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장(五臟) 순례의 길을 시작하다

처음부터 오장(五臟)을 순례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이었지만, 그 물음이 실제로 길을 내기 시작한 것은 우연히 박문호 박사님의 발생학 강의를 접하면서였다. 수정란 하나가 끊임없이 분열하고, 접히고, 이동하며 마침내 온전한 생명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 미세한 세포 안에 40억 년에 걸친 생명의 역사가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는 듯했다. 제각기 흩어져 움직이는 듯하던 세포들이 어느덧 하나의 방향을 향하더니, 조직이 되고, 장기를 이루고, 마침내 하나의 온전한 몸이 되었다.

그 무렵 한 가지 의문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유전자도 있고, 각종 신호 전달과 정교한 분자 기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이 모든 발생 과정을 조율해 하나의 생명으로 엮어내는 거대한 규칙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그 물음을 붙들고 서양 과학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분자세포생물학, 생리학, 신경과학 같은 분야들을 차례로 좇다 보면 언젠가는 생명의 작동 원리가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맞춰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실제로 마주한 그 세계는 경이로웠다. 세포 하나 안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호가 오갔고, 장기 하나마다 수많은 피드백과 조절 회로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생명은 우주만큼이나 복잡했다.

문제는 그 복잡함이 나에게 좀처럼 사유의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문 하나를 붙잡으면 곧장 수십 개의 기전이 쏟아져 나왔고, 그 기전을 이해하려 들면 그 아래로 더 미세한 기전들이 끝없이 꼬리를 물었다. 현미경의 배율을 계속 높여가는 느낌이었다. 배율을 올릴수록 보이는 것은 많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진짜 알고 싶었던 생명의 본질은 점점 더 아득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급기야 ‘이번 생에는 글렀구나’ 하는 좌절감이 찾아왔다. 생명의 본질이라는 거대한 화두는 애초에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그저 남들이 이미 밝혀둔 기전의 파편이나 평생 좇다가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던 중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오래된 의학 문헌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양 과학이 미세한 것을 끝없이 확대해서 보여주었다면, 고전의학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 전체의 지형을 조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은유적인 표현들이 지나치게 모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 모호함은 지식의 '부족함'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안에는 '여백'이 있었다. 그 여백 속에서 생리와 병리, 몸과 마음, 인간과 환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현미경을 내려놓고 비행기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세포 하나하나의 세밀한 모양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산맥과 강의 흐름, 도시와 들판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시선의 심연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사로잡은 것은 침구학(鍼灸學)이었다. 가느다란 침 하나로 몸 전체의 흐름을 바꾸어낸다는 이 오래된 의학은 도무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침구학의 원전(原典)인 『영추(靈樞)』를 펼쳐 들었지만, 그 문장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어떤 대목은 현대의 슈퍼컴퓨터를 총동원해야 간신히 풀릴 것 같은 암호문처럼 읽혔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걸리는 글자 하나가 있었다. 바로 '신(神)'이었다. 『영추』를 읽어 내려갈수록, 침구의 가장 깊은 곳에는 결국 신(神)이라는 화두가 놓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신(神)을 이해하지 못하면 침구의 본질 역시 온전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신(神)은 무엇일까. 『영추』 「본신(本神)」 편을 수없이 되풀이해 읽었지만, 글자를 곱씹을수록 선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기분이었다.

결국 다시 시선을 돌려 서양의 뇌과학과 인지과학 언저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의식과 감정, 지각과 자아를 다룬 현대 과학의 성취들을 따라가다 문득 묘한 직관이 번뜩였다. 서양 과학이 치열하게 묻고 있는 ‘의식’과 『영추』가 말하는 ‘신(神)’은, 어쩌면 저 깊은 심연에서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서를 찾고 싶었다. 다시 박문호 박사님의 강의를 찾아 보았고, 뇌과학과 의식, 감정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따라갔다. 칼 프리스턴의 자유에너지 원리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자기생성(autopoiesis) 이론,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같은 개념들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다시 ‘생명 현상 그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뇌라는 기관에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쉰다는 것’의 본질부터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우연히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사유와 마주쳤다. 어렵기로 악명 높은 그의 저서 『전체와 접힌 질서』를 집어 들었지만, 책장은 좀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양자물리학과 철학이 뒤엉킨 낯선 문장들은, 마치 『영추』 「본신」 암호 같은 구절들을 처음 보았을 때만큼이나 막막했다.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들 사이에서 헤매는 와중에도, '접힌 질서'라는 단어 하나만큼은 마음 깊이 오래도록 마음속으로 헤아려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혹시 『영추(靈樞)』가 그토록 암호처럼 속삭이던 신(神)과, 현대 뇌과학이 밝혀내려 애쓰는 의식이라는 것이, 실은 봄이 말한 저 아득한 '접힌 질서'의 심연 어딘가에서 하나로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저 멀리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솟은 산맥의 능선 하나를 얼핏 엿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뿌연 막막함 속에서도 묵묵히 여장을 꾸리기로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이다. 중간에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아예 주저앉을 수도 있다. 끝까지 간다고 해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한번 가보기로 했다. 『영추』 「본신」편에 등장하는 오장(五臟, 간·심·비·폐·신)을 이번 순례길의 커다란 이정표로 삼았다. 다섯 장기와 그 안에 깃든 혼(魂)·신(神)·의(意)·백(魄)·지(志)를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생명과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눈부신 풍경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첫 방문지로 폐(肺)를 택했다. 폐는 첫 호흡이 터져 나오는 삶의 시작과 마지막 숨이 멎는 삶의 끝을 모두 품고 있는 곳이다. 고전의학에서 인체 경락(經絡)의 순환이 바로 폐에서 시작된다고 보았으며, 『영추』에서는 폐를 백(魄)이 깃드는 장기로 규정했다. 백(魄)은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는 다섯 개의 다른 창 중 하나로, 의식이 개입하기 이전의 육체를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묶어 세우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 질서다. 생명과 마음이 만나는 풍경을 좇는 이 순례의 첫 관문으로, 폐는 그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순례는 미리 그려진 완벽한 지도가 없는 열린 여정이다. 그저 생명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호기심 하나로 나서는 길이다. 발걸음이 어디로 흘러갈지, 어떤 마을을 지나게 될지, 어떤 가파른 비탈에서 길을 잃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끝내 아무것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걷는 그 행위 자체에 이미 충분한 의미가 깃들어 있으리라 믿는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일종의 구도자(求道者)가 된 심정으로 이 길을 걷고자 한다. 생명을 이해하려는 갈망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려는 물음과 정확히 같은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게시된 에세이는 그런 맥락에서 이번 여정이 펼쳐낼 풍경을 미리 엿보여준 작은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이미 폐(肺)라는 마을에 먼저 당도해, 그곳의 풍경을 보고 얻은 사유와 작은 통찰의 편린을 독자에게 슬쩍 선보였다. 이제는 호흡을 가다듬고 걸음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내가 그 마을에 닿기까지 어떤 진흙탕을 건너왔는지, 어디서 발이 묶여 방황했고 어디서 경이로운 풍경을 만나 넋을 잃었는지, 그 지난한 여정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담담하게 풀어내려 한다.

독자 여러분이 그저 한 순례자의 개인적인 감상을 건너다보는 구경꾼에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여정의 기록들을 작은 이정표 삼아, 저마다 품고 있는 내면의 험준한 산길을 함께 걷는 동행이 되어주길 바란다. 우리는 과연 이 길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직은 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먼저 용기를 내어 이 아득하고 무모한 순례의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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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醫爲鑑 窮生生之理"

의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명 현상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丙午夏 溫谷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