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 박사님은 칭기즈칸이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한 테무진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연결한 대칸이었습니다.



키르키즈 이후 360여년간 무주공산이던분열되어있던 몽골초원을 규합한 보르지긴의 영웅처럼 일상과 인공물에 치여 산만하고 얕아져 있던 우리의 정신을 모아 진지한 욕망과 경이와 학습의 세계로 대원들을 밀어붙이셨습니다.



별과 돌과 역사로 이루어진 이번 학습탐사는 밤하늘을 볼 때는 우리의 진정한 기원이 어디인가를 문학적 묘사가 아닌 과학의 엄밀한 수식으로 풀어내셨습니다지평선이 보이는 반구에 가까운 공간에서 은하수마저 선명한 천문을 마주할 때의 압도적인 느낌은 도시에서 자란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장엄함을 안겨주었습니다.



황도의 개념과 1등성의 위치를 기준으로 풀어나가는 천문학 이야기는 우주를 완상(玩賞)의 대상이 아닌 탐구의 대상으로 만들어주셨고 한 가지 발견을 더하기 위해 인생을 바친 선배 과학자들의 노고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대 과학의 발전속도를 느끼며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와 미래까지 건강해야겠다는 겸허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어쩌면 우주에 생명이 우리밖에 없을 수 있다는십수년 안에 밝혀질 외계생명 존재여부에 대한 천문학 프론티어 소개는나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던 안드로메다 은하와 겹쳐져강의가 끝나고도 여운에 젖어 초원을 배회하며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안드로메다 갤럭시가 저기 있었는데우리는 삼성 갤럭시만 보고 살아온 건 아닌지우주에 지성이 우리밖에 없다면우리의 책임은 무엇인지홀로세 이후 기적적으로 일정했던 기후 여건 속에 5000년간 꽃피운 우리의 문명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남아야 할지뜨거운 감동과 욕망과 숙제를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박사님이 세상을 보는 시야는 지질시대와 세계사연표를 오갔습니다고비사막이 실루리아기-석탄기 때 바다였다는 사실과 알타이 산맥에서 유래했을 몽골리안 인종의 기원에 대한 상상력을 오가는 데 거리낌이 없으셨습니다.



암석 하나에서 수많은 지질학적 사건과 분자식을 끌어내셨고이는 인문학으로는 느끼지 못할 깊은 층위의 시간을 상상하게 이끌었습니다박물관에서 본 공룡은 우리 선조 포유류의 형질을 디자인하였고 몽골 초원을 날아다니는 매는 공룡의 후손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초원에 설치한 화이트보드 앞에서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대본없이 즉흥적으로 펼쳐내는 강의의 콘텐츠는 복잡한 마인드맵을 그려냈지만어김없이 본류로 돌아와 의도하신 진도와 분량을 마쳐내셨습니다우리의 호응 속에 박사님이 창의적인 표현을 만들어내기도 하셨고대원들은 완벽하지 않은 환경에서 지식을 스케치해가며어느때보다 건실하게 기억을 훈련했습니다.



저도 나름 책을 좋아한다고 자부해왔는데이번 탐사기간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은 ‘암기' ‘독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암기'는 별도로 훈련해야 할 브레인의 독립된 기능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읽은 지식들은 구슬처럼 흩어져 있었고참고자료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어쩌면 한번도 작동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스마트폰을 보지 않고버스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날로그 환경에서지질시대와 중국사 연대표를 외우는 게 쉽지 않았고 고통스러웠고 답답했습니다며칠을 매달린 결과 장기기억에 각인된 숫자가 몇 개씩 생기기 시작했고 비로소 저는 약간의 자유와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이 훈련은 기억을 경시하고 외주(外注주고 있던 저에게 브레인의 힘과 야성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복잡하다며혹은 익숙하지 않다며 두루뭉술 넘기고 하는 516국 시대와 중앙아시아 유목민 역사와 티베트 불교를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빈 구멍이 많은 퍼즐을 맞춰주는 중요한 조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박사님께서 학습탐사의 목적은 앞으로 수년간 지속할 학습에 대한 욕망과 키워드를 얻어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몽골에서 필기해온 노트와 수첩을 복기하며 저는 걷잡을 수 없는 내면의 불꽃을 느낍니다강희제의 준가르 원정과 앤드류스의 고생물학 탐사에 비교하면 저는 너무도 편하게 고비사막에서 결실을 얻어갑니다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탐사를 조직해주신 박사님감사드립니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보다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저는 몽골의 풍경에 대해서 일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저는 이번 경험을 몽골여행이 아니라 박문호 박사님과 함께 한 학습탐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몽골의 사막과 초원과 하늘과 유물의 멋진 풍경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박사님의 열정적인 강연과 과제(!)였습니다기억이 감정과 링크되어 있다면박사님이 진정으로 신나하시고 감동받아 하시던 그 감정이 저의 기억을 움직였습니다사색에 잠겨계시는 모습끊임없이 암기훈련을 하시던 치열함새로운 지식의 네트워크를 발견하실 때 기뻐하던 표정을 본 것이 저에게는 큰 소득이었습니다.



2008년부터 ‘뇌 생각의 출현책을 구입하고 가슴에 품고 있던 대학생은 2023년이 되어서야 경제적시간적 여건이 성숙되어 박사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박사님의 강연을 온몸으로 접하고박사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910일은 저에게는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행동과 실천과 성실한 공부에서 뿜어져 나온 조언과 힌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본인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나눠주시며 과학운동을 추진하시는 깊은 뜻을 감히 짐작해보기에이번 탐사 때 얻은 관성이 일상에 의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다스려보겠습니다.



저희 학습탐사팀은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안드로메다 은하를 눈으로 볼 수 있었고게르에서 자보기도 했으며고비사막에서 비를 맞기도 했습니다몽골의 속담이 맞다면 앞으로 3년은 재수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사람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부지런함과 순발력으로 저희의 끼니를 챙겨주시고 학습탐사가 부드럽게 굴러가도록 해주신 지혜로운 황해숙 이사님식사관리를 비롯 친절을 베풀어주신 정덕선 선생님유머와 모범으로 저희가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희생봉사해주신 정종실 선생님정점삼 선생님박경택 선생님 감사드립니다저희를 잘 촬영해주시고귀국 후에 더욱 바쁘실 월말PD카메라 감독님과 사진 봉사해주신 선생님들 감사드립니다캠핑을 통해 전쟁기계가 되어 세계를 정복한 몽골족처럼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며 학습기계(!)가 되었던 저희 탐사대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한 분 한 분 대단한 분이실텐데 학습에 몰두하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것 같아 죄송합니다또 좋은 인연으로 뵐 날을 기대해봅니다.



과거시험만 30시간씩 보며 치열하게 암기교육했던 남송시절중국의 경제력과 창의력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책상에 앉아 공부하다 피를 쏟은 강희제는 강건치세의 서막을 열었습니다이번 학습탐사는 기억훈련의 가치와 힘을 실존으로 깨닫게 해준 디지털 디톡스 캠프였습니다. (체중도 1.5kg 빠졌습니다!)



청나라의 과학기술은 자금성 벽을 넘지 못해 시계밖에 만들지 못했고서태후는 음양론에 근거하여 전기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의화단의 주먹으로 서양열강의 총과 싸우려 했습니다옹정제는 견문이 좁으면 판단이 틀린다고 했습니다의견이 아니라 숫자와 Data로 술이부작(述而不作)하자는 과학문화운동의 동기를 이번 탐사를 통해 느꼈습니다.



박사님은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 일류의 조건의 핵심으로

1.요약의 힘, 2.훔치는 힘, 3.추진력을 꼽으셨습니다.



훔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욕망을 가져야합니다저는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았습니다하지만 누구로부터 훔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쁩니다



또 이런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박사님의 ‘추진력'에 존경을 표합니다개인적인 지적 만족감을 넘어서 과학문화운동을 수십년 지속해오신 박사님이야말로 일류이십니다이 운동의 새로운 챕터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외부의 우연을 내부의 필연으로 만들수 있도록모으고모순을 견디고밀어붙이겠습니다



뇌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풍경화를 그리는 것.

 

일생 동안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있지 않은 느낌과 감정과 생각들

의식의 다층적이고 복잡 미묘함이

투명한 가을 하늘처럼

스스로 환해질 수는 없을까.

 

감정과 운동을 살펴본다는 것은

선조들의 35억 년간

당혹과 좌절과 한숨을 헤아려보는 것.

 

생각의 구조와 작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회와 문화라는 틀 속에서

전체와 부분을 반복적으로 살펴보는 것.

 

언젠가는

흐릿한 윤곽들이 스스로

뚜렷한 색감과 전체의 울림으로 드러나는

풍경화가 될 때까지

 

뇌가 그리는 생각의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을 때까지

 

생각을생각하기를 멈추지 말 것.

 

-박문호 박사님뇌 생각의 출현. p.482-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