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업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초등학생을 지도한다는 점은 공통이었으나, 그 형식은 다양했다. 이런 걸 프리랜서라 한다던가. 때론 학급의 담임교사로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교실에서 한철을 살고, 계약기간이 만료된 방학엔 또 다른 곳에서 아이들 집을 방문지도하는 학습도우미, 나이가 정년을 넘긴 후부터는 방과후 교실에서 수학 진도를 놓친 아이들을 꼭 붙들고 가르치는 일 등이었다.

나는 이걸 진즉부터 '현대판 탁발'로 명명했다. '교사자격증'이라는 발우를 들고 이곳저곳으로 탁발을 다닌 셈이다. 때론 한 장의 나뭇잎 배에 몸을 싣고 험한 바다를 건너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초등교사는 나의 적성에 잘 맞는다. 물론 붙박이 정교사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그래서 꼭 법률로 정해두고 싶은 게 있다.

7년 정도 연속으로 근무하면 1년간 휴식년을 주는 것. 물론 신청자에 한해서다. 다음생에 혹여 정교사가 된다면 휴식년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다. 정교사들은 대개 한 곳에서 4년 근무 후 학교를 옮긴다. 나의 경우는 평균 1년에 2개교 정도 근무했으니, 그만큼 빛의 속도로 새 환경을 파악하느라 고심이 따랐다. 만나는 아이들도 아주 많았다. 다 장단점은 있기에, 주어진 분상에서 장점을 찾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며 임했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에 나를 화들짝 환기시킨 건, 내 친구 바람이가 전해준 소식이다. '저 숲에서 포도가 익고 있다'. ', 이제 살겠구나! 가서, 야생의 열매를 따오기만 하면 되는구나!' 그렇게 내안에는 안도의 숨을 내쉬는 로빈슨 크루소와 무심히 목탁을 두드리는 탁발승이 함께 살고 있었다. 우선은 몸을 먹여 살려야 견성공부를 지어가든, 무인도 탈출을 도모하든, 할 게 아닌가.   

초등학교 교사는 만능인이어야 한다. 생활지도를 하려면 아이들 심리상태를 알아야 하고, 구체적인 방편도 잘 구사해야 한다. 특히나 극성 학부모에 휘둘리지 않는 부동심도 갖춰야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학급마다 수업을 방해하는 문제아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이라, 교사들이 젤 곤혹스러워 하는 게 이 부분이다.

요즘은 체벌도 못하니,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교사가 병가에 들어갈 지경에 놓이기도 한다. 교사에게는 그날의 진도라는 게 있고, 수업 끝종은 보충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울린다. 다음시간? 그런 시간은 없다. 그 시간에 해야할 것이 이미 빼곡히 대기하고 있어서 연쇄적으로 밀릴 뿐이다. 수업 중에 말썽피우는 한 아이를 잡고 시간을 보내면 전체학생에 결손이 발생하는 이유이다.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학급시스템을 잘 구축하여, 이것이 차질 없이 가동되어야 질서를 잃지 않으면서도 신바람나는 교실이 된다. 또한 수업해야하는 과목도 거의 전 과목이라 준비물과 교재연구 할 것도 많다. 시험문제 출제와 성적처리, 학예회도 치러야 한다. 그야말로 초등교사는 팔방미인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교사 본연의 업무이니, 연구에 올인해서 어떻게든 잘해볼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런데, 분장된 행정업무는 성가신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필자도 첫출발이 9(5) 공무원이었다. 교육행정직이었는데, 일당백으로 유능했단 자부도 있었다. 그러나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7년 정도 근무 후 사직을 하고 초등교육과에 진학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후에 험한 바다를 표표히 건너는 '일엽편주'가 되어줄 줄이야. 고맙고, 고맙다! 눈물 나도록.

금년엔 코로나19로 병원에 가기 꺼려져서 채용공고에 응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있으니, 채용신체검사를 먼저 받아보고 지원서를 넣어야하기 때문이다. 잘 됐다. 푹 파묻혀 독서나 맘껏 하라는 것인지, 뭐든 감사하게 수용하리라. 코로나19 덕분에 내 인생의 생업전선에서 은퇴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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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보충 : "아이들 집을 방문지도..."는, 개인적으로 과외교습을 다닌 것이 아니고, 지역의 구청에서 지정해준 저소득가정 아동을 방문하여 수학을 지도한 것임. 원천징수세 계산 납부는 구청이나 시청 소관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