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잉~ 저기에 소나무 심는 불사를 하면, 나도 '재송이'가 되는 거야?' 마음이 꿈틀한다.

얼마 전에 봉은사에서 공지가 떴다. 식목행사로 '템플스테이 전용 체험관' 주변에 숲 가꾸기 불사를 한다고. 조경을 하는 걸 보니 이제 곧 완성이 되나보다. 추사의 현판이 붙은 '판전'을 조금 지나면 새로 들어선 전통한옥이 저만치에 보인다. 단청을 하지 않은 단아한 모습에서 목재향이 싱그럽게 이는 듯 했다.   

'재송이'이야기는 선어록을 읽다보면 나온다. 하루는 다섯 살쯤 된 꼬마가 찾아와서 "스님, 재송이가 왔습니다." 그러면서 뜰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킨다. 재송은 심을 재, 솔 송, 소나무를 심다이다. 나이가 많아서 제자로 받아줘도 별 무소득이라는 말에, 약속된 증표로 소나무를 심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소나무는 5~6년쯤 재송이를 기다린 것인가? 전생과 금생, 내생이 이리도 가깝다니...!  


조계사 일주문이 지금은 우정국로 쪽에 있으나 전에는 한국일보 쪽으로 나 있었다. 밖에서 보면 당연히 '삼각산 조계사'였겠으나 '맞나?' 긴가민가 하다. 반면에 '해탈문'은 또렷이 기억한다. 주로 안에서 바라보았던 때문이리라. 들어올 때와는 달리 나갈 때엔 분명하게 '해탈문'인 것이다. ‘그럼, 난 해탈을 한 건가?’ 

희양산 봉암사에는 '眞空門(진공문)'이 있었다. 선방이 있는 선원 구역인 듯. '入此門來(입차문래) 莫存知解(막존지해)‘도 본 듯하다. 들어갈 때 '진공문'이면 나올 땐 당연히 '묘유문'이겠지? '眞空(진공)과 '妙有(묘유)'는 항상 붙여쓰는 구절이니까. "진공묘유, 진실로 공하면 묘하게 있다." 어느 스님이 말씀하셨는데, 나의 해석으로 굳혀졌다.  

그런데, '진공문'만 보았지 '묘유문'은 보지 못했다. 안에서 바라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묘유문' 현판이 안쪽에 있으려니 할 뿐이다. 삭발한 수행자라면 그 안에서 공부할 행운을 잡을 수 있겠지만, 난 스스로 수행자라 우긴다 해도 유발(有髮)이 아닌가. 막무가내 떼를 써서 진공문을 들어갔다 쳐도 묘유문을 나오지는 못한 셈이다. 아예 보지도 못했으니. 하산은 멀었다는 말일 테지!  

또 있다. '진여문''생멸문'도 쌍으로 다닌다. '일심이문(一心二門)'의 '진여문(眞如門)''생멸문(生滅門)'이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 학사과정에서 교양과목 과제로 대승기신론소·별기에 대한 리포트를 낸 적이 있었지만 '일심이문' 이름 외에는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분명한 것은, 생멸문은 생멸의 세계인 저잣거리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일 테다. '입전수수入廛垂手'할 만큼 수행이 출중해져야 저 문을 통과할 수 있으리란 것도 알겠다. 그러니, 수행자연 한다면 하산(下山)은 아직 멀고멀었단 얘기다.  

몇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몇 번의 재송이가 되면, 저 생멸문을 자신있게 나설 수 있을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