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벽 4시,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대충 겉옷을 걸쳐 입고 낚싯대와 채비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충남 태안. 아침 간조 물때에 맞춰 갯바위로 들어가려면 한눈팔 시간이 없다.
9월은 낚시꾼들에게 참 설레는 계절이다. 지긋지긋하던 여름 폭염이 꺾이고 수온이 안정되면, 바닷속 녀석들의 식욕과 움직임도 일 년 중 가장 왕성해진다. 살 오른 가을 바다는 가끔 나 같은 엉성한 조사에게도 덜컥 월척을 안겨주곤 하니까. 전국의 꾼들이 새벽잠을 포기하고 바다로 차를 모는 이유도 다 그런 기대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잔뜩 부푼 마음으로 트렁크를 닫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태안의 한적한 갯바위에 발을 디뎠다.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바다를 향해 힘차게 첫 캐스팅을 날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열 번.
하지만 초릿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슬슬 조급한 마음에 밑걸림을 각오하고 물골이 더 깊어 보이는 자리로 옮겨 다시 던져보았다. 웜을 팔랑거려 보고 메탈지그를 튀겨보아도 손끝으로 전해지는 건 가벼운 물살의 저항뿐, 툭 치는 입질 한 번 없었다.
슬슬 어깨가 뻐근해지고 맥이 빠졌다. 이쯤 되면 그 넓고 풍요로워 보이던 바다가, 생명이라곤 애초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하고 적막한 빈 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조사라면 다 아는 그 느낌이다. 입질 없는 날의 바다는 왜 이렇게 텅 비어 보이는지.
결국 낚싯대를 바위틈에 비스듬히 기대어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 한 모금과 편의점 삶은 계란으로 허기를 달래며, 멍하니 눈앞의 출렁이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바다는 늘 참 묘한 공간이다.
어떨 때는 한없이 푸르고 너그러워서, 지친 몸을 그대로 던져 기대고 싶은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영을 못 배운 내게 바다는 서늘하고 잔혹한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저 짙푸른 수면 아래로 발을 헛디디는 순간,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숨이 턱 막혀버릴 거라는 원초적인 두려움.
생명의 고향이면서도, 단 한 번의 숨조차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무덤.
바다가 보여주는 이 모순된 두 얼굴은, 어쩌면 내 유전자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아주 오랜 조상들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흰 파도를 보며 멍하니 진화의 시계를 억겁의 세월 뒤로 돌려보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인류가 다시 저 바다로 돌아가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목구멍이 답답해져 왔다. 어릴 적 수영장에서 놀다가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빠져 허우적대던 끔찍한 기억이 스쳤다. 사방이 온통 물이었지만, 정작 내 폐가 애타게 갈구했던 건 그 축축한 물이 아니라 단 한 모금의 메마른 공기였다. 숨을 쉬려고 입을 벌릴 때마다 차가운 물이 사정없이 기도를 찔렀고, 몸은 본능적인 질식의 공포로 파닥거렸다.
땅 위에서는 공짜였던 숨 한 번이, 물속에서는 가장 절박한 비명이 된다.
만약 수백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물론 생명에 ‘되감기’ 같은 건 없다. 우리가 다시 비늘을 두르고 아가미를 단 물고기로 되돌아갈 리는 만무하다. 고래나 물범처럼 육상 포유류의 허파를 유지한 채 수중 생활에 적응했듯, 기존의 기관들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면 지금의 우리 몸을 뼈대부터 모조리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숨 쉬는 기관만 바뀐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부력을 다루는 뼈와 근육의 결부터 바뀌어야 하고, 물속의 냉기를 버텨낼 피하지방과 체온 조절계, 공기와 굴절률이 전혀 다른 물속을 볼 수 있는 눈의 구조, 진동을 읽는 감각계, 그리고 혈관을 흐르는 순환계의 지도까지 모조리 새로 그려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 조금이라도 들어맞았던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유전자를 전달했고, 그렇지 못한 대다수는 도태되어 사라졌다. 무수한 세대를 거치며 쌓인 실패와 멸종의 기록 위에서 생명의 형태는 아주 조금씩 변해온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질문의 방향이 뒤집혔다. 우리가 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할 게 아니라, 약 3억 7천만 년 전 데본기 후반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게 아닐까.
바로 그때, 우리 조상이었던 척추동물들이 물과 뭍의 위태로운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던 시간을.
교양서나 상상 삽화를 보면, 종종 용감한 물고기 한 마리가 비장하게 뭍으로 기어 올라와 단숨에 네 발 달린 짐승으로 변신하는 영웅적인 그림을 그리곤 한다.
하지만 박문호 박사님의 자연사 강의를 떠올려보면, 자연의 실제 역사는 결코 그렇게 매끄럽지도, 의도적이지도 않았다. 진화에는 '뭍으로 올라가자'는 거대한 목표나 비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지 상륙은 위대한 탐험이 아니라, 얕은 물가의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죽지 않고 버티다 보니 우연히 일어난 구조적 결과물에 가까웠다.
사지동물(四肢動物)의 조상들은 이미 수천만 년 동안 얕은 여울과 늪지, 진흙탕이 뒤엉킨 기수역(汽水域)에서 질척거리며 살고 있었다.
틱타알릭(Tiktaalik)의 화석을 보면 지느러미 안쪽에 이미 손목과 팔꿈치를 이루는 뼈마디가 단단하게 자리 잡아 바닥을 짚고 상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제법 그럴듯한 손가락 발가락을 가진 아칸토스테가(Acanthostega)조차 육지를 걷기보다는 대부분의 삶을 물속에서 보냈다. 화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녀석의 발가락은 지금 우리처럼 다섯 개가 아니라 무려 여덟 개나 달려 있다.
그러나 다리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육상 생물이 된 건 아니었다. 물과 뭍 사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길고 막막한 ‘회색지대’가 놓여 있었던 셈이다.
폐(肺)의 기원도 그랬다.
예전에 나는 물고기가 마른 땅으로 올라오면서, 말라가는 아가미 대신 불현듯이 폐를 ‘발명’해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을 들여다보면 폐의 등장은 육상 상륙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칸토스테가와 같은 초기 사지동물에게서 보이는 단순한 폐 구조조차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초기 경골어류 조상들은 이미 산소가 부족한 수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 안쪽에 발달한 원시적인 허파를 이용해 수면 위의 공기를 삼켜 호흡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폐어(肺魚)나 폴립테루스(Polypterus)처럼 오래된 계통에 속하는 현생 어류들이 여전히 그 원초적인 방식으로 숨을 쉰다.
결국 폐를 빚어낸 건 메마른 육지가 아니었다.
이미 물속 진흙탕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품고 있던 그 보잘것없는 ‘공기주머니’는, 훗날 물과 뭍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건너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생명의 도약대가 되어준 것이다.
이 사실을 가만히 떠올리다 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든다.
진화란 완벽한 설계자가 필요한 부품을 새로 만들어내는 마술이 아니다. 이미 손에 쥐고 있던 구조를 비틀고 용도를 바꾸어, 새로운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해 온 ‘땜질의 역사’에 가깝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가슴속 폐야말로 땜질의 흔적 그 자체다. 배아 발생기를 되짚어보면 폐는 결코 난데없이 생겨난 새로운 기관이 아니었다. 내배엽에서 형성되던 원시 소화관, 즉 무언가를 삼키고 소화시키던 ‘창자’의 앞쪽 벽이 부풀어 오르며 갈라져 나온 구조였을 뿐이다. 완전히 새로운 재료 하나 없이, 음식을 소화시키던 그 원초적인 바탕 위에서 숨을 쉬는 통로를 파생시켜 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물에서 뭍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 어찌 쉬웠겠는가.
물은 부력으로 몸을 부드럽게 떠받쳐준다. 하지만 육지로 올라서는 순간, 지구의 중력이라는 무자비한 쇳덩이를 오롯이 제 뼈마디로 받아내야 한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물살을 가르던 지느러미는 제 몸무게를 짊어진 채 진흙을 짓이기고 밀어내는 다리로 변해야 했고, 척추와 골반은 전에 없던 하중을 받쳐내려 마디마디 굳게 얽혀 들어갔다.
문득 그 무게를 체감이라도 해보려는 듯, 나는 갯바위에 뻗어두었던 다리를 끌어당겨 단단한 무릎과 발목을 가만히 감싸 쥐어보았다. 아득한 세월 동안 조상들의 뼈마디를 짓눌렀을 묵직한 압력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감각의 세계도 완전히 뒤집혔다. 물의 미세한 흔들림을 읽어내던 측선의 중요성은 뭍으로 들어서자 점차 줄어들었다. 물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빛과 진동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과 귀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재조정되어야 했다. 바깥공기에 노출되자마자 온몸을 죄어오는 건조함도 만만찮은 적이었다. 살갗이 바짝 말라 터지기 전에 단단한 피부 장벽을 둘러치는 일조차 쉽지 않은 과제였다.
무엇보다 호흡계와 순환계가 한 몸처럼 맞물려 돌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산소를 모으는 폐 하나 달랑 생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빨아들인 공기에서 얻은 산소를 온몸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심장과 혈관의 흐름도 새롭게 짜여야 했고, 공기를 드나들게 하는 근육과 그 미세한 호흡을 통제할 신경의 조절 방식도 긴 시간에 걸쳐 재편되어야 했다.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가슴을 살짝 펴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들어온 공기가 폐를 채우는 순간, 그 속의 산소를 온몸으로 실어 나르는 심장의 박동이 가슴 한복판에서 느껴졌다. 이 단순한 펌프 작용조차 수억 년에 걸쳐 조금씩 고쳐지고 덧붙여진 순환계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니, 가만히 앉아 있는 내 몸에서도 아득한 진화의 시간이 느껴지는 듯했다.
뭍을 밟는다는 것은, 이처럼 단순히 새로운 기관 몇 개를 얻는 일이 아니었다. 피와 뼈, 감각과 숨통을 포함한 생명체의 모든 설계를 밑바닥부터 뒤엎는 일이었다.
그 아득한 생각의 끝에서,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시선이 수면 위로 가라앉았고, 물결 너머로 아득한 세월의 깊이를 가늠해 보았다.
우리는 ‘적응’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환경이 변해서 생명체가 그에 맞춰 적응했다는 문장 뒤에, 얼마나 처절한 멸종의 골짜기가 파여 있는지 잊은 채 말이다.
진화에는 청사진도, 미래를 향한 포부도 없었다. 약 3억 7천만 년 전의 어류가 육상 진출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품고 진흙을 헤집은 것이 아니다. 각 세대의 연약한 몸뚱이들은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불완전한 구조로 포식자를 피하고 허기를 채우며 아등바등 버텼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실패가 있었겠는가.
낯선 환경을 감당하지 못해 도태된 수억의 생명들. 오늘날 우리가 화석에서, 그리고 살아있는 동물의 몸 안에서 목격하는 완벽함은 그 숱한 죽음을 뚫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흔적에 불과하다.
그 긴 시간을 되짚다 보니, 지금 내 가슴팍을 가만히 오르내리던 들숨과 날숨 한 번이 문득 낯설 만큼 무겁게 다가왔다.
이 무심한 숨 한 번을 내쉬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이 이 땅을 거쳐 지나간 것일까.
발끝에서 갯강구 한 마리가 기겁을 하며 갯바위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너도 그때 나와 함께 뭍으로 나왔구나' 하는 엉뚱한 동지애가 스쳐 지나가던 찰나, 문득 더 깊은 질문 하나가 꼬리를 물었다.
‘생명은 정말로 바다를 떠나온 걸까?’
내 살갗 아래에서 숨 쉬는 수십조 개의 세포들을 떠올려보았다.
세포들은 메마른 바깥 공기나 흙에 맨몸으로 부딪히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혈장과 간질액이라는, 따뜻하고 짭조름한 ‘체액’에 깊숙이 잠긴 채 산소를 받아먹고 노폐물을 내던진다.
겉모습은 바다를 박차고 메마른 대륙으로 올라왔지만, 정작 그 안의 세포들은 단 한순간도 바다를 떠난 적이 없었던 셈이다.
물론 우리 몸속의 물이 고대 바닷물을 그대로 퍼 담아온 것은 아니다. 신장과 호르몬이 정밀하게 밸런스를 조절하며 삼투압을 유지하는 완전히 고도화된 생체 환경이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넓혀보면, 이건 실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육지로 올라선 생명은 바다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었다. 바깥세상의 메마름에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작은 바다를 몸속에 가두어 품고 뭍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내해(內海).
몸 안에 품은 바다.
그 단어가 마음에 닿는 순간, 폐(肺)라는 장기가 지닌 기이하고 위태로운 본질이 비로소 또렷해졌다.
코와 입으로 들어온 차갑고 메마른 공기는 기도를 지나 폐포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 종착지인 폐포는 바짝 말라 있지 않다. 폐포 표면은 아주 얇은 액체막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고, 불과 1마이크로미터도 안 되는 미세한 벽 바로 뒤편에서는 붉은 피가 쉼 없이 흘러간다.
바깥에서 들이닥치는 건조한 공기의 세계.
그리고 내 몸이 억겁의 시간 동안 품어온 촉촉한 체액의 세계.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얇은 경계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공기와 혈액은 섞여선 안 된다. 피가 숨길로 넘쳐나면 제 피에 파묻혀 질식하고, 공기가 혈관 안으로 대량 유입되어 동맥을 막아버려도 생명은 위태로워진다. 두 세계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산소와 이산화탄소만큼은 그 얇은 벽을 거침없이 넘나들어야 한다.
벽이 조금이라도 두꺼워지면 숨이 막혀 죽고, 너무 얇아 터져버려도 생명은 끝난다.
어제 산책길에서 마주했던 그 역설이, 다시금 폐포의 젖은 표면 위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위험을 막으려면 닫아야 한다.
하지만 살아 있으려면 열어야 한다.
폐는 바로 이 위태로운 생명의 모순을, 매일 2만 번의 호흡으로 오롯이 버텨내고 있는 젖은 경계선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갯바위 끝으로 가 찰랑이는 바닷물을 내려다보았다.
수면 위로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고, 수면 아래로는 짙푸른 바닷물이 일렁였다. 공기와 물은 수면이라는 하나의 선을 경계로 분명히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공기는 하얀 거품이 되어 물속으로 녹아들고, 바닷물은 안개가 되어 허공으로 피어오르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분이불리(分而不離), 통이불혼(通而不混).”
나뉘어 있으되 떨어지지 않고, 통하되 뒤섞여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진짜 경계’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물학자 바렐라와 마투라나가 말했던 ‘자기생산(Autopoiesis)’의 통찰도 결국 이 수면의 경계와 맞닿아 있다.
생명체는 이미 완성되어 덩그러니 놓인 조각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외부에서 물질과 에너지를 받아들여 제 몸을 새롭게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다시 그 전체를 유지한다. 살아 있다는 건 굳어진 ‘나’를 완고하게 지켜내는 방어가 아니라,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쉼 없이 다시 빚어내는 과정’ 그 자체다.
그렇기에 생명의 경계 역시 안과 밖을 차단하는 삭막한 성벽일 수 없다. 생명은 바로 그 얇은 경계를 통해서만 세상과 비로소 만난다. 그곳에서 자극을 느끼고, 낯선 타자를 받아들이며, 요동치는 환경에 맞춰 제 안의 질서를 끊임없이 조율한다.
바렐라가 주창한 ‘행화적 인지(Enaction)’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생명은 이미 주어진 세상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기계가 아니다. 자신의 연약한 몸과 감각, 움직임을 통해 세상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간다.
약 3억 7천만 년 전, 물과 뭍의 축축한 경계에 서 있던 원시 생명들의 몸부림도 그랬을 것이다.
환경이 일방적으로 생명을 빚어낸 것도, 생명이 대륙을 정복한 것도 아니었다. 물과 흙, 공기와 살갗이 수없이 부딪히고 스며드는 그 길고 지난한 관계 맺음 속에서 생명의 방식이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 치열한 만남의 흔적이 수억 년을 건너 우리 가슴속 ‘폐(肺)’라는 정교한 구조로 남은 것이다.
경계는 나를 세상과 갈라놓는 차가운 절개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이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감하며, 스스로를 매 순간 새로 빚어내는 가장 치열하고 촉촉한 접점이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수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며 파도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간조가 지나고 물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캐스팅을 거듭했지만, 바다는 끝내 작은 물고기 한 마리 내주지 않았다.
루어 종류도 바꿔보고, 릴링 속도도 조절해보고,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여밭 언저리로 위험을 무릅쓰고 자리를 옮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을 바다는 오늘따라 나에게만큼은 야속하리만치 무심했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가라앉을 무렵, 결국 낚싯대를 접었다.
완벽한 ‘꽝’이었다.
장비를 챙겨 짊어지고 갯바위를 빠져나오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허탈한 피로가 밀려왔다. 새벽 4시부터 달려와 하루 종일 갯바람을 맞았건만, 쿨러는 텅 비었고 손에 쥔 건 바닷물에 쩔어 끈적해진 낚싯대뿐이었다. ‘이 고생을 하려고 새벽잠을 설쳤나’ 싶어 헛웃음이 절로 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오늘의 이 지루한 헛손질과 피로는 까맣게 잊힐 것이다. 그리고 다음 물때가 오면, 이번엔 진짜 대물이 물어줄 것 같은 철없는 기대를 품고 또다시 낚싯대를 챙기겠지. 낚시꾼의 삶이란 늘 그 미련한 설렘과 헛걸음의 무한 반복이니까.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어둑해진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서해를 보며,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비록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지만, 빈손은 아니었다.
3억 7천만 년 전 진흙탕을 버텨내던 이름 모를 생명들이 몸 깊숙이 품어낸 그 ‘내해(內海)’의 기억.
바깥세상과 자신을 가르는 경계를 결코 차단벽으로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부딪히고 스며들며 스스로를 빚어냈던 생명의 그 치열한 방식이, 지금 내 가슴속에서 오르내리는 숨결 하나에도 고스란히 얹혀 있음을 확인했으니까.
텅 빈 쿨러 대신, 가슴속에 오래 남을 아득한 생명의 기억 하나를 낚아챈 채 집으로 향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도로 위로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묵묵히 밤을 가르며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以醫爲鑑 窮生生之理"
의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명 현상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丙午夏 溫谷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