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달라이라마 “불교적 신념을 따르지말라”…불자들 어리둥절
어떤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은 쾌활한 ‘옆집 철물점 아저씨’처럼 보였다. 반면 꿰뚫어보는 눈빛과 굵은 목소리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세상 이치를 통달한 듯했다. 5일 오전 일본 요코하마의 호텔. 달라이 라마는 케이블 BTN 불교TV가 주최한 이날 법회(12일 오후 10시 방영)에서 현각 스님(48)과 대담을 나눴다. 대담은 현각 스님이 묻고 달라이 라마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달라이 라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불교적 신념을 따르지 말라”고 말했다. 청중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좁은 시각에서 갈등 발생… 넓게 봐야”
“종교적인 신념만 따르면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교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한국 불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무조건 믿지 말고 공부를 하십시오. 반야경의 ‘반야(般若)’는 지혜를 뜻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분석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는 (마음의) 본성을 보는 것을 중시한다. 본성을 어떻게 봐야 하나”라고 묻자 달라이 라마는 ‘지(止)’와 ‘관(觀)’을 언급했다.
“마음에 무언가 지나치게 선명한 것이 생길 때 ‘지’는 이와 거리를 두게 하는 힘이 됩니다. 파도의 출렁거림이 심하면 달그림자가 잘 안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출렁거림이 그쳐야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본성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달라이 라마의 주변에는 항상 격류가 끊이지 않지만 그는 평온해 보였다. 외신들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로 일본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어 그의 방일에 중국이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현각 스님은 최근 동북아 정세를 의식한 듯 ‘조화’란 단어를 꺼냈다.
“개인 간 화합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집단 간에는 더더욱 그렇죠. 어떻게 하면 조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현각)
“문제는 ‘좁음’에 있습니다. 남북한도 동일한 민족, 문화, 언어를 가졌지만 좁게만 생각하고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니 계속 나뉘어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저 자신을 ‘세계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지구의 다양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어요. 모든 것은 관계가 있고 연결돼 있습니다. ‘신’조차 그러합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길 때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가 행복해집니다. 그때 (조화가) 완성될 수 있어요.”(달라이 라마)
“이슬람권과 미국의 대립, 중국의 민족주의 등 타협과 대화가 허용되지 않는 극단주의가 세계에 확산되는 것은 어떤 맥락일까요?”(현각)
“전체를 못 보니 편견이 생기는 것이지요. 편견은 진리를 못 보게 해 인간을 극단적으로 만듭니다.”(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는 최근 독도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동북아 긴장에 대해 “한국은 일본이 필요하고 일본은 한국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중-일 간 역시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 “종교 간, 종교와 과학 간 소통해야”
현각 스님은 “불교적 시각에서 ‘중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물었다.
“세상에는 서양인, 동양인이 있고 한국인, 티베트인, 일본인도 있어요. 한국에도 부자와 가난뱅이, 교육 받은 자와 못 받은 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세상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이 첫 번째 요소예요. ‘사람은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볼 수 있는 힘을 줍니다.”(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는 이어 “나 역시 과거 불교가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의사가 사람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듯 여러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종교뿐 아니라 과학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불교의 참선 등 수행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최근 움직임도 화제가 됐다. “한 미국인 과학자가 ‘종교와 철학의 연계 작업을 더이상 하지 마라. 과학은 불교를 무너뜨릴 수 있고 당신도 무너진다’고 내게 주의를 줬어요. 그러나 종교를 맹신하지 않기 위해 과학과 불교를 계속 연결하고 있습니다.”(달라이 라마)
현각 스님이 “불교는 신앙의 대상인가, 하나의 신념 체계인가”라고 묻자 달라이 라마는 “대만에서 만난 평범한 교사가 숲 속 잘라진 나무 그루터기에 평온히 앉아 있는 모습에서 2500년 전 부처가 보였다. 불교의 실천을 모든 이와 공유하면 조화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답했다.
달라이 라마는 대담 중 “나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각 스님은 “달라이 라마는 평범함을 통해 어떤 경전에서도 줄 수 없는 가르침을 준다. 예수님도 매춘부와 밥을 먹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50여 분의 대담 뒤 현각 스님이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라고 하자 달라이 라마는 “어떤 카메라를 보고 할까요”라며 웃은 뒤 두 손을 모았다.
“모든 고통은 ‘우리가 만들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나’란 존재는 육체, 물질, 생각 등의 일시적인 결합체이지 절대 영원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하되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을 귀하게 여기고 넓게 생각하면…. 보일 겁니다.”
:: 달라이 라마 ::
티베트 불교 종파인 겔루크파의 수장인 법왕(法王)의 호칭. 달라이는 ‘큰 바다’, 라마는 ‘스승’이라는 뜻. 현재 텐진 갸초(77)가 14대 달라이 라마로 활동하고 있다. 1959년 중국 정부에 의해 티베트인들이 학살당하자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비폭력 노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해왔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 현각 스님 ::
1964년 미국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들은 뒤 한국 선불교에 입문했다. 출가 사연을 기록한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알려졌다.
요코하마=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마음에 무언가 지나치게 선명한 것이 생길 때 ‘지’는 이와 거리를 두게 하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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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알았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는 모르게 됐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알았다던가, 수학 공식을 알았다고 하던가, 규칙을 알았다고 하던가 등등 알았다고 하는 순간 그 규칙에 쌓여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합니다.
도덕이라던가 윤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윤리와 도덕은 한국에서의 윤리와 도덕입니다. 제라드 다이아몬드의 책에서 친척이 죽어서 장례식을 치르러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례식에 가서 친척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어떻게 사람의 살을 먹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지방의 풍습과 관습에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야 친척의 영혼이 내게 들어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디그 발레' 라는 대만의 영화에 보면 대만 원주민이 일본군과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것은 일본군과 싸운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사냥터를 지키기 위해 다른 부족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과 전쟁이 시작되자 서스름 없이 여자와 아이들이 목을 메어 자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조상의 땅에 가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죽음은 하나의 문으로 작용하여 조상의 땅에 갈 수 있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떳떳한 전사만이 갈 수 있는 땅이 있다고 믿습니다.
시디그 발레에 원주민이 믿는 윤리와 도덕이 한국에 있는 나와 같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 무언가 선명한 것이 옳다고 믿게 되는 순간 좁은 식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생각이 언어로 이루어졌다면 하나의 언어가 만든 생각은 좁은 사고를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달라이라마의 이야기 중에 종교와 과학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한 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좁은 생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몽골 학습탐사를 갔을 때 '쫑까파'라는 겔룩파의 창시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대목이
' 무자상이 연기한다.'입니다.
내가 없는데 생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생각은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언어를 통해 나라고 하는 자성을 알게 되고 언어는 세상의 상징성이 담긴 것입니다. 언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이미지와 관념을 모아 상징을 가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언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책정하고 생각을 이어갑니다. 나를 통해 만들어진 세상이 모든 것 언어에 담겨있습니다. 모든 정보와 모든 의미, 모든 개념이 인간의 부족한 감각의 틀을 통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어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감각(정보)을 통해 언어가 만들어지고 불완전한 생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았다는 선명함은 무언가를 더 알지 못하게 하는 파도가 되어 버립니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는 달 빛이 머물 수 없습니다.
불교적 신념을 따르지 말라는 말이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그쳐야 하겠습니다.
저기있는 현각스님도 그렇고..
멀리는 2500년전 스물아홉의 붓다가 그러했듯,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추구하기위해서는
뒤돌아보지 않고 결단하고 밀어부치는 힘.
거기에서 새로운 세상의 첫장, 둘째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 다시 해봅니다.
붓다는 출가전 생노병사를 직시한 뒤에는
일체의 세속적 쾌락에서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관'의 힘이 출가의 저력이었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노병사라는 진리에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다시 탐진치 속에 자잘한 욕망들을 쫓아다니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것 아닌가..생각.
박자세의 공부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음에도,
이러저런 핑계를 대는 나같은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비슷하다는 .. 생각.
자신이 평생 몸 담았던 틀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이지 않고 끊임 없이 흐르려는 자세, 본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