있다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게 가장 그럴듯한 접근이었다.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제임스 어셔는 여러 고전 문헌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를 계산해 지구가 기원전 4004년에 탄생했다는 결과를 내놓는데,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툭하면 조롱받는 신세가 된다. 기원전 4004년이라니, 성경이라니, 현재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봐도 비과학적인 작업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마틴 러드윅은 이를 정반대로 평가한다. 어셔 같은 17세기 역사학자들의 활동은 현대 세계에서 지구과학자들이 하는 작업과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어셔는 지구의 깊은 역사라는 현대적인 관념을 이해하기에 좋은 출발점이라고.

그 당시만 해도 지구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었지,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그것 고유의 역사를 갖는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구는 그저 인간들의 역사가 전개되는 배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이어간 역사학자, 문헌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지구과학자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지구가 지나온 시간들과 사건들의 흔적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지구의 시간을 밝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던 분야의 과학이 탄생하고 발전하며 성숙하는 모습을 그려낸 대서사시이기도 하다. 지구의 깊은 역사는 한 가지 주제를 두고 다양한 이론이 경합하며 문제를 해결해내는 과정을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며 펼쳐 보인다. 이 책의 통해 독자들은 지구과학, 더 나아가서는 과학이라는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성립되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화석의 정체, 균일과 격변 등

지구과학을 발전시킨 다양한 논쟁거리들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화석을 보면 지구의 나이가 약 6000살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은 재고할 필요가 없는 헛소리인 것 같다. 그런데 화석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했던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1670년 시칠리아에 살던 학자이자 화가인 아고스티노 실라는 시칠리아섬과 그와 인접한 이탈리아 지방에서 수집한 조개껍질을 설명하는 책을 펴냈다. 그는 그 물건들이 한때 정말로 살아 있던 조개의 껍질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은 조개 모양의 화석이 유기물과 단순한 유사성을 지닌 대상이라고 여겼다. 형태상 유기물과 유사한 무기물도 있지만, 유사한 형태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유기체에서 유래했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결과적으로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살아 있는 유기체로부터 화석이 형성되었다는 합의에 다다른다. 화석의 존재는 다양한 사실을 시사하는데, 예컨대 지금은 사막인 지역이 예전에는 바다였다거나, 지금은 살아 있지 않은 생물이 예전에 살았을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균일과 격변에 관한 논쟁도 흥미롭다. 지질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찰스 라이엘은 일종의 정상 상태 이론을 옹호했다. 그 이유는 그가 현 원인, 즉 현재의 지질 작용이 아득히 긴 시간 동안 작용한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지금 작용하는 원인을 제외한 어떠한 원인도 과거에 작용한 바 없다는 원리를 내세우고, 이 원칙에 따라 지질학을 구성할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지구의 역사에서는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경향도, 이례적인 격변도 없다. 반대로 격변론자는 지구와 생명의 역사에 자신들이 혁명이나 격변이라 부르는 갑작스러운 자연현상이 개입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 두 주장은 언뜻 보면 격렬하게 대립하는 듯하지만, 모두 현재론이라고 불리는, 즉 현재를 통해 과거를 이해하려는 신조를 다른 방식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현재의 작용이 현재의 강도로 일어났을 때 먼 과거에 있던 모든 일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서만 차이가 있었다.

이 책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이런 논쟁과 입장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는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떠한 결정적인 발견이 곧바로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참 지나고 나서는 그 발견의 의미가 명확해지지만, 그 당시에 발견 자체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론과 입장이 경합하고 서로를 보완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 때로는 예전에 폐기되었던 이론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하나의 과학이 생겨나고 성숙하는 모습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겨냥하다

과학의 발전과 관련되어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점은, 반이성적이고 반계몽적인 종교의 도그마들을 과학이라는 합리적인 활동이 대체해간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지구가 기원전 4004년에 시작되었다는 최초의 추론이 대표적이다. 과거의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이라는 도그마에 갇혀 사변적인 추론만 내세웠지만, 과학자들은 면밀한 관찰과 논리적인 추론을 수행하면서 과학을 만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러드윅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 이성과 교회가 대립했다는 딱지를 붙이는 데는 주의해야 한다. 진짜 역사는 그렇게 추상적이지도, 깔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단 어셔가 기원전 4004년이라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을 때는, 다른 방식으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려고 시도할 수가 없었다. 어셔는 연대기적인 방식으로, 마치 인간들의 역사에서처럼 지구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역사적인 순서를 부여하려고 했는데 후대 과학자들이 이런 방식을 차용해서 지층의 순서를 따져가며 지구에 역사성을 부어했다.

그리고 당시 서구 학계의 구성을 봤을 때 지구과학이나 지질학을 연구하던 최초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은 과학적인 탐구 활동을 할 때 자신들의 활동이 성서가 제시하는 기록과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폐기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성서를 계시를 전하는 저작으로 보았으며, 성서의 글자 하나하나가 사실에 대응한다고 보는 축자주의적 입장이 종교계나 학계 내에서 주류를 차지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성서 축자주의자 또는 근본주의자가 종교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들이 이 같은 정치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과 맥락이 존재하는데, 이 책에서는 부록에서 이 창조론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 성서 근본주의라는 촌극이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지구에 역사성을 부여한 발상인데 이 점에서는 종교와 과학이 명확하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세계관이나 흐름이 교차하고 경합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이론과 이론, 관점과 관점의 경쟁이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중심으로 볼 수 없다. 이 핵심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 지구의 역사에 관한 논의를 더욱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지구과학 역사의 결정판

이 책의 저자인 러드윅은 오랜 시간 지구과학의 역사를 연구해온 원로 학자다. 처음에 과학자로서 학계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1953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고생물학자로서 완족동물 화석을 주로 연구했으며, 화석의 형태로부터 유기체의 기능을 추론하는 기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7년부터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로 자리를 옮겨 꾸준히 지구과학의 역사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고, 유럽과 미국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지구과학의 역사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지속했다. 지구과학사에 대한 오랜 탐구의 결실은 이 책에 아낌없이 담겨 있다. 가령 지구의 깊은 역사5장과 6장은 러드윅이 각각 2005년과 2008년 출간한 같은 제목의 저작을 요령껏 정리하는 부분이다(두 책의 분량은 708, 614쪽에 달한다). 또한 과학계에 몸담은 경험을 토대로 일찍부터 과학의 시각 문화에 주목해온 학자답게, 이 책에서도 많은 도표와 그림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은 지구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지구과학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지구과학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역사학과 문헌학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며, 다양한 학문이 교차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다른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지구과학은 엄청나게 다학제적인 분야다. 이 책에서는 지질학의 라이엘, 진화론의 다윈, 방사능 연대 측정의 퀴리, 대륙이동설의 베게너 등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와 업적이 비중 있게 소개되는데 그들의 이론이 어떻게 과학계의 승인을 받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주된 요소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정설이 된 이론들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했다는 이유에서 기독교인들의 저항에 부딪혔고,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은 당시 학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미국인이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미국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과학은 과학이 아닌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사보다는 지성사라는 범주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뉴 사이언티스트의 서평처럼 문과와 이과 모두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