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독성을 위해 높임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박문호 박사님 - 유럽사 현장 특강 ]

August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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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싫어한다.

싫어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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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어 단어의 철자와 뜻을 딱 한 번만 읽어보자.

[ Semantic : 의미의 ]


그리고 정확히 암기해야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글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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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1. 나는 싫어하는 것을 절대 안 하려는 고집이 있다.

- 정말 퍽퍽하고 나쁜 사람이지 않은가?


2.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꼭 하려는 고집이 있다.

- 정말 이기적이고 피곤한 사람이지 않은가?


고집은 그렇다.

본능적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에너지이다.

그리고 끈기의 재료로 쓰인다.


'고집 (固執)'

: 한번 정한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고 굳게 내세워 우기는 것. 또는, 그 우기는 성미. 견집(堅執)

- 출처: Oxford Languages



어제 양재동 훈련 센터에서 진행된 박문호 박사님의 '유럽사 현장 특강'에 참석하였다.

하루종일 [연도(숫자) : 문자]로 구성된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따라 그렸다.

내가 역사를 싫어하기 때문에, 난생 처음 듣는 것이 많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조금 넘게까지 진행된 강의는, 고집이 센 나에게 어려운 마라톤이었다.


-- 여기서 잠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야한다.

나는 초등학생때부터 기면병(嗜眠病, narcolepsy)을 앓고 있다.

깨어있을 때에 갑작스럽게 졸음 발작이 일어나며, 렘수면의 과도한 난입에서 비롯된 여러 증상

이 나타난다.

질환을 앓은지는 오래 되었으나, 개인사정으로 진단은 몇 년 전인 20대 후반에 받았다.

이때부터 매일 아침, 저녁마다 증상을 조절하는 약을 먹고있다.


나는 초, 중 , 고, 대학생 시절 동안 깨어 있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출결은 엉망이고, 모든 시험은 대부분 졸았으며, 과제 역시 대부분 수행하지 못했다. 

가끔 컨디션이 좋아 깨어있는 상태도 있었는데, 30분 정도 유지되었다.

이렇게 쌓인 '몇 번의 30분'이 내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의 전부다. 


어제 역시 아침, 점심에 복용한 각성제 덕분에 강의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서두에 적은 나의 두 가지 고집은, 내 의지가 담긴 것이기 이전에 나의 생존 본능이다.

저것이 없었다면 나는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



곁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어제의 현장으로 돌아오겠다.

내가 강의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있는 소감은, 다음같은 단어의 나열 뿐이다.

[독일, 프랑스, 로마, 라인 강, 기독교, Pal, 마리아 테레지아, 378, 1242, …]


이런 소감이라니 실망감이 들 것 같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을듯해, 개인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거쳐가며 읽어 내려오지 않았는가.

서두에 적은 단어 'Semantic'을 기억하는가?

이 글은 강의 중이 아닌, 강의 후에 일어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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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의를 들으며, 역사 정보 외의 부분을 기록한 필기 일부이다.

내가 보기 편하고 기억하기 쉽게 바꾸어 기록한 것이 많다.

그렇기에 박사님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되지 않는 표현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기억이 잘 되는 것]

(1) 비정형 순서

(2) 부정적 의미일수록, 어색한 구조일수록

(3) 비정형화 정보가 → 시간을 들여, 개인의 감각을 거칠 때

(4) 수고로울 때 (특히,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순간)


[기억이 되는 조건]

(1) 선(先) node 필요

(2) node group 과의 교집합

(3) 기억될때까지 교집합을 반복 시도 (= 훈련)


[Semantic map of the brain; 뇌의 의미 지도] (영상 시청)

(1) The brain dictionary

- 영상 (유튜브) : https://youtu.be/k61nJkx5aDQ?feature=shared

: 3분, 음성(영어), 자막(영어, 한국어 등)

- 논문 (Nature) :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7637

(2) 차원끼리의 결합 → 기억의 입체화

(3) 뇌 의미 지도의 '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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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mantic map (의미 지도)

: 뇌의 특정 영역들이 특정 의미, 개념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방식을 시각화한 것.

- 간단하게는, 수많은 단어들이 각각 뇌의 어떤 부위에 저장되는지를 그려놓은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 단어는 뇌의 모든 영역에 저장된다. 

(2) 저장되는 위치, 단어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제 초반부터 언급해 온 'Semantic' 이라는 단어를 열어보겠다.

 

나는 어제 집에 돌아온 후, 강의 중에 시청한 'brain dictionary' 영상을 찾아서 다시 보았다. 

그리고 'Semantic'의 어원이 궁금해 찾아보았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 [ σημαντικός ] (sēmantikós) 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것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 sēma ] (σῆμα) : '표시, 징표, 신호'

'표시'가 왜 '의미'라는 뜻으로 연결되었는지 궁금하여, 당대의 쓰임새를 중점으로 찾아보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sēma'를 무덤의 비석, 표식, 표지판 같은 물리적 표지로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머릿속 어딘가에 'semantic'이라는 점이 찍히고, 또 바로 옆에 'sēma'라는 점이 콕 찍히는 모습의 상상이 일어났다.


이것들은 글자의 형태로 연결되었지만, 그림의 형태로 떠올려지지 않아 상상은 멈춰졌다.

보일듯 말듯 희미해서 답답했다.

그래서 실제 사례, 그림, 발견된 유물 사진 등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거나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시각 자료는 희귀했으며, 해석하기 어려웠고,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도 어려웠다.

- 나는 시각 자료의 귀중함을 이때 처음 느낀 것 같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 태어나 살며, 귀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왜 박물관과 현장에 직접 찾아가고, 감동을 받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

나는 글로 설명된 자료를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머릿속 그림으로 변환시키면서 읽었다.


*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의 sēma : 생존, 질서, 의미 전달의 필수 장치 

(1) 군사: 전투 중 깃발, 횃불, 연기 신호

- 목소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병력에게 표식을 통해 명령을 전달.

(2) 항해: 해안의 탑, 불빛, 바위 표식

- 고대 항해자들이 특이한 바위 모양, 불빛을 이용하여 안전과 위험을 구별.

(3) 종교: 신전 기호, 제물 배치

- 신전 앞 상징물, 특정 제물 배열 (예언자, 사제가 해석)

(4) 묘지: 비석, 조각상

- 사자의 이름, 업적, 가문을 새겨 죽은 자를 기림

(5) 스포츠: 경기장의 표식 기둥

- 전차경기 또는 달리기에서 결승점이나 회전점을 표시하는 기둥. 규칙과 승패 판정에 필수.

(6) 언어: 단어, 상징, 부호

- 말소리(음성) 또는 문자 자체가 '생각을 나타내는 징표' → 이후 의미론의 기반이 됨 



이후 나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채로 잠이 들었다.


깨어있을 때의 기억과 경험이 꿈에서 여러 형태로 되풀이되는 현상을 대부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하루종일 보고 들었던 정보들, 이전의 실제 경험들, 이전의 꿈들(허상)이 섞여 다시 꿈이 된다.


특히 기면병은 현실과 혼동될 정도로 강렬하고 생생한 꿈을 꾸게 한다.

교묘하게 조합되어, 꿈을 꾸고 일어나면 마치 하루를 더 산 것처럼 느껴진다.


걸었던 길, 실제로 보고 들었던 강의, 점심으로 먹었던 김밥, 잠깐 잠들었던 휴식시간에 꿨던 꿈, 만난 사람들, 나누었던 대화들이 꿈에서 재현되었다. 

박사님께서 칠판에 그리며 설명하셨던 것들이 다시 꿈에서 재생되었고, 내가 주의깊게 보았던 글자와 이미지는 특히 강조된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는 꿈 답게 매우 비현실적이었다.

황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숫자와 함께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고, 마치 디오라마처럼 손으로 흙과 물을 뭉쳐 유럽 지형을 빚어 보았으며, 검정 옷을 입은 남자가 너무나 구슬프게 울길래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찾아보았던 'sēma'와 관련된 내용들이 영화처럼 각색되어 재생되었고, 나 역시 그 현장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감동을 받았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잠을 잔다. 또 일어났을 때, 꿈을 거의 기억한다.

아마 내가 겪는 거의 모든 것들이 꿈과 한 번 이상 결합되어 존재할 것이다.

때문에 오류와 허상이 섞일 가능성이 높아서, 정확한 정보를 얻고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꿈의 기억은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오늘도 나는 일어나자마자 마구 침입하며 떠오르는 꿈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현대에 '표시'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고대의 '표시'를 뜻하던 단어가 '의미'를 뜻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그 답은 기호학의 시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형태와 내용을 구분해야 하는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정말 박사님 말씀처럼 역사 또한 자연과학과 비슷한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분명 어제와 오늘 내가 느낀 쾌감은, 자연과학에서의 것과 같았다.

역사에도 인과관계와 변수가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비선형적인 자연의 정보를 어떻게 사용가능한 형태의 정보로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훔쳐보고 싶은 과학자의 노트> (마이클 R. 캔필드 저) 라는 책이 있다.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를 정리했는지 참고하면, 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읽었다.

도움은 되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은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만든 수많은 기호와 부호가 두려워 애써 무시한 채, 나에게 편한 방식만 고수하려 했다.


심지어 어제 박문호 박사님께 질문을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 어리석은 질문을 생각하며, 혼자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내가 하루종일 하였던 것이 대체 무엇인가?

손으로 선과 점, 문자를 열심히 그렸던 것이 생각났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이미 존재했던 것을 나는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했다.  

내 것만 들여다보고 심취하여, 다른 것을 사랑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비참한 일인 것 같다.


이런 말들이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 :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 주장에 맞추는 것

'혹세무민(惑世誣民)' : 어리석은 짓으로 백성을 현혹시키고 속이는 것

'곡학아세(曲學阿世)' : 학문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부하는 것


이 글에 한자를 여러 번 썼는데, 내가 한자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사용했다.

모르는 것을 일부러 기꺼이 시도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시도해보기로 했다.


나는 견강부회, 혹세무민, 곡학아세와 같은 말들을 마음으로 읽으며 생각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