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박박사님 책 추천 영상 중 특별한 강조를 하는 일부 책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와 인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공부를 하는 중간 단계로 인간의 의식에 관한 책을 추천할 때 이런 강조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랜 역사적 시도 끝에 현대의 과학 발전이 드디어 의식을 과학의 전면에서 파헤치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일반인도 흥미롭게 지켜볼 수준이 된 것 같습니다.
몇 년에 걸쳐 추천 책을 읽다 보니 의식에 관한 이론이 흥미롭게 겹치기도 하고
서로 비판도 하는 몇 가지 시도들이 보여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다룰 책 목록은,
크리스토프 코흐의 《생명 그 자체의 감각》
《의식의 탄생》 (이 책은 오기 오거스 등의 책이지만 이론 기반은 그로스버그의 ART 이론)
니컬러스 험프리의 《센티언스》
여기에 코흐가 지지하는 줄리오 토노니의 IIT 이론.
토노니의 스승이자 원류가 되는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두 학자가 같이 쓴 《뇌의식의 우주》.
개인적으로 도서관에서 만난 저드슨 브루어의 《중독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박사님의 강의 중 'Hard problem'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신선했는데,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와 대니얼 데닛이 이 문제로 날 선 학문적 토론을 하고 있더군요.
물질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해도 그게 정신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의식의 qualia를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차머스와, 물질적 차원의 의식 체계를 발전시킨 생물은 자연스럽게 의식이란 것을 갖게 될 것이지 주관적 퀄리아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닛의 주장.
여기서 차머스가 주장하는 것이 '철학적 좀비'인데, 모든 것이 인간과 같은데 주관적 의식이 쏙 빠진 상태의 철학적 존재가 존재하는 것을 자연과 진화가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철학적 좀비는 물질만으로 의식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물리주의 혹은 물질주의라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있나 봅니다만 여기까지 제가 모르는 상태)에 결정적 질문을 던집니다.
"단순한 물리적 자극-반응의 계산만으로는 느낌(퀄리아)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그 주선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뇌과학과 수학을 들고나온 것이 IIT(통합정보이론)의 줄리오 토노니입니다.
앨런 뇌과학 연구소 소장 크리스토프 코흐가 이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입장이며, 이를 기반으로 쓴 책이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이더군요.
일단 IIT 이론을 살펴보기전에 개인적으로 이 의식 연구의 흐름이 제게 흥미를 유발한 계기는 학문의 내용보다 그 연구자들, 즉 사람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이 에피소드가 의식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것으로 연결되는 줄 꿈에도 몰랐죠.)
코흐는 전설적인 DNA 발견자 크릭과 같이 오래 뇌과학 연구를 해왔고.
유전학의 크릭이 왜 여기서 등장하지 하는 의문 섞인 첫 인지는 박박사님이 그렇게 강조하던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에서입니다.
제게는 뜬금없이 에델만이 크릭을 소위 저격(학문적)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너무 놀랐습니다. 144~145페이지쯤에 에델만의 뉴런 집단선택 이론(The Theory of Neuronal Group Selection)에서 뉴런 집단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는 크릭이 등장합니다. 에델만은 그 후 조목조목 반박하고요.
배경지식도 없이 추천 책이기에 무턱대고 잡은 에델만과 뇌신경과학 책에서 낯익은 크릭이란 이름이 등장하기에 '어, 이거 내가 알던 그 크릭은 아니겠지' 하고 찾아보니 놀랍게 DNA의 그 크릭이 맞더군요. 그때 아마 지성사의 거대한 흐름이 있다는 것을 제 무의식이 눈치챈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에델만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박사님 강의 중 들어서 알았지만 그게 무슨 노벨상인지는 특별히 관심도 없이 책을 읽다 보니 놀랍게도 면역학에서 안티바디의 구조를 밝혀서 노벨상을 받았더군요.
아니, 면역학 항체 구조를 밝힌 양반이 왜 갑자기 뇌신경과학이야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작년 25년도 노벨의학상 Treg Cell 수상에 자극을 받아 면역학을 공부를 시작해보니...
에델만이 안티바디의 구조를 밝혔고 이때 에델만은 '생명은 같은 구조와 방식을 여러 장기에서 활용하는 것은 아닐까' 거대한 흐름을 인식하고, 뇌에서도 면역계의 항체를 만드는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적용한 것이 뉴런 집단선택 이론(TNGS)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핵심은 안티바디의 가변부 VDJ 조합인데, 물론 이것은 후에 도네가와 스스무 박사가 밝혀서 노벨상을 받지만 에델만은 당시 어렴풋하게 이런 원리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학문적 복잡성을 다 전달할 수 없기에 고등학교 교육까지 (잘못된 원리로) 가르치고 배우는 항체 가변부의 조합이,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배우듯 "항원의 단백질이 들어오고 그중의 일부 조각을 모델링해 그에 상응하는 항체 결합 부위를 만든다"가 아니라.
가변부 VDJ 조합에서 잘랐다 붙일 때 은근슬쩍 상응하는 염기서열도 없는 근본 없는 조각을 스윽 집어넣어 우주적인 다양성의 조합을 만들어 항체 모델을 만들고, 우연히 외부 항원이 거기에 합당하는 녀석이 걸리면 그 항체가 선택돼 무한 클론 증식을 하는 게 B세포 항체의 학문적, 자연적 진실이라는 사실.
정말 놀라운 얘기입니다.
이 부분은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면역계는 자연의 무수한 가능성에 생명이 대처를 하는 통계적 경계면, 즉 마코프 블랑켓이고 이는 변이성을 통해 자유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칼 프리스턴의 이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뇌가 베이지안 이론에 의해서 움직린다고 대체로 학계가 인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결과인 듯합니다.
그 면역계와 뇌의 관계를 어렴풋이 눈치챈 것이 에델만이 면역학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후 뇌신경과학으로 학문의 방향성을 잡은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이하는 본래 의도였던 의식의 문제와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만 별도의 글로 분리하기 힘들어 연속합니다. 저 책들과 의식 문제에 한해서는 건너뛰어도 좋을 부분입니다.)
그런데 저 항체의 가변부 VDJ 유전자 조합은,RAG 효소와 RSS 표지판 서열을 이용해 DNA를 물리적으로 잘라내어 조합(VDJ)하고,
그 결합 부위에 TdT 효소 등으로 무작위 에러를 주입하여, 단 몇 개의 유전자 조각으로 무한대에 가까운 항체 레파토리를 스스로 찍어내는 정교한 유전체 편집 시스템임을 도네가와 스스무 박사가 밝혔습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본다면 VDJ 유전자 조합을 할 때 그 위치에 특수한 표지판이 붙는데, 12/23이란 규칙을 지키며 V가 V끼리 붙거나 D를 건너뛰고 V와 J가 바로 붙는 오류 없이 정확히 V-D-J 순서로만 조합이 일어납니다.
이 표지판을 단 DNA를 구부려 가까이 위치시키고 RAG-1, RAG-2 효소 복합체(Recombination-Activating Gene)가 정확한 위치를 절단하며 필요 없는 유전자는 삭제하고 다양한 조합을 만듭니다.
비슷한 과정이 RNA 스프라이싱인데 기존의 도그마에서는 DNA는 이런 과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무 박사가 이걸 뒤집은 거죠.
DNA도 재조합이 일어난다.
이후 절단된 DNA는 복구 메커니즘인 비상동 말단 연결(NHEJ, Non-Homologous End Joining) 과정을 통해 다시 하나의 연속된 DNA 선으로 연결됩니다. 이로써 완벽하게 재배열된 새로운 가변부 유전자가 탄생합니다.
여기서 또 놀라운 사실은 저 RAG 효소가 하는 일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해 생각해보니 어쩐지 크리스퍼 가위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군요.
RSS 표지판의 서열은 고대 생물의 DNA에서 발견되는 점핑 유전자인 Transib 계열의 트랜스포존의 유전자 서열과 상동성을 보입니다.
점핑 유전자(DNA 트랜스포존)는 또 생물학계에서 놀라운 발견 중 하나인데 어떤 조작도 없이 스스로 이동하며 다른 유전자에 삽입되는 유전자로 학계서 인정받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크리스퍼 가위 연구에서 등장한 장펑 교수가 이와 관련해 연구 추적 중이며, 고대 유악류 출현 시 DNA 트랜스포존(특히 Transib superfamily 계열)이 RAG 유전자를 삽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박테리아의 크리스퍼 가위 기전 말고도 생명은 여러 형태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과거의 인류가 알고 있던 'DNA는 변하지 않는다'는 도그마와 달리, 유전자를 스스로 변형시키는 기전을 통해 바이러스도 대응하고 항체라는 적적응면역계도 만들어 외부 환경의 다양성에 적응한 거죠.
생명계의 작동 방식이 결정론(a바이러스에 a항체를 만든다)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확률론(일단 만들 수 있는 무한대의 항체 가변부를 가진 조합을 점핑 유전자에서 유래한 효소를 이용해 조합해 만들고 그중에 외부 인자와 반응하는 확률을 클론 증식한다)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놀라운 이야기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적인 양자역학의 작동 방식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다시 IIT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델만이 다른 번역서를 찾아 읽다 보니 《뇌의식의 우주》라는 책이 있는데 공동저자로 줄리오 토노니가 등장해 '아, 그냥 제자쯤 되나 보다' 싶어 흘려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IIT 이론을 만든 사람이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 사람이 이 이론을 만들게 되었나 살펴보니,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책에 잠깐 등장하는 장면으로 에델만이 자신의 이론인 TNGS를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적극적으로 회사까지 설립했더군요.
아니, 뇌신경과학자가 로봇회사까지 설립했다고?
그러면 지금의 인공지능과 로봇 붐 훨씬 이전에 있던 회사인데 어찌 됐을까 궁금해서 조금 더 정보를 찾아보니, '다윈'과 '노마드'라는 신경다원주의 이론을 적용한 로봇을 생산하기도 했으나 그 후 인공지능 시장의 트렌드가 딥러닝으로 전환되면서 급속히 주류에서 밀려났더군요.
그런데 바로 그 다윈과 노마드의 신경학적 움직임의 원리를 수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그때 에델만 밑에서 박사학위를 하던 토노니였습니다. 그 후 독자적으로 토노니는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켜 IIT(통합정보이론)를 발표하며 에델만과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됩니다.
이를 접한 크리스토퍼 코흐가 적극적인 지지자며 전도사 역할을 하기로 자처하고 나섭니다.
코흐는 의식 이론에 있어서 클라우스트럼(Claustrum, 담장핵)이 의식에 있어 핵심 지휘자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크릭과 함께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와 더불어 핵심적으로 통합정보이론을 강력하게 의식이 만들어지는 기전으로 주장하고 있고요.
IIT는 의식을 뇌의 물리적 구조가 정보를 얼마나 통합하고 있는가로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론은 먼저 의식의 5가지 필수 속성을 공리로 지정합니다. (내재적 존재, 구성, 정보, 통합, 배제) 이 속성을 전제로 뇌의 의식 상태를 수학적으로 표현해 계량화합니다.
제가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내재적 존재'를 어떻게 수학적으로 증명했는가를 살펴보면, 시스템의 현재 상태가 직전, 직후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조건부 확률 분포로 정의할 때 이 확률 분포가 평평하지 않고 특정 값으로 수렴하면 시스템은 스스로 인과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수학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쉽게 말하면 동전을 던져 앞면 뒷면이 나올 확률이 0.5로 동일하면 이는 확률 분포상 평평하며 이는 서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자석을 넣고 바닥에 철판을 깔고 많은 횟수를 던지면 몇 번은 반대쪽이 나오겠지만 대체로 자석의 영향으로 같은 쪽이 나오고 확률은 0.99 정도로 수렴할 것입니다. 이는 자석의 작동이 사건의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수학적 증명이 됩니다.
이걸 어떻게 뇌에 적용하냐면 신경세포 자극을 주고 주변 신경세포가 흥분하는가 안 하는가를 일일이 체크해 수학적 확률 분포로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IIT는 자신이 정의한 공리를 인류가 인정하는 수학적 여러 이론을 통해 뇌의 하드웨어에 적용합니다. 이하 이론의 수학적 적용은 사실 저도 깊이 공부를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의식의 과학적 이야기에서 의미가 있냐면, 이 이론을 적용해 식물인간의 의식 유무를 판단하는 임상에서 강력한 지표로 이용되고 있답니다.
PCI (Perturbational Complexity Index).
식물인간의 경두개를 자기자극(TMS)하고 고밀도 두피 뇌전도(EEG)로 측정해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Lempel-Ziv 알고리즘 방식)에 적용해 그 복잡성을 수치화합니다. 반응의 소실 또는 국소화는 식물인간 상태, 깊은 마취, 서파 수면 상태. 자극을 준 부위에서 신호가 대뇌피질의 여러 연합 영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복잡하게 뻗어나가면 정상 의식 상태나, 표현을 못 하는 감금 증후군, 혹은 일부 최소 의식 상태라고 봅니다.
임상 연구에서 PCI는 의식이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의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약 0.31이라는 수치를 제시합니다. 이 수치는 시스템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통합된 정보의 양을 나타내는 IIT의 핵심 지표인 파이값을 임상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이론은 임상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뇌의식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을 극단으로 밀어 올리면 전선 몇 개로 이루어진 트랜지스터 등 전기회로 연결도 희미한 의식을 갖게 된다는 범신론(범심론)으로 이어지는 본질적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2023년 대니얼 데닛 등은 IIT를 정식으로 "유사과학"이라고 학회에서 선언해 버립니다.
전문적인 학자들 간에는 첨예한 논쟁이 당연하겠지만 인간의 의식이라는 학문화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수학적 공리를 통해 학문의 표면까지 끌어올렸고, 그게 상아탑 수준에서 논의되는 수준이 아니라 임상의사들의 식물인간의 의식 판단 유무에 엄청나게 실무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실용성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져서 코흐와 관련해서는 박박사님의 책 소개에서 처음 들은 인물인데, 향후에 공부하면서 여러 관련 영상을 찾아보던 중 2011년에 EBS 다큐에서 뇌를 다루는 6부작 다큐가 있었는데 지금 공부하는 뇌나 신경과학의 쟁쟁한 거두들이 대거 등장해서 (대니얼 데닛, 커넥톰을 최초로 주장한 승현준 박사까지)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코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정말 충격적이게도 60은 넘어 보이는 노신사가 붉은색 달라붙는 바지에 열대 무늬 패턴의 휴양지에서나 볼 법한 남방을 입고 머리에 염색을 하고 나와서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독특한 외모는 학계에서 이단아로 유명한 얘기더군요.
범신론에 가까운 IIT를 주장하는 학자답게 제가 보기엔 무당이나 연예인 히피나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주 보여주는 예술가들의 풍모가 그 옷차림에 대변된다고 느껴지더군요.
역시 외향은 그 사람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IIT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그 시스템이 내재적으로 가지는 통합정보의 양이 일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물질은 비로소 주관적 경험인 의식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속성을 띤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책 《센티언스》의 니컬러스 험프리는, 그렇게 계산해서 나온 숫자가 높다고 한들 그것은 고도로 복잡한 정보처리 시스템일 뿐, 거기에는 경험하는 주체 셀프가 없다면 그것을 왜 의식이라고 불러야 하냐고 반문합니다.
험프리에게 의식이란 자아가 중심점으로 생기고 그 자아가 외부 세계를 주관적으로 느끼고 해석하는 서사적 과정입니다.
그러면 험프리가 말하는 의식은 무얼까요.
그는 《센티언스》에서 '입선드럼(Ipsundru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의식을 설명합니다. 자기 자신을 뜻하는 라틴어 'Ipse'에 수수께끼를 뜻하는 'Conundrum'을 합성한 신조어입니다.자기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수수께끼라는 말 같습니다.
동물이 진화하면서 자극에 대한 단순한 반응하는 수준을 넘어 내부에서 감각 자극을 안으로 되돌려보내는 닫힌 감각-운동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고, 자극 정보가 고리 안에서 순환하며 스스로를 모니터링하는 Recurrent persistence loop가 형성되고... 이 순환 과정이 특정 조건에서 고도로 안정되는 수학적 끌개(Attractor) 상태에 도달해 이 주관적 폐쇄적인 루프 상태가 바로 입선드럼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수학적 끌개 상태가 뭔 말인가 알아보니 동역학계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신경망의 특정한 활성화 패턴이 외부 자극이 사라져도 일정 시간 동안 스스로 유지되는 안정된 상태를 뜻한답니다.
이 피드백 루프 속에서 정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머무는 듯한 질적 느낌, 퀄리아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하더군요. 뇌가 자기 안에서 스스로 돌고 있는 신경 신호의 패턴을 해석하려다 보니 마치 뇌 속에 자체적으로 생성된 풀 수 없는 신비로운 수수께끼가 들어앉은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험프리는 온혈동물에 이르러 비로소 이 입선드럼을 유발하는 정교한 뇌 구조가 진화했고, 생명체는 단순히 환경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아주 생생하고 사적이며 특별한 주관적 느낌으로 경험하는 자아성(Selfhood)과 지각(Sentience)을 획득하게 돼서 삶을 살아갈 가치와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생존과 번식에 강력한 이점을 얻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은 험프리의 단어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저런 단어들을 읽으면서 무척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저게 다라고? 장난하나? 과학자가? 저런 인문학적인 말장난과 단어 조합으로 자신의 주장을?"
리커런트 회로는 해마 CA3와 비슷한 그런 구체적인 리커런트 회로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시상과 대뇌피질 6번 층과의 공명 리커런트 회로를 말하는 건가?
고도로 안정된 끌개 상태의 외부 자극 없이 일정 시간 스스로 유지되는, 이 표현은 CaMKII의 자가 인산화나 프리온 유사 단백질(CPEB, Orb2 등)의 기전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분자생물학적인 구체적인 기전 설명도 없이 저런 주장을 했다고?
하는 생각이 막 밀려오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과학계에서도 생리학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도 없이 되먹임 입선드럼의 구조가 수학적이거나 생물학적으로 묘사한다고 해서 그것이 왜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질적 경험으로 변환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하드 프라블럼을 푼 것이 아니라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전제하는 순환 논증을 펴고 있다고 비판받더군요.
더불어 온혈동물 제한론도 비판받고.
그런데 왜 이런 수준의 책을 박박사님은 강하게 높은 반열의 책으로 추천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지독하리만치 강조하는 이온 채널, 시냅스 가소성, LTP, CaMK2의 자가 인산화, 프리온과 기억이 같은 기전임을 증명해도 물리적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가 어떻게 나라는 주관적 존재감과 느낌으로 상전이 되는가 하는 의문의 거대한 개념적 징검다리로 험프리의 책은 뇌과학과 철학의 영토가 만나는 최전선에 위치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거시와 미시의 프레임을 동시에 조망하는 수준에서.
단순히 의식은 무엇인가를 묻는 차원을 넘어 진화적인 차원에서 의식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려 한 시도.
짐작은 이쯤하고,
저 험프리가 말하는 루프는 시상과 대뇌피질 루프를 말하는 거더군요.
이 루프는 꿈을 강의하는 박박사님 강의에도 자주 등장하고 다음으로 이어질, 오기 오거스와 사이 개덤의 책 《의식의 탄생》의 주요 이론인 스티븐 그로스버그의 적응형 공명 이론(ART)으로 이어집니다. 험프리의 입선드럼 이론은 공명 이론의 철학적 번역본 정도가 되겠네요.
사과를 봤을 때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흩어져 있던 빨간색, 둥근 모양, 사과의 향기 등이 시상을 통해 40헤르츠로 대뇌피질과 공명을 일으키며 사과라는 온전한 경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때 시상과 대뇌피질 간 coherent resonance가 일어나야지만 비로소 무의식에 머물던 각각의 정보가 비로소 인지할 수 있는 의식(Consciousness)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죠.
이 이론의 최첨단(학술적인 난이도에서) 이론이 스티븐 그로스버그의 이론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 이론을 이해하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이유로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저 이론을 연구하고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고 합니다.
이론의 기본이 되는 수학적 방법이 너무나 난해해서.
그래도 그로스버그의 이론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본다면,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안정된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딜레마에 처해있습니다.
그 근원적 질문에 그로스버그는 적응형 공명 이론(ART: Adaptive Resonance Theory)을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단순한 심리학적 가설이 아니라 하향식 예측과 감각 데이터에서 올라오는 상향식 신경망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신경동역학 모델로 설명한 것이죠.
《의식의 탄생》은 초기 단세포 생명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상의 대표적인 생명들의 의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듈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쉽게 설명하며 그로스버그 이론을 소개합니다. 물론 수학적 얘기는 거의 없어서 너무 고맙게 읽었고요.
여기서 핵심은 외부 환경에서 오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면 기억의 안정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대뇌에서 내려오는 예측이라는 시스템이 감각 자극의 외부 신호와 일치할 때 공명이 일어나, 지속되는 수백 밀리 세컨 동안 세포들의 시냅스 가소성이 유발돼 학습이 일어나고 비로소 의식적인 인지(Cognition)가 촉발된다고 봅니다.
의식의 탄생 순간이죠.
만약 불일치가 일어나면 뇌의 하부 모듈이 작동해 다시 하향식 예측을 차단하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찾거나 생성하도록 뇌의 주의(Attention)를 강제로 전환합니다.
거북이가 달팽이인 줄 알고 봤는데 달팽이 아니고 닮은 돌맹이라면 다른 카테고리의 예상을 뒤져 돌맹이를 찾도록 하고 아예 돌맹이라는 카테고리가 없으면 새로 범주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아마 수학적 모델로 엄청나게 복잡한 이야기를 오기 오거스와 사이 개덤이 쉬운 말과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쉽게 풀어내려고 엄청나게 애쓴 책이 저 《의식의 탄생》인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로스버그는 ART를 통해 현상학적으로 중요한 결론인, "인간은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 것만을 보고 느낀다"는 것을 이끌어 냅니다.
이 부분은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구성 이론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인간 뇌의 작동 방식이 이렇게 엄청난 학자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동일한 결과물로 수렴돼가는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저기서 중요한 변수인 Attention이 정말 말 그대로 제 주의를 끕니다.
지금의 LLM 인공지능 모델을 탄생하게 만든 전설적인 2017년의 논문.
Attention Is All You Need
결국 뇌는 주의와 의식, 학습을 별개의 기능이 아니라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고안해낸 공명 동역학의 필연적인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스티븐 그로스버그는 이 이론을 통해 마음의 물리적 뼈대를 수학과 신경생리학의 언어로 완벽히 재구성해냈다는 평가입니다.
여기서 덧붙여서 또 한 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우연히 만났습니다.
브루어(Judson Brewer)의 fMRI 연구.
사실 이 학자와 연구는 개인적 생각으로 위의 그로스버그의 연구에 비해 학자 아닌 제 입장에서 학술적 위상이나 방법론의 정교함에서 압도적으로 밀리지만, 현실에서는 이 사람의 연구 경향이 임상적 혹은 제약회사의 입맛에 들어맞아 엄청나게 연구비가 이쪽으로 쏠리고 있답니다.
브루어 연구의 핵심 흐름은 BOLD (Blood-Oxygen-Level-Dependent) 라는 기법으로 특정 뇌세포 그룹의 산소를 소모하는 패턴을 분석하는 하인의 MVPA 기법을 정교화해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핵심 허브인 후대상피질 PCC의 실시간 BOLD 신호 변화율을 직접 연산해서 시각적 그래프로 피드백한 기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부분을 특화한 이유가 바로 저 부분이 욕망과 중독의 핵심 기전이라는 것을 브루어가 fMRI 기술을 통해 학술적으로 증명했다는 것이죠.
일반인이나 중독자는 자아 셀프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갈망, 집착의 상태에 있을 때 PCC가 엄청나게 활성화되는데, 숙련된 명상가는 rt-fMRI상 PCC의 활성이 급격히 감소하는 것이 보였고 이것은 명상이나 마음챙김 같은 수련 기법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인 금연 프로그램에서 확연하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기존에 가장 인정받는 금연 프로그램 하는 대조군과 명상을 알려주고 흡연할 때의 그 담배맛을 온전하게 니코틴 의존 행동 자체와는 분리해 느껴보라는 교육을 시킨 거죠. 담배는 마음대로 피우되 피우는 순간 그 도파민 보상의 회로와는 별개로 담배 자체의 냄새, 맛 등을 오롯하게 느끼는 훈련.
그랬더니 그 말을 잘 받아들인 사람들은 담배의 그 역겨운 맛을 흡연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느꼈고 그게 그렇게 역겨운 줄 처음 알았다고 말했고, 그때 그 사람의 뇌는 다시는 잊지 못할 담배맛 고유의 불쾌감을 학습하게 됐답니다.
그리고 결과는 기존의 금연 프로그램 참가자 대조군보다 월등히 나은 금연 성공률. 이때 작동하는 뇌 기전을 fMRI로 설명이 가능한 PCC 영역의 활성 저하로 설명한다는 것이 저 연구의 흐름입니다.
대체적인 연구 흐름은 의식의 흐름과는 다소 먼 좁은 영역의 뇌 활동을 증명해낸 연구지만 제가 위 세 연구와 같이 묶은 것은 이런 국소적인 뇌 활동 연구의 수치화와 객관화가 의식을 설명하는 거대한 진일보로 이어질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면 사실 연구비 투자라는 돈의 흐름이 실질적으로 중요한데, 저 4가지 연구에 투자되는 글로벌한 연구비 지원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fMRI 계산 모델 및 임상 뇌 네트워크 (저드슨 브루어 계열)가 압도적으로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그다음으로 IIT (정보통합이론 - 크리스토프 코흐, 줄리오 토노니)는 코흐가 앨런 뇌과학 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민간 중소규모 및 재단 의존적 연구비 지원을 받는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의식 이론에서 압도적이라고 생각하는 ART (적응 공명 이론 - 스티븐 그로스버그) 부분은 소규모 학술 연구나 국방 AI 분야 한정해 지원을 받고, 험프리 이론은 순수 학술이나 개인 저술 정도의 위상이랍니다.
현대의 뇌과학 자본은 치료 가능한 질병과 정량화 가능한 지표를 요구하기에 이론적 근원적 탐구 영역의 IIT나 ART 연구 등은 지원에서 밀리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하고, 마치 이건 한국에서 이론과학이 응용과학에 지원이 상당히 밀리는 현상과 비슷해 보입니다. 인간 삶의 구조상 당연한지도 모르죠.
[요약] 의식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 이론 | 저서 | 핵심 키워드 | 의식을 바라보는 관점 |
| IIT | 《생명 그 자체의 감각》 (크리스토프 코흐) | 정보통합 (파이), 존재(Being), 인과력 | 의식은 계산이 아니라, 시스템이 가진 내재적 정보 통합의 '물리적 실재'다. |
| ART | 《의식의 탄생》 (스티븐 그로스버그 이론 기반) | 적응 공명(Resonance), 동역학 미분방정식 | 의식은 뇌가 외부 자극과 내부 기대를 일치시키며 만들어내는 '수학적 조화'다. |
| fMRI 계산모델 | 《중독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드슨 브루어)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엔트로피, 정량화 | 의식(자아)은 실시간 뇌 네트워크의 '상관관계 데이터 패턴'으로 측정 가능한 상태다. |
| 험프리 이론 | 《센티언스》 (니컬러스 험프리) | 진화적 발명, 루프(Loop), 생존을 위한 환상 | 의식은 진화가 생명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뇌 속에 정교하게 연출한 '마술적 쇼'다. |
결론적으로, 면역학의 거장 제럴드 에델만의 거대한 직관(항체)에서 출발한 학문의 계보가 로봇 공학을 거쳐 토노니의 수학적 의식 이론(IIT)으로 꽃을 피우고,
그로스버그의 ART와 험프리의 센티언스, 그리고 브루어의 실증적 데이터로 수렴해 가는 이 거대한 세대교체의 현장을 책을 통해 목격하는 것은 재미난 지적 경험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