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 별이 아니라 별이 죽어 사람이라네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이하 '박자세')이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의 공부 모임이 어느샌가 삶 속에 틈입해있다.

'행성 지구에서의 인간이라는 현상 규명'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화두 덕분에, 밤늦게  홈페이지에 접속해

눈을 비비며 고교 시절 공부했던 그 기억의 바닥을 다시 더듬거리는, 누가보면 다소 퇴행적 제스쳐처럼 보일 지도 모르는 만학晩學. 

그러나 삶이 생활이 그렇듯 시간 쪼개어 공부하는게 애당초 쉬운 일은 아니어서 제풀에 넘어질 타이밍이 찾아올 즈음, 마침 그런 위기의 순간에 몽골학습탐사가 결정되고 이번만은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두번 생각하지 않고 신청했다. 

돌아보면 하다못해 악기 하나 배우겠다는 것도 게을러 불발된게 몇 번이요, 하물며 붙잡아두었어야 할 내 삶의 소중한 인연들을 주저하다 결국 놓치고 주먹으로 굵은 눈물 훔친 것도 몇 번인가. 아마도 여기 회원들은 저마다 그런 절박함 하나 쯤은 갖고 있을 것이리라.

 

SAM_1400.JPG

 * 첫날 울란바타르의 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출발을 앞둔 아침. 이화종 회원이 몽골탐사 자료집을 보고 있다.

 

'문득 생각난 듯 눈이 내리다'

 

십몇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시 구절이다. 아마도 중요한 모든 것은 그렇게 오는 모양이다. 박자세에서 공부를 시작하자 마자 질문인지 답인지 조차 헛갈리는 명제들에 숨이 막혔다.  

'137억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창조해낸 상상을 초월하는 깊은 우주 공간에서 지구라는 환경은 매우 극단적이다. 10만분의 1도의 온도 편차가 대칭을 깨고 지구라는 행성을 만들어내고 그 행성에서 스스로 존재론적 질문을 해대는 인간이라는 현상을 만들어졌다'. 알고 있어도 몰랐고, 몰랐으되 알아야 할 것들. 모조리 어불성설이다. 머리가 깨질 듯한 상기上氣의 고통!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회의懷疑.

 

화두를 잡고 면벽 참구하는 선지식들이 어느날 새벽 닭울음이나 바람 소리 같은 무정설법에 문득 한 소식 듣는다고 한다. 헤프게 말하자면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었다고 감히 말한다.

 

SAM_1634.JPG

 * 별도 달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새벽. 변함없이 박문호 박사의 새벽강의가 이어지고 있다. 

 

 둘째날 새벽. 낯선 곳 낯선 질량과 밀도의 잠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밖에서 꿈결인 듯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양자... 중성자..."  부리나케 침낭을 벗고 나와 본 풍경(사진).  내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화인. 

 장닭이 울어제끼는 울음소리가 선승의 막힌 화두를 쫙 찢어버리듯 박문호 박사의 새벽 강의하는 소리는 수십년 묵은 때를 단숨에 벗겨버리는 것 같다.

바로 지금, 우리 존재의 비밀에 간단없이 들어가는 것만이 인간의 최선. 수천번 미루어 녹슬었던 공부의 문이 이날 새벽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비박도 하며 원없이 별은 봤건만, 이날 새벽 흐린 구름 아래 우주와 별과 존재에 대한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들이었다.  

 

SAM_1468.JPG  * 울란바타르를 조금 벗어난 어느 주유소 옆집. 몽골제국은 속도로 세상을 정복했지만..

 

그리고 바람의 역사, 바람의 땅. 

몽골은 내게 '몽골 반점'과 초등학생 시절 '칭기스칸'이라는 흥겨운 팝송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어느 후배가 훕스굴에 다녀온 뒤로 삶이 바뀌었다는 말도 뒤늦은 술자리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몽골비사'가 비교적 최근에 완역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뒤늦게 박자세 베스트북 한권을 읽었다.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설렘을 느꼈다. 특히 아들 넷을 칸으로 키운 어머니 소르칵타니의 삶은 세속적 호기심도 불러일으켰고 중앙아시아에서 동유럽까지의 넓은 초원 그 수 많은 역참을 경유하고 달리던 그 몽골족과 메르키트족. 그리고 '푸른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경배할 것이 없었다던 칭기스칸과 유목민들의 마음에 새겨있을 바람의 유전자. 7백년전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 학자들을 불러 모아 역사상 전무후무한 종교 논쟁을 하게 하고 무심히 지켜보기만 했던 뭉케칸. 그들 영혼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행운도 있으리라! 

 SAM_1534.JPG

 * 몽골 가이드 유르트씨(52)가 길을 찾고 있는 도중 사람들은 넓은 초지로 덮인 능선에서 다시 자연과 인간의 역사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그러나 서기 칭기스칸이 태어난 1206년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좁은 시야와 북적이는 사람들에 익숙한 자의 눈에 초원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추레한 이름의 오랑캐에 불과했던 흉노가 신라의 지배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의 마음을 엿보기란 쉽지 않았다. 하물며, 몽골땅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고구려의 흔적들을 목도하노라면 우리가 배운 역사가 과연 진실이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역사가 학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즉 사관史觀은 있으돼 사학史學이 가능할까 하는 오래된 상념이 다시 떠오르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었다.(울란바타르대학 최기호 총장은 고구려의 수도가 몽골의 동쪽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문외한으로서 학자들의 연구와 성과를 기대한다)

 

SAM_1679.JPG  

 * 위구르의 광활한 그러나 이제 황량하기 그지 없는 수도가 있던 자리.  그 넓은 '공터' 를 둘러보던 우리 일행을 보고 달려온 샨지(12)군. 

 

SAM_1680.JPG

 * 지평선 끝 한점으로 온 소년은 다시 순식간에 옛 성곽 위를 달려 멀어져 갔다.

 

SAM_1696.JPG

 * 몽골 초원에서는 흔한 풍경이지만 '동물과 역사의 흔적'은 광대한 우주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SAM_1528.JPG  * 어린 칭기스칸의 망막에도 분명히 이와 비슷한 개구리가 찍혔을 것이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 속에서'

 

그러나 이번 탐사여행 중에 종종 스치며 만나는  '살아있는' 몽골 사람들 덕분에'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을 수 있었다. 사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고,  한계가 뚜렷한 '역사 추적'의 프레임을 짜느라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바람의 민족들이 어떤 국경선을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갖는 이방인의 호기심이란 그들이 예측하지도 혹은 마음에 둘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박자세 회원들에게 남은 것이란 검증된 사실史實들에 대해 마음껏 추상하고 '인간 현상'에 대한 인식폭을 넓히는 경험일 것이다. 


'거문고 타던 처녀가 외로워 큰 개 작은 개 그리고 오리를 키우고 살았다. 하늘에서 쌍둥이 백조가 끄는 마차를 탄 목동이 그녀를 보고 반해서 땅에 내려온다. 그러나 아뿔사 목동은 전갈에 물리고 만다. 전갈은 황소가 밟고, 황소는 사자에 물려 죽는다. 사자는 죽어 물고기 밥이 되고, 물고기는 용으로 승천한다' 

에로스와 신화와 먹이사슬이 얽힌 스토리로 만든 별자리와 1등성을 외우고(에로스와 먹이사슬을 통해 외우는 것이 쉬운데 아마 우리 유전자의 심층에 뿌리박힌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침낭 자크를 내리고 별들을 보며 마치 마취가 되듯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가 문득 눈을 떠 페이드인 하면 어느새 밤하늘을 저만치 가로 지르고 있는 백조(!)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기억이란.. 참 형언키 어려운 그런 시간들을 가능케 한 것은 박자세 공부의 핵심이라고 할 '암기'다.


 암기가 이해보다 선행하며, 암기라는 체계화 작업을 통해 지식이 추상화 하고 '작용'을 한다는 것은  박자세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다. 아마도 시인이 추상을 힘겨워 한 것은 그의 지식이 체계적이지 않은 혼돈의 상태였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몽골의 밤하늘과 지질과 역사가 머릿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보게 되는 몽골 사람들은 더 이상 값싼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고 구체적 자연 현상들이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물음표 하나만 가슴에 남겨두었지만.  

  

 

SAM_2269.JPG    * 박자세 회원 일행에게 낙타 우유를 주기 위해 오토바이를 몰고 온 남자(?). 

  


SAM_1912.JPG

 * 차강 노르 호수 옆 게르에서 만난  *** 씨(  ). 두 딸을 둔 가장인  ** 씨는 일행에게 맛난 요구르트와 ..

   그는 '공부하러 몽골에 온' 사람들이 사뭇 신기하고 고맙다.

 

 

 

 

 

 

 

 

SAM_2206.JPG

 * 버스 기사 *** 씨(56)가 수천만평(!) 부추밭에서 박자세 회원에게 '몽골 부추' 다듬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SAM_1821.JPG

 * 야영을 끝낸 아침, 차체가 낮아 고생했던 스타렉스를 운전하느라 고생한 을지(  )씨가 독수리(?)가 먹을 수 있도록 빵 조각들을 초원에 던지고 있다. 여행을 거듭하면 거기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서 그들의 역사가 주마등 처럼 지나가며, 차이 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해 가는 여정으로 바뀌게 된다.


'별이 된 사람들'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번 탐사여행은 켜켜이 쌓인 세속의 시간들 때문에 묻혀있던 마음 속 보석을 하나 둘 발굴해나가는 여정임을 느끼게 했다. 수퍼노바의 폭발로 인체를 구성하는

무거운 원자들이 생겨났다면 별이 죽어 사람이 된 것이다. 아찔하다. 박자세는 이렇게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다. 나에게만 그러한 것은 아니고, 그들에게도 그러하다.


SAM_1926.JPG 

* 잠시 차를 수리하는 시간.

 티벳불교의 주요 종파를 쓰고 암기하는 회원들. 오른쪽 회원은 열심히 입으로 외우고 있다.


SAM_2284.JPG * 회원인 법념스님, 매일 매일 충실한 기록의 달인이다.


SAM_1855.JPG *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작은 굴에 들어갔다 나오는 회원. 자연과학적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들어가보는 굴은 관광지의 거대한 용암굴들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SAM_2182.JPG * 회원들에게 박자세 공부는 나와 우주를 랑데부시키는 종합대학이다. 회원들은 끊임없이 사색한다.


SAM_2196.JPG * 그리고 서로 묻고 배운다. 소모적이며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니라 명확한 자연의 이해를 위해 정곡을 찌른다.


SAM_1834.JPG *  작은(!) 분화구 앞에서 장구한 세월 지구의 호흡을 느끼고


SAM_1932.JPG

* 2000만년 전 지구를 점령하기 시작한 초지와 초식동물에 대해 명상하고

 SAM_2239.JPG  * 인간에게 선택되어진 지구라는 작은 행성을 사유한다.


SAM_1543.JPG * 박자세 공부의 즐거움은 다름 아닌 살아있음의 환희가 아닐까.


그 어떤 배움에서 137억년 우주 진화와 생각의 탄생을 연결시킬 수 있을까. 단순한 싸이언톨로지나 과학환원주의를 넘어, 실존적 질문과 종교적 도피를 떠나, 공부 그 자체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내게 몽골탐사여행은 기대 이상의 행복한 후폭풍을 가져왔다.

어떻게든 내게 남은 삶의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나 밥벌이 속에서 활력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이상 향후 인생 계획은 큰 노선 변경이 불가피할 것이다. 탐사 여행 이후 직장 생활은 변함없이 자잘하고 묵직한 스트레스를 던지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서 거기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내 습기(習氣)또한 여전했고, 허탈하기 그지 없는 욕망들에 휘둘리는 것도 여전했다. 박자세를 인정하면서도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나 같이 우유부단한 자에게 또 어느 순간 죽비같은 말을 우연히 듣는 순간이 왔다.


"자명한 진실에 바로 돌입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딜레이 효과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그 남자, 박문호 박사의 말이었다.

자연과학적 통찰이 담긴 아포리즘.


SAM_1648.JPG * 박자세의 책임연구원인 김현미 선생과 박문호 박사, 그리고 가이드 유르트씨가 당일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박문호 박사식 표현을 빌자면, '예측하지 못하는 현장상황에서 우리는 전두엽에 의존해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


 별이 죽어 인간이 되었다.

 그 인간이 별을 공부하며 시공을 사유한다.

 그것은, 때로, 인간의 죽음 조차 초월한다. 아니 그 가능성만으로도 우주적 기쁨이다.


-

cf.

이 탐사여행 소감문은 내가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중심으로 엮은 탓에 배제된 이야기가 많아 다소 흐름의 비약이 심하다. 내겐 울림이 큰 몇몇 장면이 더 있다. 하나는 차강 노르 옆 공활지에서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렸을 때 조용히 풀을 뜯던 들소떼들의 실루엣, 야밤에 양떼들에게 랜턴을 비췄을 때 일제히 켜지던 수백개의 등불(양들의 눈이다),  소똥 옆에 눈 내 똥, 회원이 부른 경기민요 등등은 아직도 선연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